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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는 언제 봐도 뒷모습이 십대 후반의 소녀 같다. 걸음걸이는 발랄하고 옷차림은 언제나 자투리 헝겊 몇 장 붙여놓은 것처럼 싸구려 티가 팍팍 나고 엉성한데도 이상하게 칫수와 품을 딱 맞춰놓은 것처럼 잘 어울려 보인다. 어떤 옷을 입혀놔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것이 젊음의 특장일 테지만 누이가 그렇게도 젊은가, 하는 질문에는 내가 그만 말문이 막힌다.

그래서 누이를 만나면 보고 또 보고 자꾸 보게 된다. 뒤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앞에서도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보고 또 보게 된다. 물론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내가 저를 본다는 것을 누이가 알아채서 안 될 이유는 딱히 없지만 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게 있다. 어쩌면 질투심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날마다 한 뼘씩은 늙어가는데 너는 어찌 그리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가는 것이냐 하는.

그때부터 난 누이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이 질투심에도 역사가 있고 기원이 있었다. 벌써 5년을 넘어 6년이 되어간다. 이혼 절차를 마친 뒤로 한동안 소식을 끊고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던 누이로부터 전화를 받고 마중을 나갔을 때 나는 얘가 장난을 하는가 싶었었다. 버스 터미널에 곧 도착한다고 했던 누이를 찾아서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시골 면단위 버스 터미널이라는 것이 어디나 그렇겠지만 장날이 아닌 한 근처에 사람이래야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어려웠다. 그날도 역시 청소하는 아저씨 한 분과 잡화상을 겸하는 버스표 파는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화장실 앞에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까락까락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차림이 뭐라고나 할까, 오래 전에 나온 장선우씨의 영화 <노랑머리>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연상케 해서 두세 번 연달아 보기는 했지만, 그 아이가 설마하니 나의 누이동생이라는 생각은커녕 상상도 못해본 채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만 해도 내가 핸드폰을 안 쓰던 시절이라 전화를 해서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하릴없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이쪽으로 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입속으로 뭐라고 꿍시렁거리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어디서 "오빠, 오빠 맞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선우씨의 영화 <노랑머리>를 생각나게 했던 바로 그 여자아이였다. 처음에는 아직 솜털도 안 가신 애가 어디서 누구에게 오빠 어쩌고 농담을 하나 싶어서 힐끗 한 번 쳐다보고 말았고, 그 다음에는 이 애가 혹시 티켓다방 같은 데서 영업을 나온 경우인가 싶어서 불쾌한 기분으로 한 번 더 보기는 했지만 차마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하고 다시 외면해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또각또각 구두소리도 요란하게 다가오더니 옆구리를 꾹 찌르는 거였다.

"아이 뭐여, 왜 그래 옵빠아."

그때까지도 내 마음속 생각이라는 것은 '허이 참 백주대낮에 이게 무슨 봉변이람'하는 것이었을 뿐 설마 저 노랑머리가 진짜 내 누이랴 하는 생각조차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느낌이란 생각에 앞서 발동하는 것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 노랑머리를 뜯어보다가 그만 뒤로 발랑 넘어지는 줄 알았다. 눈매며 코며 입이며 양 볼에 검은 점들이며 하는 것들이 내 기억속의 누이와 딱 일치하는 것이었다.

하이힐에 하얀스타킹, 초록색 바지... 내 누이 맞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누이가 나를 얼른 못 알아본 것은 내가 생각보다 늙어 보여서였고, 내가 누이를 얼른 못 알아본 것은 누이가 터무니없이 어려보여서였다. 그때부터 나는 일언이 폐지하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혼란의 가시밭길을 홀로 외롭게 걷기 시작했다고, 그렇게나 말해야 할 것이다.

"오빠, 오빠"하고 부르며 자꾸 달라붙는데 저 사람이 대체 누구네 딸내미인지, 조카인지 손녀딸인지 알 수가 없는 거였다. 굽 높이가 10cm나 되어 보이는 하이힐에 쫄쫄이라던가 뭐라던가, 무릎 바로 위쪽에서부터 단단하게 살을 감싸면서 올라가는, 허벅지 선이 고스란히 강조되는 초록빛 바지에 하얀 스타킹, 포인트라도 내듯이 배꼽이 환히 드러나 보이는 연두색의 아주 짧은 티 한 장을 입었다기보다는 모자이크처럼 붙이고 색깔도 선명하게 아주 노오란 브래지어 끈은 왜 또 그렇게나 도도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있는지, 도무지 눈 뜨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는 없고 몰래 훔쳐보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함박꽃처럼 흘리며 "옵빠, 옵빠"하는 거였다.

멀리서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내가 무슨 원조교제나 하는 것으로 알겠다는 그런 소심한 생각이 들면서 나는 도무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불안하기만 한 것이었다. 게다가 터미널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어서 불안은 곱으로 증폭되었다.

"아이 참 옵빠아, 내 얼굴 좀 봐. 왜 나 안 봐아?"

"가자." 한 마디 툭 던져놓고 앞장을 서고 있는 내 옆으로 바싹 붙어 서면서 누이는 또 그렇게 애교까지 떨어대고 있었다. 그 애교 자체가 딱히 기분 나쁜 것은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뭔가 어떤 방식으로든 내 마음의 불만과 불안을 드러내야겠기에 인상을 북북 긁어가며 힐끗 한 번 돌아보고 몇 발을 걷다가 다시 힐끗 돌아보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아주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당신의 '딸년' 꼬라지 구경을 시켜드리고, 물 한 대접을 들이킨 다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본격적인 취조에 나섰다.

검게 변한 누이의 머리카락, 하지만 배꼽티는 그대로

어머니의 손톱을 깎는 중인 누이동생.
 어머니의 손톱을 깎는 중인 누이동생.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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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이다. 다른 건 나중에 얘기하더라도, 배꼽을 내놓고 다녀야 할 이유는 뭐냐?"
"뭐긴 뭐, 숨쉬기 좋게 하는 거지."
"숨? 넌 배꼽으로 숨을 쉬냐? 그렇다 해도 그렇지, 내놓아야 할 이유가 뭔데?"
"에이 참 거, 뭐야, 왜 그래요. 홀랑 벗고 다니고 싶은데 그걸 참느라고 나도 애 많이 써. 그나마 배꼽이 없으면 숨막혀 죽었을 텐데 뭘."
"헛 참 나 기가 막혀서. 네 나이가 몇이냐?"
"나이타령 하지 마. 나 아직 쉰도 안 됐으니까."

여기서 갑자기 말문이 탁 막혀 버렸다. 아직 쉬흔 살도 안 되었다는 그 소리가 내게는 왜 그런지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다는 소리로 들리는 거였다. 아무래도 취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해야 할 상황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게 5년 전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누이의 머리는 노랗지도 않고 빨갛지도 않고 검정 바탕에 붉은 물이 조금 든 듯이 만 듯이 보기 좋게 절충을 하고 있지만, 여름 한철 배꼽을 시원하게 드러내놓고 배꼽으로 하여금 이 세상 천지만물을 관광하게 하는 통 큰 취미는 여전하시다. 그런데 차림새는 그렇다 하더라도, 얼굴까지 제 나이보다는 적어도 스무 살은 젊어 보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며칠 전 여름 휴가랍시고 와서 하룻밤 자고 가는 누이에게 물어보았다.

"너 혹시 뭔 수술 했냐?"
"수술? 뭔 수술을 해?"
"젊어 보이게 하는 수술 말이야."
"미쳤는갑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하긴 그랬다. 이혼랍시고 했지만 위자료 따위를 바랄 상황이 아니었다. 이혼을 한 뒤에도 오히려 그 남루한 생활이 안타까워서 남몰래 쌀값을 보태줘야 할 그런 남편이고 그런 시댁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입고 있던 옷에 속옷이나 몇 장 가방에 넣고 나온 여자, 그런 이혼녀였다.

이혼의 과정도 면밀히 살펴보면 억울하고 기막힌 게 한둘이 아니었다. 6~7년 동안을 사흘거리로 얻어맞았다. 남편이 제 마누라를 패니까 나중에는 시어머니도 패고 시아버지도 패기 시작했다. 패는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6~7년이 올곧게 지난 뒤에서야 그 진짜 이유가 확연하게 밝혀졌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 점심 때 밥을 먹고 다니는 식당주인 여자와 눈이 맞은 거였다. 오래 전에 이미 딴살림을 살고 있었고, 그 딴살림을 챙기느라 집에 돈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집에 있는 것들을 빼돌리고 있었다.  

"할머니들하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고 편안해"

"자질자질하게 계산하고 꾸어준 돈 안 갚는다고 속상해하고 그런 짓 안 해. 앞으로도 안 할 거고, 영원히 안 할 거야. 떼어먹을 테면 떼어먹어라, 나는 깨끗이 잊고 새로 시작한다. 그 대신 너는 도둑년이고, 도둑놈이다, 그런 거지 뭐."

왜 그렇게 젊어 보이느냐는 질문에 누이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다소 엉뚱한 대답이라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입을 꾹 다물고 마치 무슨 대단한 철학이라도 완성한 사람처럼 엄숙해 있는 누이에게 더 이상 무엇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쨌든 내게는 누이의 그 말이 이렇게 해석되었다. 결혼이랍시고 해놓고 11년 동안을 너무나 구질구질하게 살았다. 이제는 그렇게 안 살고자 한다. 그래서 젊어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혼자 속으로 한참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데 누이는 또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놀아도 젊은 것들하고는 안 놀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머니 급들하고만 놀아. 왜냐하면, 젊은 것들하고 한나절만 있으면 내가 금방 늙어버리고 싶어지지만, 할머니들하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고 편안하거든."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라지만 웃기지 말라고 해라,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었을 터이었다. 여자가 남자 한 번 잘못 만나면 평생을 두더지 노릇이나 해야 한다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 하라고 해라, 하는 뭐 그런 말을 했다 해도 나는 금방 이해하고 동의도 할 수 있었을 터이었다. 그러나 누이는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설령 한다 해도 아마 어울려 보이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있노라면 금방 늙어버릴 것 같다는 것도 아니고 늙어버리고 싶다는 얘기는 무슨 뜻일까. 하룻밤을 새고 돌아가는 누이를 버스 터미널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데 그 대목이 영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서 몇 번이나 고개를 앞뒤좌우로 흔들어대야만 했다. 할머니 급들과 어울리면 시간이 멈춘 듯해서 편하다는 얘기는 대충 알겠는데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불편하다는 말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고 영 헷갈리면서 누이가 어느새 무슨 도사라도 되어버린 것 같아지는 것이었다.


태그:#누이, #젊어지는 비결, #체념 혹은 달관, #단순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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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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