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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쉬운 건 예산안 짤 때 색연필을 들고 복지 예산을 쫙 올려 그려버려야 했는데, 그걸 무식하게 늘렸어야 했는데 논리적으로 하다 보니 성과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내가 (대통령 하면서) 아쉽게 놓친 것도 있고 바빠서 못한 정책도 있지만 대통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 보편적인 마인드. 그 시대 국민들이 감세나 보편적 복지 등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목소리의 경상도 사투리. 스피커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 독후감'이 울리던 16분 동안 강의실에 있던 70여 명의 청중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은 지난 24일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오마이북) 발간 기념 특강을 가졌다.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번 강의에서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유러피언 드림>을 교재삼아 강사로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죽기 전까지 측근들과 함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국가의 역할>, <슈퍼 자본주의>, <더 플랜>, <빈곤의 종말>, <이제는 당신 차례요 Mr.브라운>,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생각의 오류> 등 10여 권의 책을 읽으며 한국 진보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발간된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는 노 전 대통령이 왜 이 책들을 탐독했는지를 측근들의 입을 빌어 모아놓은 책이다.

 

평등이 성장과 '사람 사는 세상' 만든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는 미국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의 특징을 경제적인 이해관계에서 분석한 책이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김 전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있었잖아요. 통합되어가는 이 추세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게 뭐냐. 진보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었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 나오는 '진보의 시대', '보수의 시대'라는 개념을 통해서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셨죠."

 

김 전 처장은 "1920년대 시작돼 레이건 대통령 전까지 이어진 진보의 시대에는 소득 양극화가 최소화되었으며 사회적 공동체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1950, 1960년대에는 진보정당인 민주당과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정책에는 거의 차이가 없기도 했다. 김 전 처장은 "이 시대에는 보수주의자 닉슨 대통령도 사회보장연금을 인플레 수준과 연동시키고 전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권의 정책과 성과가 당대의 흐름에 많이 좌우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한 보수의 시대에서는 진보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보수에 가까운 정책을 썼다.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당이었지만 금융자본과 벤처기업을 결합하는 등 전반적으로 금융이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는 것이 김 전 처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진보가 미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김 전 처장은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역사를 통해 진보의 시대에는 소득불평등이 낮고 생산력은 높았던 반면 보수의 시대에는 소득 불평등이 높고 생산력이 낮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성장이 평등의 조건이 아니라 평등이 성장의 조건이라는 새로운 인식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인식을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선택가능하고 제도적인 진보로 발전시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 했었죠."

 

김 전 처장은 "지방선거에서 범 진보세력인 야권이 승리하긴 했지만 그것은 진보가 잘해서 라기 보다는 지금 보수정부가 못해서 그랬던 것"이라며 "진보주의 정치가 시민공동체 운동과 결합하고 지방자치 권력부터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확보하면 진보 세력들이 재집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은 왜 유럽적 가치를 주목했을까?

 

제러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개인주의적 독립으로 대표되는 미국적 가치에 종언을 고하며 다가오는 시대에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삶의 질, 상호 의존 공동체가 유효할 것이라고 전망한 책이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유러피언 드림>에 대해 "한 마디로 얘기하면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써 놓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미국이 깔아놓은 기차길을 졸졸졸 따라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경제적 성장이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지만 유럽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지식인인 제러미 리프킨은 유럽적 가치가 옳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 대표는 "유럽에는 시장보다 시민사회의 힘이 살아있으며 이는 공동체의 힘하고도 연결되어 있다"고 전했다. 우수한 공동체 교육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도시 전체에 슬럼가가 없다. 아예 처음부터 도시를 설계할 때 부자와 중산층, 가난한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살도록 만들기 때문. 이런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아파트를 사고 팔 때 차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오 대표는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살아있는 시민사회가 있다"고 말했다.

 

"왜 노 전 대통령은 이 책을 읽었고 유럽에 가고 싶어 했을까요? 저는 답을 찾고 싶어서라고 봅니다.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할 때 가장 유력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사례를 직접 한번 보는 것이죠."

 

오 대표는 "나도 이 책을 읽고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으로 직접 유럽을 가보는 기획을 짰다"며 "프랑스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스위스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체험했으며 이제 중소기업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책은 여유가 사라진 이 사회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주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경쟁으로 불안한 이 사회를 더불어 같이 안정된 사회로 만들고 이웃과 공동체를 복원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그:#노무현,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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