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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본 글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다루는 글이다. 먼저 베버 이전의 종교사회학적 입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베버의 사회과학방법론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다루는 종교사회학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베버의 주장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을 살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베버의 저작의 의의를 검토할 것이다.

베버 이전의 종교사회학 ; 마르크스와 뒤르켐

베버 이전의 종교사회학자는 대표적으로 마르크스와 뒤르켐을 뽑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 연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지만 그의 종교에 대한 논의는 종교사회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의 종교 연구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았다. 포이어바흐는 종교는 일반적으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신이라는 성스러운 권위에 의해 포장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적 권위를 믿고 규율을 따르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종교가 계급 간의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게다가 종교는 세속을 초월하는 가치를 추구해서 현재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며 이 또한 결과적으로 상층 계급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마르크스는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종교가 인간의 풍요로움을 열어줄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뒤르켐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관점을 취한다. 그는 본격적으로 종교 연구를 했고 각국의 종교를 분석한 저작을 쓰기도 했다. 뒤르켐의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은 각 부분이 전체를 위해 유기체적으로 기능한다는 기능론적 인식이다. 따라서 뒤르켐은 종교는 신성한 것을 전제로 하면서 개인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만드는 원동력의 차원에서 인식했다.

베버는 마르크스와 뒤르켐과 다른 메커니즘에서 종교를 논의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갈등론적으로 바라보면서 사회 갈등을 은폐하는 메커니즘으로 인식했고 뒤르켐은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파악하면서 사회 질서의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반면에 베버는 종교를 사회 진보의 원동력으로 보면서 그 이전과의 인식론적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

막스 베버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비판적 계승자이다. 베버는 마르크스의 계급론의 한계를 인식했지만 그에 대해 전적으로 비판적이지는 않았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토대가 문화나 정치와 같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의 입장을 폈다.

하지만 베버는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에 일부 타당성이 있음에 동의하면서도 경제와 다른 사회제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계층론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베버의 이러한 사회학적 관점을 담은 저작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경제적 요소의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고 여겼지만 종교윤리와 경제적 관련성에 대해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베버가 종교는 놀라운 사회변혁을 이끌어낸다고도 보았기 때문이다.

베버가 이러한 연구를 진행한 목적은 동양의 종교는 왜 서양처럼 자본주의 발달에 도움을 주지 못했냐는 의문을 품은 것에 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베버의 방대한 종교 연구의 일부이자, 프로테스탄트(캘빈주의) 윤리와 자본주의 발전의 관계를 분석한 저작이다.

베버는 2장에서 자본주의 정신의 의미에 대해 논의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는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 개인이 발견된 시기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고에서 합리성이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찰할 때 자본주의 정신은 쾌락적인 생활을 회피하고 시간을 절약하고 공정하게 돈을 버는 것은 합목적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정신의 특징은 베버가 2장에서 인용하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에 잘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은 캘빈주의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캘빈주의는 신에게 구원받을 개인은 소수만으로 이미 정해져 태어나고 개인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신조이다. 하지만 캘빈주의가 개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캘빈주의는 속세에서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일한 자에게 구원의 기회를 준다. 따라서 캘빈주의자는 세속적 활동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직업인이 된다. 베버에 따르면 캘빈주의는 자수성가한 중산층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캘빈주의와 자본주의의 연관관계를 살필 수 있다. 첫째로 자본가들은 경제적 책임은 윤리적 책임으로 느끼게 되었다. 둘째로는 캘빈주의는 자본가들에게 양심적인 노동자들을 제공해주었다고 믿게 했으며 이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셋째로 불평등한 분배는 자본가들에게 노력한 대가에 대한 신의 특별한 포상 차원에서 인식하게 했다. 따라서 캘빈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다른 종교적 상황에서 종교는 자본주의 발전이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서술한 내용은 아니지만 여기서 그에 대해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버는 동양에서 여러 가지 상업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을 흰두교와 유교, 도교의 특질에서 찾는다.

유교의 일반적인 특징은 사회적 상승이동을 위해 문예를 중시하여 동양인이 경제활동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유교주의자는 캘빈주의자들과 다르게 구원사상도 없었고 이윤추구도 부도덕하게 인식했다. 반면 도교주의자들은 최고선을 속세에서 얻어지는 은혜가 아니라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구원에서 찾는다.

따라서 도교는 현실 속에 합리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흰두교는 세속적 직업을 피할 것을 강조하며 경제적 활동보다는 카스트 내의 규율을 준수하는 것이 다음 생애에서 이점을 얻는 것으로 보았다. 베버는 이러한 동양의 속세보다는 내세를 중시하는 종교적 전통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비판

베버에 대해 루요 브렌타노는 베버가 말한 캘빈주의적 정신이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나타났고 단순히 프로테스탄트뿐만이 아니라 가톨릭에게도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브렌타노는 베버가 말한 캘빈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의 상호관계는 인정했다.

그런데 쿠르트 사무엘슨은 이러한 상호관계도 인정하지 않았고 베버의 가설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경험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캘빈주의 이전에 베네룩스 국가들과 독일 북서지역은 300~400년 동안 경제적 행위가 활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네덜란드와 플랜더즈 지역은 공장제 수공업과 상업이 한자동맹지역에서는 제철, 제염, 국제 무역이 발달했다. 캘빈주의가 17세기 이후에 널리 퍼진 지역이지만 대다수 지역은 종교개혁 훨씬 이전부터 경제발달이 시작됬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영국은 13세기 이전부터 기술적이거나 산업적 그리고 경제적인 발달이 두드러졌다. 따라서 베버의 주장은 실증적으로 기각되는 것이다.

반면 콜코는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저술하던 당시 식민지의 자본주의적 특색은 베버식의 합리주의적인 자본주의관과는 대비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식민지의 자본주의적 활동은 투기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공급 과잉의 경우 식민지로 상품이 보내졌다. 이는 베버가 비판한 자본주의에서의 추악한 행태의 전형이다.

한편 짜이틀린은 베버의 저작에 인용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글에 대한 베버의 독해를 비판한다. 프랭클린의 경제관은 베버의 이해보다 중농주의적이었고 공장제 수공업자나 상인, 전문인, 장인 등은 경제 성장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했다. 따라서 베버의 프랭클린에 대한 독해는 피상적이고 선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결론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한국적 맥락에서의 의의

물론 베버의 주장의 실증적 빈약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볼 때 베버의 저작은 교훈을 줄 수 있다. 한국은 후발산업국가로 뒤늦게 급속하고도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 근대화 과정의 결과는 경제적 풍요라는 긍정적인 결과도 존재했지만 부동산 투기나 악랄한 탐욕주의, 매몰찬 경쟁주의가 득세했다. 이는 공익을 위한 이익추구의 정신이기보다는 추악한 사익 추구의 발로이다. 이는 베버가 비판했던 전형적인 경제적 활동이자 천민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에의 추구는 경제 위기를 불러올 우려도 있다. 실례로 20세기 초에는 이러한 투기적 행태 때문에 서구에서는 대공황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베버의 저작의 해석에 일부 오류가 존재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는 보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기든스, 앤서니(Anthony Giddens), 『현대사회학』, 을유문화사, 2009
리처, 조지(George Ritzer),『사회학이론』, 한올, 2006
임상우, 「고전 다시 읽기 : 역사학 연구방법론의 새로운 고전 막스 베버(Max Weber),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양사론 제103호, 2009
짜이틀린, I M(Irving Zeitlin),『사회학 이론의 발달사』한울, 2006
코저, 루이스(Lewis A. Coser),『사회사상사』, 일지사, 1997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완역본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2018)


태그:#베버, #프로테스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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