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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의 몸통"이라고 주장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국회발언으로 정가가 시끌벅적하다. 이 대통령이 특유의 '진노' 신공을 발휘하며 야당에 대한 공격을 선도하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입장 바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면책특권을 둘러싸고 낯뜨거운 정치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전 정권 때 면책특권의 한계를 거론하며 "허위사실로 인한 인권침해 행위까지 보호해 줄 수 없다"고 공세를 펴던 민주당이 "야당 의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이라며 그를 강변하고, "의원의 입을 봉쇄하겠다는 것은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겠다는 독재정권적 발상"이라고 발끈하던 한나라당이 새삼스레 "무책임 폭로는 더이상 용납 못한다"며 법적 책임을 들먹이는 건 보기 민망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이란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

그런데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정치판에 몸담지 않은 신문쟁이들까지 면책특권 논란에 뛰어들어 '한 입 두 말'을 일삼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가 3일 <강기정 의원, 면책특권 뒤에서 나와야>란 제목을 단 사설을 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설은 온통 면책특권을 활용해 김 여사의 로비 의혹을 제기한 강 의원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질타로 채워져 있다.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무책임한 폭로를 일삼는 것은 품위를 상실한 비겁한 짓이고 따라서 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성토하며 목젖을 떨어대는 중앙일보의 격앙된 육성을 몇 개만 들어 보시라.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대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의혹 제기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문제 이전에 기초적인 신뢰와 품위를 상실한 행동이다..."

"나라가 흔들릴 만한 폭로를 하면서 강 의원은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모든 게 거짓말이라며 조목조목 부인했다. 이럴 경우 입증의 책임은 강 의원에게 있다. 그러나 강 의원은 입을 닫고 있다..."

"자신의 폭로가 옳다고 확신하면 강 의원은 면책특권이 없는 국회 밖에서 다시 그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는 "비겁하게 면책특권 뒤에 숨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대통령 하야'와 관련될 수 있는 문제가 어떻게 아니면 말고라는 말인가. 민주당은 의원과 국회의 품위 차원에서 강 의원 발언 파문을 다루어야 한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강 의원에게 발언의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8년 전만 해도 중앙일보 말은 이와 전혀 달랐다. 중앙일보는 2002년 1월 29일에 작성한 <면책특권 시비말라>는 사설에서, 야당(한나라당) 의원들이 비리 의혹에 연계된 여권 실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민주당과 해당 의원이 고소·고발로 맞대응하고 검찰총장까지 나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한계를 지적하는 등 여야간 대치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이렇게 볼륨을 높였다. 앞의 주장과 대조하며 읽어 보시라.

"헌법은 국회의원이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대표로서 권력의 눈치를 안 보고 행정권 남용, 권력 내 비리 적출 등 소신껏 직무를 수행하라는 의미에서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따라서 면책특권에 대한 시비는 헌법을 무시한 비민주적 발상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도 한계가 있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모욕이나 사생활 관련 발언, 폭력행사, 발언 방해 등은 국회법.윤리강령 위반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의장의 경고 또는 윤리위원회 회부·징계가 가능하다..."

"당하는 여당 입장에선 솜방망이 조치라고 불만일 수 있지만 국회의원의 이 특권이 있었기에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야당의 비판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야당이 지금 집권당이 돼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왔다고 면책특권을 시비하고 법 개정 운운하는 것은 정말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정치공세라 해도 의원 스스로가 국회 권위와 의원 권한을 스스로 제약하는 일을 해선 안된다..."

"권력형 비리 의혹에 검찰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야당이 그 의혹을 캐고 문제 제기를 한다 해서 집권당과 한 목소리를 내며 면책특권 한계를 주장한다면 국민으로선 검찰의 중립성 자체에 의혹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집권당과 검찰이 면책특권에 대해 시비할 것이 아니라 제기된 의혹에 대한 반증과 진실을 소상히 밝히는 게 헌법을 중시하는 민주 정당과 검찰이 해야 할 급선무일 것이다."


어떤가? 정권에 따라 극에서 극으로 달라지는 중앙일보의 '한 입 두 말'이? 중앙일보만 그런 게 아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웬 면책특권 타박?>(사설, 2001.10.22)이냐며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차별 폭로전을 감싸고 돌던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돌연 얼굴표정을 바꾸고 <강기정 의원 발언의 '면책특권'과 정치적 책임>(사설, 2010.11.03)을 지적하고 나선 것도 빼놓으면 섭하다.

보너스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혹제기에 대처하는 조선일보의 자세를 마저 감상해 보시라.

"김 의원이 진실로 결백하다면 차제에 항간에 회자되는 소문들의 진위를 말끔히 밝힘으로써 김 의원 자신뿐 아니라 아버지인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이 정권을 짓눌러온 부담을 후련하게 떨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이 김 의원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마치 불에 덴 듯 펄펄 뛰며 발언의원에 대한 고소·고발, 나아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면책특권 제한을 들고 나오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대응으로 보이지 않는다..."(2001.10.22)

"강 의원은 자신의 주장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충격과 파장이 큰 만큼, 발언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빨리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됐을 경우 대통령 부인이 당한 엄청난 정신적 피해와 명예 손상은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그래 놓고 면책특권 뒤에 숨으려 하는 건 정치 도리가 아니다... 검증 결과 근거 없는 단순한 음해성 발언으로 밝혀진다면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2010.11.03)


비슷한 케이스임에도 누가 누구에게 의혹을 제기했느냐에 따라서 180도 달라지는 신문지들의 현란한 논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면책특권, #김윤옥 로비 몸통설, #강기정 의원, #언론의 '한 입 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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