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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지나고, 추분(秋分)도 지나고, 기온 차가 심한 환절기입니다.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할 때이지요. 추석 음식이 떨어지니까 입맛도 함께 떨어지면서, 어제(27일)는 새콤달콤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인 병어(병치)회가 생각나더군요.

 

그날 아침 병어나 조금 사다가 회를 무쳐먹으려고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야간근무 날이어서 함께 나갔지요. 운전하던 아내는 누렇게 익어가는 군산 '나포십자들녘'을 보더니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자기 논도 아니면서.

 

시장에 도착, 잡곡이랑 장아찌랑 사서 아내에게 맡기고 병어를 사려고 생선전에 갔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몇 군데 다녔지만, 싱싱한 게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모처럼 나왔으니 잔치국수나 한 그릇 사 먹고 해망동 수산시장에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치 국숫집 문이 닫혔더군요. 국수 대신 콩나물해장국을 사 먹고 해망동으로 향했습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째보선창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해망동에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요. 아내의 주차실력 미숙으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을 못 하는 필자가 보기에도 주차가 불안하더군요. 하지만, 병어만 사면 곧바로 나오자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싱싱한 생선을 보면 먹고 싶고, 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니까 병어 5천 원어치만 사겠다고 다짐했지요. 

 

마침 문에서 두 번째 가게 얼음 상자에 물 좋은 병어가 쌓여 있더군요. 5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지요. 고마워할 줄 알았던 주인은 "지금이 어떤 세상인디 병어를 5천 언어치 팔어유, 하이참!" 하며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더군요.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릅니다.

 

병어회를 포기하고 집으로 오려고 아내를 찾았지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옆 가게에서 생선을 구경하고 있었거든요.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찾아 나섰습니다. 시장을 훑고 다녀도 없고,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불안하게 주차한 차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허둥대고 있는데 생선가게 아저씨가 부르더니 "이거 새벽에 공판장서부터 비싸게 나간 거라 어쩔 수 없어유. 대신 근해에서 잡은 거니께 굉장히 꼬솝고 맛있을 거유. 넉넉허게 줄 티니께 사셔유··"라며 싱싱한 병어 한 마리를 덥석 집더니 공중으로 번쩍 쳐들었습니다. 

 

평소에도 귀가 얇은지라 병어가 맛있게 보이더군요. 특히 근해에서 잡아온 거라는 말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생선의 95% 이상을 수입한다는 얘기를 몇 년 전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갑에서 돈이 나왔고, 아저씨는 약속대로 몇 마리 더 얹어주었습니다.  

 

아내를 찾아야겠기에 일단 돈을 치르고 발길을 돌리는데 한쪽에서 아내가 웃으며 손짓을 했습니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밉기도 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지요. 그런데 웬걸, 검정 비닐봉지를 자랑스럽게 보이면서 싸게 샀다며 1만 원을 내라는 거였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상의 한마디 없이 병어를 겹치기로 사놓고 돈을 내라는 아내에게 잘했다는 칭찬이 나올 수가 없지요.

 

"비싸서 그냥 갈라다가 큰 맘 먹고 사 놨는디, 자기 맘대로 또 사면 어떻게 허냐고. 상의를 허야지 상의를, 이게 머냐고!"

"조금 전에 안 사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산 것인데···, 그럼 내가 자기에게 1만 원을 주고 병어는 부산 어머니에게 갈 때 가지고 가면 되죠 뭐···."

 

5천 원어치는 안 판다고 해서 포기했다가 큰 맘 먹고 1만 원어치 샀는데, 아내는 상의도 없이 1만 원어치를 또 사놓고도 태평스럽게 말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 애간장까지 태워놓고 샀으니 속이 편할 수가 없지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마디 더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어머니 핑계 대지 말라고,  오늘 부산 어머니에게 드릴 생선 사러 나온 게 아니니까. 어디 간다고 말도 없이 사라져서 쌩돈을 나가게 혀놓고, 잘혔다고 끝까지 우기는구만··."

"그런 걸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화내고 그래, 하여간 자기하고는 어디든 함께 다니지 말아야 한다니까, 운전하는 것까지 간섭하고···."

 

불안한 주차와 병어로 시작한 언쟁은 운전으로까지 비약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싶을 때가 몇 차례 있었으니까요. 무와 쪽파를 사려고 재래시장에 들렀을 때도 저는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함께 걸어 다닐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싸우고 먹는 병어회, 더 고소하게 느껴져  

 

집으로 돌아와 저는 서재로 들어가고 아내는 채소와 병어가 담긴 시장 가방을 들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을 것인지 쫓아다니면서 '이왈저왈'했을 텐데요. 죽이 끓든 밥이 끓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아내가 정답게 부르면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병어회가 담긴 큰 유리그릇을 들고 오더니 맛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양념이 묻은 회 한 첨을 입에다 넣어주면서 어떠냐고 묻더군요.

 

입으로 들어간 병어회는 곱게 씹히면서 오감을 자극했습니다. 단맛, 신맛, 매운맛, 고소한 맛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노여움을 일시에 가시게 하는 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됐네! 됐어!"로 맛본 소감을 전했습니다.     

 

아내는 만족스러워하며 뼈와 머리는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국물 맛이 그만이라고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둘이는 언제 싸웠느냐는 듯 식탁에 마주 앉았지요. 밥을 한 공기나 먹었는데도 아쉬움이 남더군요. 국물이 개운하고 구수한 김치찌개가 식욕을 더욱 돋웠습니다. 일주일은 반찬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여름 생선인 병어는 마름모꼴이며 등 부분은 회색을 띠고 배 쪽으로 내려올수록 백색을 띱니다. 싱싱할 때 잘 다뤄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지요. 뼈가 연하고 껍질에 윤기가 흘러 곱게 단장한 여인과 비교되는 생선이기도 합니다.

 

실컷 싸운 후에 먹는 병어회 맛, 매콤, 달콤, 새콤한 맛이 가미되어 고소한 맛도 더하는 것 같았는데요. 비 온 후에 땅이 굳는다고 하죠. 부부 사이에도 싸우는 만큼 정도 깊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병어회,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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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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