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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 <무한도전>.
 최근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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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고,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다뤄질 만큼 다뤄졌다. 아예 김태호 PD는 지난주(1일) '연말정산 뒤끝공제'편을 통해 각층의 전문가 패널들을 불러 멤버들과 함께 <무한도전> 위기론을 집어보기도 했다.

김이 빠질 대로 빠진 지금 이 시점에 <무한도전> 위기론을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흥미롭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이 위기론을 그저 한 때 지나가는, 늘 있어왔던 '위기'로 치부하기엔 사방에서 나타나는 징후가 좋지 않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번 더 <무한도전> 위기론을 제대로 따져보고자 한다.

2006년 12월 2일 방영된 김장특집에서 유재석은 기쁜 소식 두 가지를 전했다. 하나는 자신의 열애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무한도전> 방영 30회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리고 그 후로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했고, 동시간대 1위 자리도 빼앗겨본 적이 없다. 적어도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그랬다.

장기 프로젝트, <무도>를 위기에 빠뜨리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처음 올라 기뻐하는 유재석.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처음 올라 기뻐하는 유재석.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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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0년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SBS <스타킹>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차츰차츰 떨어진 것과 맞물려 결국 <스타킹>과 <무한도전>은 어느 새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한 번 벌어진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 1일 방영됐던 <스타킹>의 시청률은 19.7%(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15.8%(이하 동일기준)였다.

2010년, 나는 <무한도전>의 위기론에 대한 기사('<무한도전>은 왜 <스타킹>에 왕좌를 내줬을까?')를 쓴 적이 있다. 지금처럼 여기저기서 위기를 말하기 한참 전인 1월의 일이었다. 그때 난 기사에서 <무한도전> 위기의 본질은 불가피한 체질변화로 인해 시청자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첫째, 인터넷 문화를 적극 차용함은 물론, 패러디를 많이 사용해 인터넷을 하는 사람만 웃을 수 있게 된 점을 들었다. 둘째로는 지나치게 빨라진 프로그램의 속도와 매주 변하는 포맷 때문에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을 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많고 길었던 장기 프로젝트 방영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부작용이 바로 그것이다.

<무한도전>에서 장기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무한도전> 이전의 대부분 예능프로들이 1회 방송분량만큼의 단발성 에피소드 위주로 만들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방송 수개월 전부터 착실하게 토대를 쌓아 그 성과를 한 번에 몰아치는 장기 프로젝트는 가히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그 후 이 장기 프로젝트는 KBS <남자의 자격> 등을 통해 다른 예능프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한도전>이 처음으로 도전했던 장기 프로젝트는 2006년 겨울에 방영됐던 모델특집이었다. 그 후로 2007년 겨울에 댄스스포츠, 2008년 겨울에 에어로빅을 도전하면서 <무한도전>의 겨울 장기 프로젝트는 연례화됐다. 그런데 2009년 들어서면서 <무한도전>은 장기 프로젝트의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에어로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9년 초, <무한도전> 멤버들은 봅슬레이에 도전했다.

한달 반 동안 특집 두 개만 방영한 <무한도전>

장기 프로젝트 중 최초 4회 방송된 식객특집.
 장기 프로젝트 중 최초 4회 방송된 식객특집.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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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뿐만이 아니었다. 장기 프로젝트의 스케일은 더욱 커져, 멤버들은 벼농사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강화도 인근에 있는 땅을 빌려 멤버들이 1년 벼농사를 관장하게 된 것이다. 벼농사가 끝난 직후 <무한도전>은 또 다른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바로 식객특집이었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 한식을 알리자!'는 모토 아래 멤버들은 요리를 배우고, 직접 뉴욕까지 날아갔다.

2007년 댄스스포츠 이후 장기 프로젝트의 방영횟수는 대략 3회분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식객특집에서는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식객특집은 178회부터 181회에 이르기까지 무려 4회에 걸쳐 방영됐다. 시기적으로 따졌을 때 벼농사특집 방영이 시작된 것은 10월 17일, 그리고 식객특집이 끝난 건 11월 28일. 즉 시청자들은 거의 한달 반에 가까운 시간동안 7회에 걸쳐 두 가지 특집만 봐야 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일종의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70분 예능이 210분으로 늘어나면서 시청자들은 집중력을 잃어갔다. 게다가 장기 프로젝트는 최소 3회에 걸쳐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한 회만 놓치더라도 다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드라마처럼, 시청자들은 오늘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주 방영분을 꼭 챙겨봐야 됐다.

2010년 들어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2010년부터 <무한도전>에서 1회만 방영되는, 소위 '단타' 에피소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연초부터 의좋은·의상한 형제특집이 3주 방영되더니 이후 복싱특집, F1특집, '죄와 길'편이 모두 2회분씩 6주 연속 방영됐고, 곧바로 '오마이텐트'편이 3주 연속 방영됐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예능의 신'특집과 200회특집이 2주씩 방영됐고, 이후 달력특집이 무려 7회에 걸쳐 방영됐다.

연이은 장기 프로젝트로 멤버들도 지쳐갔다

2010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달력특집. 참신한 시도는 좋았지만 역시 문제는 '재미'였다.
 2010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달력특집. 참신한 시도는 좋았지만 역시 문제는 '재미'였다.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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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시크릿 바캉스'특집, 아이돌특집, 세븐특집 등이 2회씩 방영돼, 2010년 전파를 탄 <무한도전> 에피소드 중에 1회로 끝마친 특집은 자리분양특집과 미드나잇 서바이벌 등 모두 7편밖에 되지 않았다.

복수의 장기 프로젝트가 병행되다 보니 지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만이 아니었다. <무한도전>을 촬영하는 멤버들 역시 피로감을 느꼈다. 지난 '연말정산 뒤끝공제'편에서 패널로 나온 <10아시아> 강명석 편집장은 박명수를 가리키며 "'미드나잇 서바이벌'편에서 지친 게 보였다"고 말했고, 박명수도 이에 동의했다.

실제로 '미드나잇 서바이벌'편에서 박명수는 다른 때와 달리 전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을 저격해 최후의 승자 단 한 명만이 남는 미션을 수행해야 함에도 그는 다른 멤버들이 모여 있는 압구정동으로 가지 않고 혼자 여의도로 가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머물렀다. 그가 다시 움직인 건 1시간 뒤, 방송 상으로 절반 이상이 방영된 이후였다.

2009년 가을부터 시작한 레슬링 연습은 2010년 여름까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정형돈, 노홍철, 길은 몸짱 프로젝트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멤버들은 200회특집과 아이돌특집을 위해 연습실에서 안무연습을 했다. 틈틈이 달력특집을 촬영하고, 연말이 다가오자 크리스마스에 있을 싱글파티를 위해 노래와 춤, 악기를 연습했다. 개개의 에피소드는 에피소드대로 찍으면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이것들을 병행해 온 것이다.

흔들리는 마니아층... <무한도전>이 바뀔 수도 있다?

복수의 장기 프로젝트 진행으로 녹화 집중에 어려움을 토로한 정형돈.
 복수의 장기 프로젝트 진행으로 녹화 집중에 어려움을 토로한 정형돈.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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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정형돈은 '연말정산 뒤끝공제'편에서 "예전에는 그 주에 나오면 그 주 것만 하면 됐는데, 요즘은 워낙 장기 프로젝트가 이것저것 진행되다 보니 녹화를 하면서도 이게 지금 뭐하는 녹화인지 모를 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노홍철 역시 "하나의 에피소드를 찍고 2시간 뒤 다른 걸 찍으면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아 웃음으로 승화되기 어렵다"며 장기 프로젝트 병행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무엇보다 장기 프로젝트를 연달아 방영하면서 <무한도전>의 마니아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 말은 새 시청자의 유입도 없지만, 기존 시청자의 이탈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지난 5년 동안 <무한도전>은 골수 시청자들을 양산했고, 그들은 '무도빠'를 자청하며 마치 아이돌 스타의 팬덤처럼 <무한도전>에 애정을 쏟았다. <무한도전>이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 없이도, 중장년층의 외면 속에서도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들 덕분이었다.

마니아층의 이탈이 현실화된다면 <무한도전>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엇보다 '연말정산 뒤끝공제'편에서 여운혁 PD가 말했듯이 1등을 달리던 프로그램이 2등으로 내려앉으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게 되고, 그것은 <무한도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그 영향이 여운혁 PD가 예고했던 멤버 교체가 됐건 무엇이건 간에 지금의 <무한도전>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익은 잠시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구온난화도,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잠시 접어두자. 대규모의 장기 프로젝트도 머릿속에서 날려버리자. 지금 <무한도전> 제작진과 멤버들이 희미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야 할 것은, 5년 전 그들이 처음으로 시청률 1위에 올랐던 그 무렵에 했던 것들이다. 논두렁에서 바지 안에 고구마를 넣고 뛰다가 넘어지고, 소나무에 머리를 부딪혀가며 딱따구리 흉내를 내던 그 시절,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큰 웃음을 줄 수 있었다.

<무한도전>이 발전해 온 지난 5년간의 역사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예능계에 그은 한 획을 평가절하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역사가, 성과가 어깨에 겹겹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무한도전>은 어느 순간, 웃음을 주지 않게 됐다. 순수하게 웃음에만 집중했던 그 시절을 기억해내자. 그렇게 된다면 김성원 작가가 말했던 박명수 환갑특집도 마냥 꿈은 아닐 것이다.


태그:#무한도전, #위기론, #유재석,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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