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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이다"

 

1년 전인 2009년 5월 23일 아침.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게 짧은 유서 한 통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5월 하늘은 슬픔의 도가니였다.  500만명의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그림자를 찾았다. 그가 떠나던 날 노제가 거행된 서울광장은 온통 노란 풍선과 피켓 등이 물들여져 2002년 월드컵 이후 최대 인파가 운집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결식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2009년을 마감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까지 노 전 대통령을 '2009년 세계 10대 뉴스인물' 중 3위에 선정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눈물은 이제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 언저리에 깊고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또는 '자기 일가족과 주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등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승부사 노무현의 면모를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스럽게도 죽음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거목이 자살한 것은 자랑일 수 없고, 분명 우리 대한민국의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만이 넘는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고, 눈물을 훔치며 그의 가는 길을 애닯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김해에 있었다. 김해에 본사를 둔 지방 일간지 사회부장 겸 외근 담당 편집부국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져 김해 진영의 한 병원에 이송됐다"는 사건담당 기자의 보고를 받은 시간은 당일 오전 7시께. 필자는 현장과 가깝게 살고 있는 사건기자 2명을 현장으로 급파하면서 편집국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영을 떠나 양산의 대형병원으로 이송됐 고, 잠시 후 사망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일요일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터라 즉시 신문 호외발행을 건의했고, 호외 제작을 시작으로 영결식을 마칠 때까지 편집국 전 기자를 투입하면서 신문의 절반 이상의 지면을 할애하면서 신문제작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취재의 사령탑을 맡아 취재를 지휘하면서도, 지척에 있는 봉하마을에 마련된 빈소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 "데스크가 한번쯤은 봉하마을에 나타나 현장의 느낌도 점검하고, 취재 기자들을 격려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래도 봉하마을 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털어 놓는 얘기지만 봉하마을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취재하는 일선 책임 기자로서 어폐가 있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 분의 영정 앞에 서서 뭐라고 말하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 취재기자의 송고된 기사를 다듬으면서, 사진을 선택하면서, 순간 순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그분을 마음에 담는데 그쳤다. 그렇다고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평소 특별히 존경했던 인물도, 더구나 신봉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건 앞에서 가장 냉정해야 할 필자가 그날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눈물이 흐르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 이유는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노 전 대통령 노제 식전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의 말에서 찾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아주 작은 비석을 세워 달라고 했는데, 우리 마음 속에 잊지 못할 큰 비석을 세우겠습니다. 바보 대통령, 그러나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 노무현 감사했습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하셨지만 우리는 기꺼이 나눠 드려야 하겠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슴 속에 심장이 뛸 때마다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지켜드리지 못해서 미안해 하겠습니다."

 

분명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주변 인물들의 금품 수수 등 관행처럼 이어져온 잘못된 문제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움직이고 필자의 가슴을 후빈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었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에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친족들의 뇌물수수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그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함으로써, 그의 잘못을 넘어서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 탓이라는 시각과 동정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신도 시각은 같았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 5월 25일자에서 한국의 문정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적인 '피의 복수(Vendettas)'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2012년까지 끝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사후 1년이 됐지만, 정치권이 바라보는 노무현의 사망 이유는 '정치적 타살'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게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의 이전 행보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민주 항쟁의 선봉에 서서 민주주의의 깃발을 치켜세웠는가 하면, 대통령이 돼서도 서민과 함께하는 솔직 담백한 '바보 같은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최초로 고향에 돌아와 시골 농민과 함께 하려 했던 그였기에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주변의 잘못을 덮게 만들었던 것이다.

 

 노무현 1주기를 맞아 추모전 등 각종 추모행사가 준비·진행되고 있으나, 지방선거와 맞물려서인지 곳곳에서 집회를 불허하는 등 집권 여당 측은 제발 조용하게 지나가길 바라고 있는 듯 하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죽음과 추모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나 이해관계를 떠나 마음을 같이 할 줄 아는 성숙된 의식이 필요하며, 우리 국민도 이제 그 정도 의식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 지금, 정치권을 비롯한 위정자와 6.2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은,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떠나 '인간 노무현',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며 눈물 짓고 회상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창원일보.com 20일자에 보도 됩니다.


태그:#노무현, #서거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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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지 경남매일 편집국에서 정치.사회.경제부 기자를 두루 거치고 부국장 시절 서울에서 국회를 출입했습니다. 이후 2013년부터 2017년 8월6일까지 창원일보 편집국장을 맡았습니다. 지방 일간지에 몸담고 있지만 항상 오마이뉴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공유하고 싶은 뉴스에 대해 계속 글을 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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