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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여로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19로부터 시작되어 한국 사회는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국가와 시민사회가 대립을 해왔다. 현재까지도 우리의 주된 화두는 민주주의이고, 이명박 정부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이며 그를 구성하는 기준이 있는 것일까?

사실 이승만 정부를 비롯하여 군사독재 시절에는 우리의 요구는 분명했다. 전국적인 국민의 요구는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간접선거가 아니라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노동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권리, 결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요구는 민주주의의 요구이며, 민주적 정부를 만드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사실상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요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평등사회를 위한 민주주의 열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성평등 요구가 민주주의의 주요 의제로 포함된 것은 80년대 이후부터라는 것이 대부분 여성운동계의 주장이다. 80년대에도 여성운동은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민주화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주축 역할을 했지만 가장 배제되어 온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 터져 나오면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여성운동의 주된 축이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으로 여성운동은 관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운동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상 한국 여성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성장과 괘를 같이 하며 발전하였다. 그리고 제도적 개선에서는 괄목할 만한 압축적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 의제는 민주주의 속의 특수한 부문운동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가치로서 여성주의와의 접점 형성이 저조한 편이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논쟁을 통해서 민주주의와 여성주의는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에 여성주의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1. 배제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고민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다. 인민에 의한 질서라는 어원을 가지고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고 독재적 통치를 반대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온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이 오랫동안 여성주의적 요구를 배제하게 만든 것일까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역사 속에서의 시민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봄으로써 민주주의가 갖는 근본적인 철학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1) 노예노동과 여성의 재생산노동을 전제로 한 직접민주주의

"우리의 정체는 민주주의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 페리클레스

민주주의의 고전적 모델인 아테네 도시국가의 시민이며, 장군,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의 말은 바로 도시국가의 민주주의가 어떤 성격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서구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상은 시민들간의 평등∙자유∙법과 정의의 존중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에게 개인의 덕성은 시민의 덕성은 똑같은 것이었다. 개인은 바로 시민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개인은 도시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이었고 노예가 아닌 지주 성인남성만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 이러한 개인만이 시민의 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정치, 경제, 행정 등에 직접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개인은 오직 폴리스 내에서 그리고 폴리스를 통해서 시민으로서만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성취하고 명예롭게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윤리와 정치는 정치공동체 삶 속에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정치적 평등을 누렸다. 시민들은 정치에 직접 참여했으며 일반 시민과 공직과 어떤 권한의 차이도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은 바로 도시국가의 남성이었다. 아테나의 정치문화는 성인남성문화였다. 20대 이상의 남성만이 시민으로 활동할 자격이 있었다. 고대 민주주의는 가부장적 민주주의였다(데이비드 헬드, 2010)".

이러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다. 바로 시민들에게 자유 시간을 창출해주는 외국인, 노예경제 그리고 남성들이 자유롭게 공적 직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해주는 가사노동 즉 여성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2) 백인남성 중심의 근대민주주의

이후 이러한 시민의 범위는 공화주의 사상이 보급되면서 확장되었으나 여전히 성인남성 특히 백인남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였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자리 잡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성인 남성, 특히 백인 남성만을 그 주체로 설정하였다. 왜 여성이 배제되었는지에 관한 합리적 설명은 없다. 다만 루소나 많은 학자들이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관습과 전통, 그리고 자연적인 흐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박의경, 2003)"

17-18세기의 중립적으로 보이는 자유와 평등 혹은 합의의 개념들과 근대 민주주의가 태동・발전하였다. 그런데 자유, 평등, 합의라는 개념은 지극히 남성의 경험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남성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성에까지 확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유주의는 왕권통치의 가부장적 기반을 침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아버지들을 좀더 상징적인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여성을 단지 아내라는 지위를 통해 파악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자유는 종속을 전제로 한 것(앤 필립스, 2005)"는 지적과 같이 사회의 가부장성은 타파된 반면 가정의 가부장성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또한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유가 유산자의 자유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자유가 봉건제적 경제 질서의 붕괴와 신흥시민계급의 출현과 함께 진보적 가치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유는 개인 재산의 소유를 인정하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시민혁명으로 인해서 봉건왕국과 신분계급에서 벗어난 재산 소유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였다. 남성부르주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즉 시민권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성인, 납세자 등 당시 남성 부르주아의 권리 및 특권이다. 이러한 자유에 소유권이 없이, 한 가정의 딸이며, 부인의 위치에 만 존재하는 여성이 배제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자유는 이후 노동자 계급으로 확대되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권리라 할 수 있는 시민권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자유주의자에 기초한 시민권은 초기에 부르주아의 권리를 반영해 왔지만 이후 노동자계급에 기반하는 권리로, 다시 다원적 집단에 기초하는 권리로의 변모과정을 밟는다. 18세기 후반 이래 노동자 계급의 형성과 성장은 부르주아의 지배구조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고 부르주아의 지배체제를 노동자계급의 타협을 통한 헤게모니적 동의체제를 구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장미경, 2001).

여성의 비시민으로서의 조건은 변함이 없이 지속되었다. 합리주의와 계몽사상의 생산지인 서구에서 여성이 선거권이 대체적으로 확보한 것은 세계대전 이후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150여년이 흐른 뒤였다. 이 참정권 수여(?)의 정치적 배경으로는 사실상 전쟁이 주는 성과급과 같았다. 전쟁 중에 여성의 역할, 활동에 대한 성과급과 같았다. 마치 전쟁에서 공을 세운 노예에게 시민으로 인정되는 고대의 관습과 비슷한 혜택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 주요하게는 여성의 권리, 특히 시민권을 위해서 투쟁해온 수 많은 여성지식인과 여성활동가들의 헌신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기에 <여권의 옹호>를 저술한 위대한 울스턴크래프트를 비롯한 많은 여성지식인과 투쟁이 근 2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결과였다.

시민권이 여성에게 법적으로 주어졌다 하여도 가부장적 사회, 가정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의 사상적 배경은 자유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때문이다. 여성의 해방이 자유주의로 인한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기 위하여 위계질서가 '자연적'으로 결정되어져 있다는 가정을 의문시하였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평등함을 주장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였다. 그러나자유주의가 내포한 남성적 패러다임, 공사분리 이데올로기는 결정적으로 여성의 해방에 장애역할을 했다. 이러한 분리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있는 이론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부장적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대적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것이 여전히 여성주의의 주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2. 민주주의에 대한 여성주의의 도전 

(1) 여성에게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민주주의

여성정치인이나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현상은 더 이상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여성의 정치참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여전히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한국여성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이미 1948년 한국 제헌헌법에서부터 보장되어 있었다. 여성의 참정권과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 정치참여율은 20%를 밑돌고 있다. 이러한 참여를 만들어낸 것도 특별한 제도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여성할당제이다. 서구에서도 여성정치할당제가 도입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할당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비례대표직에 대한 여성의무할당제로부터 시작되어 올해에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선출직 의무할당제가 실시되었다.

서구와 한국의 경험을 보는 것과 같이, 여성의 정치 증진을 위해서는 헌법상의 동등한 권리 보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여성이 정치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제도화가 필요했다. 따라서 여성의무할당제는 특혜가 아니라 여성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현실적 조건을 반영한 성평등을 위한 조치의 하나라는 것이 전세계가 공감하는 바이다.

이상과 같이 여성주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쓰고 있다. 여기서 여성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접합할 수 있으며, 여성주의가 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과제가 남겨진다. 자유민주주의하에서 민주주의 원칙은 항상 성평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여성은 종속의 위치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종과 생태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성, 인종, 생태가 주변화되고 외부적 위치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와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되어 가야 할 것인가? 

(2) 재구성되는 여성주의와 민주주의

앞서 밝힌 것처럼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왔다. 민주주의가 기초한 보편주의의 외연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보편주의는 실질적으로 소수를 기준으로 하는 배제성이 포함된 것이다. 고대민주주의는 도시국가의 시민만을 공화주의 시대에서는 귀족계급만을, 근대민주주의에서는 바로 백인성인남성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보편주의는 특수한 소수를 기반으로 한 일원론적 사관에 기초해 있었다. 현대까지 보편주의는 중심과 주변으로 사회를 나누는 것이면서 중심을 제외한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인종적인 입장에서 볼 때 18세기-19세기까지 서구의 민주주의는 식민지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국민국가 내에서도 국민국가의 (법적)시민만의 민주주의였다. 그 속에서 여성도 배제의 대상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여성주의는 타자화된 여성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정립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성의 의제, 권리를 보편성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노력해왔다. 또한 여성주의는 그 내부에서도 자기 진화를 위한 담론 투쟁을 전개해왔다. 여성의 정체성과 성불평등에 대한 기원에 대한 여성주의 내부에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가부장제와 남성과 대립한 단일한 정체성으로서 여성이 아니라 여성도 그 안에 다양한 정체성이 있으며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자는 담론까지 자기발전의 과정을 진행해왔다.  여성을 한 성격의 주체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여성들 사이의 다중적이고 복수적인 차이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차이의 정치'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차이의 인정은 다양한 다른 종속 이슈에도 적용될 수 있고, 민주주의 담론 발전과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여성주의는 다른 진보적 담론과도 접점을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 특히 맑시즘과 여성주의의 접점은 인종문제, 생태주의와 맑시즘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맑시즘은 모든 사회를 계급적 관계로 보며, 성, 인종을 포함한 모든 갈등을 계급적 관계로 환원시켜 버린다. 맑시스트들도 자유주의와 같이 일원론적인 보편주의를 사회의 절대적 가치, 합리성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여성주의는 비판한다. 그리고 맑시즘, 자유주의 둘다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으로생활을 나누어 공적 영역에 정치적 의미를 둔다. 결국 여성의 생활과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사적 영역으로 취급되어 비정치적이고 비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노동은 생산적 의미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남성들의 공적 생활, 노동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로서만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급진적 페미니즘 선언은 이런 점에서 성차를 기초로 한 공사 분리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적 정치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유주의, 맑시즘, 여성주의 등 담론은 서로 대립하면서 발전해왔고, 이러한 대립적 관계는 상호 영향을 미치며 진보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것은 사회변화, 역동성을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결과이며, 역으로 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만드는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샹탈 무페는 이러한 발전이 민주주의적 담화의 전복적 특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 혁명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갈등이 증대함을 볼 수 있다. 지배/종속의 관계들로 형성된 모든 위치들은 민주주의적 담화의 전복적 특성 때문에 해체될 것이다. 민주주의적 담화는 그 출발점 즉 정치적 민주주의에서의 시민들의 평등에서부터 나아가 경제의 수준 그리고 성, 인종, 세대, 지역 등과 같은 다른 사회관계에까지 확대하는 사회주의에로 그 영향의 범위를 확대한다." (샹탈 무페, 2006)

그렇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그 원리는 무엇일까.  역사는 끊임없이 불평등, 종속에 대항하는 적대들이 투쟁을 하여 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정치적・경제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갈등・투쟁이 분출되었다. 대표적으로 1968년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갈등이 가시화되었다. 새로운 갈등은 그간의 중심적인 의제, 계급적 투쟁의 우선성, 중심성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접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성주의는 성불평등의 갈등을 주로 한다면 다른 종속에 저항하는 투쟁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가이다.

우선, 다양한 갈등과 가치를 인정하는, 차이를 인정하는 정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성주의는 바로 이러한 '차이의 정치'를 그 태생으로부터 주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접점의 원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불평등에 대한 투쟁과 등가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중심과 주변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등가적 연대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진정한 다원주의적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다음으로 남는 문제는 차이의 인정과 등가적 관계와 보편성과의 관계이다. 차이의 인정과 등가적 연대가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일까. 보편성과 특수성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 이런 관계와 과정을 라클라우와 무페는 '헤게모니적 실천'으로 설명한다. 헤게모니적 실천을 중심으로 급진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로서 급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라클라우와 무페는 민주주의 재구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독특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한때 보편성은 차이를 억압하고 소수성을 배제하는 범주로서 기각되었지만 (급진민주주의론자들은) 포함과 배제의 그물망을 재배치하는 새로운 보편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갖는 선험적 보편성은 없으며 오직 우연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소급적 보편성만 존재할 뿐이다." (김정한, 2009)

여성주의자가 원하는 민주주의는 산발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다원주의가 아니다. 현재의 지배권력인 자본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데 무기로서 역할을 하는 가치이어야 하고 지향점이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실천을 중심으로 보편성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차이의 인정을 기초로 다른 갈등과의 등가적 연대성을 지지하면서 실천 속에서 다양성과 특수성을 넘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여정 속에서 여성주의는 더 넓은 세계와 소통하고 진정한 진보적 사회에 토대가 될 것이다. 

결론

민주주의는 합의와 동의의 정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한계가 있었으나 민주주의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정체임에 틀림이 없다. 민주주의는 역사적인 구성물이다. 역사젹인 자산 중 가장 열려있는 구성, 이념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의 진보성을 담을 수 있는 최적의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합의와 동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입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 적합한 그러면서 우리의 방향을 담는 구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필자는 민주주의의 어원이 주는 언어를 빌려오고 싶다. 인민의 질서이다. 그 인민은 바로 우리의 힘에 의해서 규정되어진다. 역사가 보여주듯 인민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로 인민의 성격이 만들어지고 그 보편성을 인정받아왔다.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이 시점에서 필자는 유물론에 기초하여 변증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석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에 대한 유물론적 접근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래서 필자는 맑스주의의 경제적 관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초국적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저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를 핵심으로 보는 근대사상은 우리가 계속 이어가야 할 중요한 자산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이 환원주의적 (결정론) 일원론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에서 잃어버린 가치 그러나 현재 지구화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과 소통하는 민주주의가 바로 그 대안일 수 있다.   

여성주의는 끊임없이 민주주의 구성에 문을 두드려왔다. 그러나 앞서 밝힌 듯이 (성중립적인 듯이 보이는 장치로 무장한) 가부장적 (맑스주의를 포함한) 정치질서에서 주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주변화된, 타자화된 가치로서 여성주의는 오히려 적극적 활동인자로서 민주주의 재구성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오히려 자유주의적 다양화로 포장한 지구화된 가부장적 자본주의 질서의 정체를 밝히며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진보적 가치로서 여성주의의 역학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참고자료

김정한 (2009), 서평- 포스트맑스주의 이루 좌파이론의 최전선, 『문화과학』 59호
박의경(2004), "자유민주주의와 호주제", 『오늘의 동양사상』 통권10호 (2004 봄·여름)
장미경(2001), "시민권 개념의 의미 확장과 변화", 『한국사회학』 제 35집.
앤 필립스 (2005), 민주주의, 『여성주의 철학 2』, 한국여성철학학회 옮김, 서광사
데이비드 헬드(2010), 『민주주의 모델들』,  후마니티스
샹탈 무페 (2006), "헤게모니와 새로운 정치주체",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이행 옮김, 인간사랑
스티브 모튼 (2003), 『스피박 넘기』, 이운경 옮김, 앨피

덧붙이는 글 | 김애화 기자는 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태그:#민주주의,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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