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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 딛는 한 걸음이 이 땅의 강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 강에 찾아오는 새떼들의 노래하는 날개 짓

끊이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강을 따라 흐르는 걸음 어찌 함께 하지 않으리

그리하여 내딛는 한 걸음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빛 비늘의 물고기 떼들

 

물길의 나침반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송사리 떼 송알송알 오르내리게 하는 길이라면

그 길에 어깨동무하며 앞선 발걸음 어이 뒤 따르지 않을까

 

강물을 따라 흐르네

흐르다 때로 가던 걸음 멈추며

세상에 어떤 것들이 참으로 있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울까

걸어온 풍경을 떠 올렸네

깊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아낌없이 채워주는 강물을 생각했네

그 강가에서 눈을 뜨고 밥을 지어 나누며

고단하였으나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도 했네

눈발이 날리기도 했네

눈길에 첫 발자욱을 새기며

뒤 따를 사람의 발목이 젖지 않을 걸음을

앞서 걷는 이의 고맙고 따뜻한 수고로움을 생각했네

걸음마다 발자국들 이어졌네

멀리 그리고 가까이 반가운 손 흔들며 달려오는 등불들, 환한 행렬들

- 박남준 '강을 따라 흐르는 걸음 어찌 함께하지 않으리' 모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정권을 등에 업은 무지막지한 굴삭기와 날카로운 불도저 삽날 아래 오늘도 '아야 아야' 소리치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4대강. 그 4대강 삽질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 시분과와 젊은작가포럼 소속 시인 작가들이 낙동강 순례에 나선다. 말이 좋아 낙동강 순례이지 사실은 4대강 지키기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순례에 나서며 이렇게 외친다.

 

"어쩌면 저 야만의 삽질에 의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심연의 강물... 터덜터덜 흙길을 밟고, 강 길도 걸으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온 것들을, 한 자리에서 같이 보듬고, 같이 목을 축이며, 같이 저물어 가는 하루를 온전히 느껴보려 한다."

- 낙동강 순례 '강물에 목을 축이고 길에게 길을 물어라' 몇 토막

 

19일(토)부터 20일(일)까지 1박 2일 동안 이어지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 낙동강 순례는 첫 날인 19일 아침 8시 40분 한국작가회의 사무실(마포) 앞에서 모여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해 낙동강으로 나선다. 이어 낮 1시에 안동 풍산에 도착해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조선 선조 때 재상이었던 유성룡을 모시고 있는 병산서원으로 향한다.

 

1978년 3월 31일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은 고려 끝자락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 유씨 사학(私學)이었다. 유성룡은 1572년, 선조 5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병산'이라는 이름은 1863년, 철종 14년에 붙였으며, 대원군 서원철폐령에도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낮 3시에는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 강 길을 은어떼처럼 거슬러 오르며 낮 4시에 하회에 도착해 배를 타고 강물을 휘저으며 부용대를 오른다. 부용대는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는 해발 64m 절벽을 일컫는다. 이 곳은 태백산맥 맨 끝자락으로 정상에서 마을 구석구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연꽃을 뜻한다. 부용대는 처음 '북애'(北厓)라 불렀다. 북애라는 이름은 하회마을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 부용대 아래로 거울처럼 맑고 푸르른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이 낙동강 기슭에는 옥연정사와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굴삭기 삽날 아래 온몸을 벌벌 떨고 있다.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겠는가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는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모두

 

부용대에서 곧 죽어갈 낙동강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 작가들은 저녁 6시가 되면 농은수련원으로 간다. 농은수련원은 천주교 안동교구 설정 25주년을 기념해 교육관과 피정의 집, 연수원을 아우르는 수련원으로 1997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농은수련원에 도착한 작가들은 휴식을 잠시 취한 뒤 저녁 7시에 농은수련원에서 마련한 무공해 쌀로 지은 저녁을 먹는다. 이어 밤 8시부터 낙동강 순례와 4대강 삽질 막기에 따른 창작시 낭송, 4대강 현장보고, 종교단체 4대강 저지운동 소개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밤 10시까지 펼친다.

 

순례 이틀째인 20일에는 아침 8시에 식사를 한 뒤 아침 9시에 농은수련원을 떠나 낮 10시에 '광야', '청포도'로 이름 높은 시인 이육사(1904~1944) 고향이 있는 낙동강 기슭을 거슬러 오른다. 하지만 4대강 삽질을 막지 못하면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도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는 아름다운 고장도 사라지게 된다.

 

낮 11시가 되면 작가들은 단천에 닿아 오늘도 새로운 생명을 기르며 푸르게 흐르는 낙동강 길을 걷는다. 낮 12시에는 조선 중기 때 문신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 종택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낮 1시가 되면 낙동강 옆에 있는 고산정을 답사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고산정(경북유형문화재 제274호)은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이황 제자 금난수가 지은 조선시대 누각이다.

 

이 고산정에는 이황이 쓴 '서고산벽'이란 시가 걸려 있다. "일동이라 그 주인 금씨란 이가   / 지금 있나 강 건너로 물어보았더니 /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 /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누각과 이 누각에 걸려 있는 시도 굴삭기 삽날 아래 언제 빛을 잃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푸른 강이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남한강의 팔당에서, 여주에서, 낙동강의 상주에서, 구미에서, 영산강에서, 금강에서......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 것들이,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것들이 많습니다. 반성과 참회 속에 종교인들이 발을 벗고 나서서 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한 걸음, 한걸음이 죽음으로 가는 사대 강의 현장으로 향해졌으면 합니다"

- '지리산자락에서 박남준이 띄웁니다' e-메일 편지 몇 토막

 

시인 박남준은 "푸른 강이 고통 받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그는 "무지막지한 도살자들이 그들의 탐욕어린 검은 배를 채우기 위해 온통 난도질을 하고 있다"며 "거기 그 자리 힘겹게 온몸을 던지며 잔인한 폭력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 우리 작가들도 온몸과 문학을 던져 강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작가회의 소속 김창규 시인은 "우리 생명의 젖줄인 4대강을 살리기 위해 시인들이 옷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설 수밖에 없다"며 "강이 살아야 자연이 살고, 자연이 살아야 온갖 생명 있는 것들과 더불어 사람도 함께 살 수 있다. 강이 죽으면 자연도 죽고, 뭇 생명도 죽고 나아가 사람도 살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회의 관계자는 "이번 젊은작가포럼과 시분과위원회에서 어렵게 만든 낙동강 순례의 길에 참가를 부탁드린다. 신청한 작가가 서른 분도 아니고 세 분뿐이다. 작가들의 한 걸음을 보태달라"며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명박의 사대 강을 막아내서 다시 흐르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에 설치되어 있는 하구언까지도 걷어내 분단된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일까지도 작가들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작가들 참가를 간곡하게 부탁했다.

 

참가비는 3만 원이며, 일정은 사정에 따라 조금 바뀔 수도 있다. 참가신청은 6월 17일(목) 낮 11시까지. 작가회의/minjak1118@hanmail.net. 문의/ (02)313-1486


태그:#낙동강 순례,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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