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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기행 다섯째 날(8월16일)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식당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나오기까지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땀 흘리며 걷는 시간이 많아 고행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낀 하루여서 보람이 있었다.

용정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20분 국경도시 도문(투먼)을 향해 출발했다. 두만강 중류에 위치한 도문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동부의 중요한 교통요충지로 북한 함경북도 남양시와 연결된 '도문대교'가 있고, 하얼빈, 단동, 심양, 북경 등지로 가는 열차 출발점이기도 하다.

용정에서 도문시 가는 방향에 있는 개산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유일한 제지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용정에서 도문시 가는 방향에 있는 개산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유일한 제지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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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도심을 벗어나니까 들녘이 펼쳐졌다. 시냇물이 흐르는 모래밭이 보이고, 옥수수밭도 보이고, 멀리 마을도 보이고, 연기가 솟는 제지공장 굴뚝도 보였다. 원만하게 그어진 산 능선과 조선족 가옥들은 60년대 우리 농촌을 떠오르게 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최근 들어 두만강 부근 마을에 옥수수를 심지 말고 콩을 심으라는 중국 정부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옥수수를 따가기 때문에 콩을 심으라고 권장한다는 것.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때는 식량지원이 잘 되고 해서 좋았는데, 요즘은 조금 껄끄러운 관계여서 가이드들도 멘트를 할 때 조심스럽다고 했다. 외화벌이를 위해 연길에도 북한 전시관을 세워놓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물도, 주변의 흙도 잿빛인 두만강. 이상하게 강 건너 북한의 밭에서 익어가는 곡식들이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강물도, 주변의 흙도 잿빛인 두만강. 이상하게 강 건너 북한의 밭에서 익어가는 곡식들이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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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으로 향하는 길가엔 잡초가 무성했다. 하지만, 땅에 물기가 없고, 색깔도 잿빛이어서 싱그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검고 칙칙한 땅은 민족의 애환이 서린 두만강을 떠올리면서 무거워진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금 가니까 가이드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북한 땅이라고 했다. 두만강은 전날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물이 무척 탁했다. 학창시절 박노식, 문정숙이 출연했던 독립군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서 그야말로 멋있게 봤던 두만강과는 엄청 딴판이었다.

버스는 강폭이 좁은 두만강을 따라 달렸다. 기찻길과 터널도 보였다. 북한의 산야를 보는 순간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였다. 밭에서 익어가는 알곡들을 보며 풍요를 느끼기는커녕 안쓰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팻말. 북한 주민들 외에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씁쓸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팻말. 북한 주민들 외에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씁쓸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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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민둥산 능선에 하얀 글씨로 '21세기 위대한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느낌표까지 적어 넣은 대형 팻말도 보였다. 가이드는 보라고 알려줘 놓고 의미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 멘트도 하지 않았다. 김정일 찬양 구호를 보는 심정은 한 마디로 씁쓸했다.

버스를 잠깐이라도 세워달라고 부탁하니까 차들이 왕래하는 길에서 아무 때나 서는 것이 아니라면서 강 건너 기차역이 보이는 지점에 잠시 세워주었다. 가이드는 사진은 괜찮지만, 캠코더는 안 된다며 북한과 중국 정부의 지시이니 조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북한 땅이 가깝게 보이는 장소에 '비법 월경은 법률 징벌을 받는다'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다. 옆에는 '도문강 수면에서 놀이 금지. 밀수, 마약매매, 고기잡이 행위 엄금. 북한 쪽에 대고 말이나 촬영을 엄금한다!'는 내용의 철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백두산 입구에도, 천지에도 '장백산'만 있지 '백두산'이 없어 마음이 걸렸는데, 두만강도 '도문강'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중국이라지만, 다르게 표기한 경고문을 읽는 마음이 유쾌할 수가 없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출판하는 도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기념비와 안내문에 들어가는 낱말 하나까지 중국 정부가 간섭한다니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국경도시 도문시에서 보는 북한

도문시 두만강 주변 상가. 직장에서 일하는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에 인적이 뜸했습니다.
 도문시 두만강 주변 상가. 직장에서 일하는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에 인적이 뜸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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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쯤 도문시에 도착했다. 65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북한·중국 국경으로 길림성 최대 변경도시란다. 인구는 약 15만명. 도로는 잘 정리되어 있고,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으나 찾는 사람은 뜸했다. 거리도 한산했다.

도문대교. 다리 중앙을 중심으로 중국 쪽은 붉은색, 북한 쪽은 파란색 페인트를 칠해놓았습니다. 교각 아래에서 중국 군인들이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도문대교. 다리 중앙을 중심으로 중국 쪽은 붉은색, 북한 쪽은 파란색 페인트를 칠해놓았습니다. 교각 아래에서 중국 군인들이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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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양시와 연결되는 '도문대교'(길이 100m) 입구에서는 중국 국경수비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허락을 받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북한의 산천이 코앞인데 허탈했다. 누가 왕래를 막는지 원망스러웠지만, 주인공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다리 중간에 한글과 한자로 '변계선'이라 써 놓고,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중국,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북한으로 정하고 있었다. 남양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방향과 자리가 잘못 설정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중국 도문시를 배경으로 찍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도문대교 건너편 남양역에는 고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다리교각 아래 밭에서는 중국 군인들이 땀을 흘리며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강 건너 북한 군인들도 토마토나 다른 채소를 경작해서 먹는지 궁금했다.

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 굶주리는 북한 아이들과 비교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럽게 보였습니다.
 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 굶주리는 북한 아이들과 비교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럽게 보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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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유람선이 두만강 위를 한가롭게 떠다녔다. 강변 공원 그늘에서는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고,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북한, 중국 국경지역이니까 우리와 많이 다를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흔히 보는 유람선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도문 지역은 강폭이 좁아 여름에는 북한군과 중국군이 두만강에서 수영을 즐긴단다. 북한과 중국은 우호적인 관계라서 특별한 제재를 않는다고. 국경에 철조망 하나 없이 지내는 북한과 중국의 끈끈한 사이가 부러웠다.

조선족이 60% 가까이 사는 도문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데 5월 하순이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단다. 모를 손으로 심기 때문에 도문지역에 친척이 사는 북한군들은 밤에 살짝 나와서 모내기를 해주고 동이 트기 전에 귀대한다고. 일당이 50위엔(한국 돈 1만원)으로 짭짤한 부수입이 된다고 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에서 이병헌과 송강호가 각각 국군과 북한군으로 나와 정을 쌓아가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남북한 병사들도 여름엔 임진강에서 물놀이도 하고, 보름쯤 휴가를 받아 북녘 친구나 친척집에서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국문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문대교. 북한 산천과 두만강이 한눈에 들어왔는데요.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국문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문대교. 북한 산천과 두만강이 한눈에 들어왔는데요.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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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대교 국문 전망대에 오르니까 두만강과 북한의 산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을 뿐 육안으로는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망대에는 북한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한쪽에서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아가씨들이 북한 우표와 지폐 등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옛날에는 다리 위로 차들이 많이 다녔는데, 몇 년 전부터 끊겼다며 그들도 이상해했다.  

휴전선은 남북의 경계이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직접 현장을 둘러보니까 차이가 컸다.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지만 분단된 조국의 땅을 지켜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절름발이 해방과 전쟁, 휴전 등 역사의 상처를 알기라도 하듯 탁하게 흐르는 두만강.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약 없이 만주로 발길을 돌렸던 독립투사들과 지금의 북녘 동포들이 가슴에 담고 있는 한 서린 사연들을 모두 풀어놓으면 눈물이 또 하나의 강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봐도 타계한 원로가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얘기하던 '푸른 물'은 모두 하늘로 증발해버렸는지 잿빛 흙탕물만 흐르고 있었다.

도문-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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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중국 관련 내용은 현지 가이드와 박영희 시인의 설명, ‘2010만주기행’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태그:#두만강, #남양시, #도문시, #도문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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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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