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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낮일과를 마치는 오후 다섯 시 정도에 나는 항상 산을 다녀온다. 그런데 엊그제는 향남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어서 아예 운동도 할 겸 오전에 산에서 만나자고 했다. 차를 밑에다 파킹하고 목사님 한 분 하고 의논할 일이 있어서 이야기하면서 산을 오른다.

 

정상에 임박하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도저히 그 산 분위기에 맞지 않는 고성방가였다. 누구들일까. 아직까지 산을 다녀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서로 몰라도 가벼운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교양 있는 분들도 많은데 이 소리는 지금 굉장히 낯선 풍경이었다.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쉬어 갈 수 있는 누각이 있다. 우리가 누각에 올라가서 보니 바로 밑 그러니까 우리 하고 10미터도 안 떨어진 데서 아줌마들 열댓 명이 거의 노래방 수준으로 흔들고 떠들고 흥분하고 난리 부르스다. 설거지들은 제대로 해 놓고 나온 것인지 그 이른 시간인데 그리고 술 한 잔씩 걸쳤는지 남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옛날 노래들을 불러 대고 있었다. 노래 솜씨들은 제법이었다.

 

다른 데서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거기가 그 아줌마들만 노는 장소가 아니고 누구나 쉬어가는 공공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남한테 피해가 되는 건 아닌 지를 살펴보고 좀 외진데다 자리를 폈어야지 거기가 어디라고 그 난리를 치는 것일까. 교양 문제고 상식문젠데 왠지 추해 보였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모처럼 날 잡아서 나온 아줌마들한테 말하기 뭣해서 불편하지만 시치미 떼고 다 듣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워서 우리 얘긴 소통이 잘 안됐지만 그래도 거기가 쉼터로 누각이 있으니 딴 데로 옮기기도 그래서 그냥 있었다.

 

동행한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근데 말이야, 혹시 저 아줌마들 교인들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극히 일부지만 요샌 날라리 같은 교인들이 교회서는 거룩한 체 하고 밖에 나와서는 별 짓 다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인들이 설마 저러겠소?"

 

우리가 이런 저런 것을 이야기 나누는 동안 놀만큼 놀았는지 우리 보기 미안해서인지 그 아줌마들은 자리를 걷고 하산을 준비 한다. 우린 속으로 '에이, 얼른 내려가라' 하고 있는데 그 중에 진짜 교인이 있었는지 어떤 아줌마께서 하시는 말씀이 뒤통수를 친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뭐? 뭐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잘 한다 잘해."

"거봐요. 요새 나이롱 교인들 저렇다니깐요."

 

정말 안 들었으면 더 좋았을 저 소리에 우리는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물론 유행가를 불러서 문제는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란 말이다. 자기들만의 공간이라면 유행가를 하든 굿을 하든 자유지만 남들 흉보는 줄도 모르고 그 난리를 치고 게다가 주님의 이름까지 찾으니 오호라 통제라.

 

누구 말마따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걸 거기서 주님은 왜 찾느냐는 것이다. 하긴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께 죄송한 표현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가 웬지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저러고 그 아줌마들 내려가니까 산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맑고 깨끗하고 풀냄새 향긋한 우리의 산은 정말 대한민국에 내려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좋은 자연 환경에 다시는 그런 잡상인 같은 공해가 없기를 바란다.

 

언제 어디서나 부끄러움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교회에는 신자가 많은데 세상에는 신자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대이다. 그 날은 내가 목사인 것이 부끄러웠다.


#고성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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