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앞으로 정치할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한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전 앵커는 "우리 사회나 언론에서 혈연·지연·학연·근무연을 없애야 하는데, 정치를 업그레이드 하면 그나마 빨리 할 수 있다, 정치인을 선택할 때 며느리 고르듯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서울 '은평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야당이 너무 급한 시간에, 후보 등록 마감 직전에 '생각해 보지 않을래?' 정도로 말해 깊숙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제가 들어갈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안 나갔던 게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경민 전 앵커는 21일 저녁 창원대에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시민언론학교'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다 지난해 4월 13일 '클로징멘트'를 클로징했던 그는 '안식년'을 맞아 요즘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 선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엄기영 전 사장 덕택이다"며 "회사로부터 사실상 '침묵하는 것이 네 일이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 이후 더 바빠졌다, 전국 대학을  다니며 강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젊은 뉴스를 하기 위해 젊은 앵커를 써야 한다고 했고, 정부는 공식 멘트가 없었다. 앵커 교체에 있어 정부나 정치권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른다. 입을 열지 않는다, 간간이 들려 오는 이야기가 있어 메모를 하고 있고, 취재해서 언젠가 알리고 싶다. 아직은 공개를 자제하고 있다. 당시 권력의 핵심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이 사람은 방송에 부적합 사람이다'거나 '이 사람은 빨갱이 같다'는 것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지식인을 빨갱이로 몰았고, 그중에 저도 들어갔다."

 

"학연이 지연을 따라잡지 못하더라"

 

 

30년간 기자 생활을 해온 신 전 앵커는 "현재 저보다 나이 많은 기자는 뉴스룸에 없다"면서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인사 관행"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어 "서울대에 장학금 받고 들어갈 정도였고, 방송도 잘했는데 방송국 안에서 받는 대우는 형편없었다"면서 "이유는 지연이었다, 학연(서울대)이 지연(전주)을 따라잡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비록 (자리에서) 물을 먹어도 좋은 자리를 위해 윗사람들에게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가진 것은 없지만, 최소한 프라이드는 지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추동력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언론 보도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언론은 입만 열면 '팩트'나 '진실'을 다룬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실'보다 '사실'을 많이 다루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은 전혀 다르다. 1%도 겹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50%만 겹쳐도 진실과 사실은 근접해 있다. 100% 근접해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사실과 진실을 구분해 주는 게 좋다."

 

국무총리 후보로 있다가 인사청문회 뒤 자진사퇴했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와 관련 이런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김태호씨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겉으로 내건 이미지는 '가난'이었다. 가난한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다. 가난을 이미지로 내세우는 정치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국민들은 가난한 사람이니까 우리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봐야 한다. 한때 가난했더라도 지금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풍족해서 옛날에 가난했던 것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은 지금 가난한 것을 이해하느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확인하지 않는다."

 

이어 신경민 전 앵커는 "경남에서 나온 신문들을 보니 '경남의 아들'이 서울 가서 핍박받고 있다는 논조가 많더라"면서 "그런 감정은 이해하나 그런 내용을 언론이 공식적으로 헤드라인으로 쓰는 것은 이해를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종편 나오면 저질 방송 양산될 것"

 

언론의 '나뉨 현상'도 지적한 그는 "올드-뉴 미디어로 나뉘고, 정권에 가까운 언론과 비판적인 언론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새 미디어법에 따라 신문·방송 겸업이 가능해졌고, '종합편성채널'(종편)이 곧 태동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신 전 앵커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문들이 위기의식을 느껴 방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정권의 탄생과 같이 종편이라는 게 태동했다. 상당한 숫자의 미디어들은 몇 년 전부터 종편에 올인했고, 완전히 맛이 갔다. 종편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그런가.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 클로징멘트를 통해, 미디어법에 대해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방적으로 방송을 보라고 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전에는 '안 보면 그만이다'는 식이었는데 앞으로는 '봐 달라'해야 하는 시대다.

 

미디어에서도 머독과 같은 재벌이 나와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맞지 않다. 좁은 시장에서 종편을 양산하면 이전투구가 일어날 수 있다. 냉장고나 컴퓨터 제품은 경쟁하면 질이 높아지지만 언론은 그렇지 않다. 경쟁을 하면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이 그랬다. 언론의 속성상 치열한 경쟁을 하면 저질 상품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여자를 벗기고 폭력성으로 가고 오보를 낼 가능성이 많다. 언론시장에서 재벌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많은 이윤을 낼 필요도 없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나라가 대만인데, 10개 방송사가 있다. 대만 TV를 보면, 좋은 프로그램이 없다. 저질이 판을 치고, 뉴스도 저질이다. 모든 프로그램이 싸구려다."

 

신경민 전 앵커가 보는 언론의 미래는 어떨까? 언론사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했거나 보도하지 않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외교부에 특채된 사건이 터졌는데, 올드미디어는 무시하고(물론 첫 보도는 SBS였지만) 인터넷언론이 다루면서 알려졌다. 그런 뉴스가 꽤 많았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명진 스님(봉은사 주지)의 대립 경우도 인터넷언론이 이슈를 점화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과 붙었던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한쪽은 크게 쓰고 다른 한쪽 언론은 안 썼다."

 

그는 언론사의 정치인 지지 선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국 언론은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고 사설을 통해 명백하게 밝힌다. 한 후보를 지지해도 그 후보가 잘못한 게 있거나 상대방 후보가 잘한 게 있으면 그대로 기사를 쓴다. 전통적으로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을 지지해 왔는데. 민주당 후보한테 절대 관대하지 않다."

 

신경민 전 앵커는 "우리 언론은 인구에 비해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며 "'언론다운 언론'이나 '엄숙한 언론'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느냐,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회의적이다"고 밝혔다.

 

"자녀들을 좋은 언론에 노출시켜야"

 

그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집에서부터 공적인 것에 대한 훈련을 시켜야 하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면서 "자녀들을 좋은 언론에 일찍부터 노출시켜 주고, 곁에 두고 가까이하는 것이 공적인 교육이라 생각한다, 좋은 언론이 많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언론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가 결과와 맞지 않았던 현상도 진단했다.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지방선거 때 여론조사가 맞지 않았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두 후보가 실제 1% 포인트 내외 공방을 벌였는데 여론조사는 20%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언론사에서 여론조사기관에 사람 1인당 1만 원 정도를 주고 있는데, 제대로 하려면 2만5000원은 줘야한다. 여론조사도 비즈니스다 보니 덤핑이 들어온다. 7000원을 하겠다는 데도 있다. 방송사는 여론조사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하면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할 때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전화번호부를 갖고 하는데, 휴대폰 조사는 하지 않는다.  집에서 전화받는 사람들은 할머니·할아버지거나 아이들이다.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타나는 분들이 많지만 정치적 성향이 고루 분포하지 않는다. 

 

또 하나 '미네르바(인터넷 논객) 효과'가 있었다. 미네르바 사태 이후 전화나 인터넷 휴대전화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심해졌다. 전화로 여론조사 들어가면 '무조건 여당 지지한다'거나 '야당 싫어한다'고 대답한다. '미네르바 효과'가 여론조사를 틀리게 한 주원인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 앞두고 상당히 많은 여론조사를 하게 될텐데 걱정이다."

 

그는 "좋은 기자와 피디가 회사를 맡게 되는 경우는 앞으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며 "좋은 언론은 좋은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한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일을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민 전 앵커는 "기자다운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서 "미국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1000회 정도 리포트를 하고, <뉴스데스크>를 하면서 250회의 클로징멘트를 했더라. 제가 죽으면 장송곡 대신 리포트를 틀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태그:#신경민 전 앵커, #MBC 뉴스데스크, #시민언론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