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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 북한산에 갔다. 어제 내가 선택한 코스는 '산성매표소(북한산성 입구)~태고사계곡~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구기분소', 평소에도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어제도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오후 2시 30분 무렵 비가 한차례 거세게 내렸다 그쳤다. 이후로도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이 때문에 산길에는 계속 물이 흘렀다. 그래도 오후 4시 무렵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요즘 며칠 간헐적으로 내린 비에 잠깐 내린 비가 더해졌기 때문인지, 북한산 계곡 물소리는 유난하게 웅장하게 들려왔다. 잠시 멈춰 보고 있자니 가슴속과 머릿속까지 시원해졌다. 지난해는 물론 6월까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행복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나처럼 멈춰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리고 나처럼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으로 계곡풍경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처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그 웅장한 물소리를 담고 싶어서 아니었을까.

 

"북한산계곡 너무 좋아요. 은평구에 살거든요. 우리 동네에서도 북한산을 갈 수 있어서 자주 산행하는 편인데, 오늘은 친구들과 그냥 소풍삼아 도시락 싸들고 이런 옷차림으로 나왔어요. 요즘 이곳에 자주 놀러 나와요. 솔직히 작년까지는 이렇게 서서 물 구경하기 힘들었어요. 이쪽만 해도 음식점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공연히 감시받는 것 같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서서 물 구경도 하지 못했고, 또 물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음식점들 때문에. 그런데 음식점들을 모두 철거하니 좋네요. 솔직히 아무 데나 서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아요. 자주 오고 싶어요"- 40대 중반의 여자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는 이렇게 말하는 중에도 핸드폰으로 계곡물을 계속 찍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곳은 사람들에게 '북한산 계곡'으로 많이 알려진 북한산성 매표소쪽 계곡. 지난해까지 계곡에 즐비했던 음식점들 그 끝 부근이다.(올라오면서 끝)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고, 먹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어제처럼 시원한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물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인공분수까지 설치했던 곳이다.

 

이런지라 어제처럼 계곡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뿌려지곤 했다. 먹고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어 빠른 걸음으로 줄달음치듯 내려올 때도 많았다. 나처럼 눈살 찌뿌리거나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 두 기사는 지난해 8월, 해수욕장과 유원지를 방불케 하던 이런 북한산 계곡을 고발한 기사다.

 

'국립공원 수영 금지... 저 엄청난 물놀이 인파는?

'자릿세 없는 북한산 계곡, 내년에는 가능할까?'

 

기사를 쓴 후 북한산 계곡이 궁금해지곤 했다. 이후 틈틈이 이곳을 지나는 구간을 택해 산행을 하곤 했다. 6월 8일에 갔을 때만 해도 '이러다가 올 여름 장사까지 계곡에서 하는 것 아냐?'의 생각이 들만큼 대부분 가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찾은 것은 지난 18일과 어제, 현재 몇 집만 남아 장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주할 곳은 개업을 앞둔 곳도 있고 이제야 지반 공사를 하는 곳도 있다. 여하간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올해 안에는 100% 철거할 것이란다.

 

현재 계곡에는 설치물들이 더 이상 없다. 계곡에 드문드문 많은 쓰레기들이 쌓여 있고 대형 덤프차가 설치물 잔해를 치우려고 계속 오고 가고 있다. 이런지라 20여개 사찰의 차량만 간혹 운행할 뿐, 개인들의 차량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음식점들이 철거됨으로써 일부 사람들이 차지하던 북한산 계곡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왔지만 2029년까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출입을 제한한다. 통제지역에 들어갈 경우 5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북한산 계곡이 이렇게 깊었나' 싶을 만큼 깊어 보이는 곳이 많아 안전을 위해서라도 절대 들어가선 안 되겠다.

 

한 두 해도 아니고 2029년까지 계곡을 통제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60대로 보이는 아저씨 몇 분이 옆을 지나는데 "어떻게 되찾은 북한산 계곡인데 살아생전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겠네!"라며 아쉬워하는 소리도 들렸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계자들이나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난 십 수 년, 아니 수 십 년간 음식점들이 난립하고 이 때문에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기에 많이 망가져 이처럼 긴 통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2029년까지 출입이 통제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북한산을 위해서이니 어쩌겠는가!" "음식점들이 철거됐으니 아무래도 괜찮다" "등산이 목적인만큼 계곡은 통제해도 된다"와 같은, 한마디로 불만이 없다는 등산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물소리만 이렇게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문일까. "친구들과 점심을 싸들고 소풍을 나왔다"는 한 여성처럼 등산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의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산행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기 좋았는데 이젠 연신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좀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술을 덜 마시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술을 마시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산에 못된 짓을 했구나 싶어 좀 미안하기도 했는데 차라리 잘 된 것 같습니다" - 50대 초반의 남자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하간 어제와 지난 18일,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열에 열은 모두 북한산 계곡 상가 철거"를 '잘한 일'이라고 했다. 여하간 요즘 이곳을 지나는 동안 기분이 좋다. 이유없이 답답하던 숨이 확 트인다. 하여간 무언가를 제대로 즐기는 듯하다.

 

        국립공원 계곡에 발 담가도 될까?

참고로 덧붙이면, 산행을 하다 출입을 허용하는(통제하지 않는)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기도 한다. 물에 잠깐이라도 담갔을 때와 전혀 담그지 않았을 때 발의 피로는 차이가 많다. 또 잠시 산행을 멈추고 갖는 여유도 남다른 행복이다. 이 때문에 여름 산행 때는 계곡물에 발을 담가 볼 때가 많다.

 

그런데 발을 담그고 잠깐 앉아 있자면 이를 보고 지나가며 눈을 흘기거나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거 불법 아니오?"라며 일장 훈계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계곡에 발을 담가보고는 싶은데 무슨 큰 죄라도 짓는 듯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출입이 허용된 계곡에서 무릎 아래 부분은 담가도 된다. 그런데 욕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찜찜하기도 했다. 27일 어제, 북한산 국립공원에 이에 대해 문의했다. 그 답변은 이렇다.

 

"통제된 곳은 출입자체부터가 불법이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출입이 허용된 계곡에서는 무릎 이하 부분은 담가도 된다."-북한산 국립공원

참고로 현재 이곳과 비교적 가까운 북한산 계곡인 '삼천사계곡'은 여전히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말이다. 직접 가보지 않아 어찌 말은 못하겠는데, 들리는 말로 송추계곡도 여전히 성업중이란다.

 

지난 7월 31일과 8월1일에 응봉능선에 가고자 삼천사계곡을 지났다. 지난해 10월과 12월에 비해 훨씬 넓어진 듯했다. '지난해까지 북한산 계곡을 즐겨 찾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이 때문에 확장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오전에는 그래도 물이 맑아 보였는데, 오후에는 눈으로 쉽게 확인 될 만큼 식당 주변 물들이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북한산 국립공원이나 환경부와 같은 관련기관의 모니터링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중 만난 사람들과 사진은 8월 18일과 8월 27일입니다.


태그:#북한산 국립공원, #북한산 계곡, #산성매표소, #국립공원, #북한산 특별보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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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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