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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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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는 많은 이들은 가장 먼저 이탈리아를 찾는다. 그것은 로마가 유럽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는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된다.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에 전해져 그리스 문화를 꽃피웠고, 그것은 다시 로마에 전해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최고의 국가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지금도 고대 로마를 모범과 이상으로 여긴다.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지식인들은 로마로 연구여행을 떠났다. 이상으로 여기던 로마의 고고학적 유물과 예술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유럽 사람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로코코 예술의 공허한 기교와 화려함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엄숙하고 진지하며 객관적인 로마의 문화유산에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768)은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고대의 문화를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Edle Einfalt und stille Gröβe)'라는 말로 요약했다. 18세기 유럽 상류사회 지식인들에게는 로마로의 여행이 교양을 쌓기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회계감독관이던 마리니(Marigny)와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다. 마리니는 루이 15세의 정부인 뽕빠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의 오빠로 당시 정부의 실세였고, 괴테는 바이마르 왕국의 관리로 독일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티슈바인이 그린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괴테
 티슈바인이 그린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괴테
ⓒ 저작권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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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이유가 그들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로마시대를 이상적으로 보는 그들의 관념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거기다 로마의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우리를 이탈리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보고 나면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와 독일을 찾는다.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 그렇고, 독일은 음악과 철학의 나라라 그렇다.

이들 두 나라를 보고나면 사람들은 남유럽 또는 동유럽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두 지역 중 어디를 갈지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에는 동유럽이 개방되지 않아 남유럽을 갔지만 이제는 동유럽이 유럽연합에 편입되었고 또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동유럽보다는 남유럽을 택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여행하기로 했다. 또 여행사 프로그램에 따라 지중해 건너 모로코에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주의할 점이, 여행사의 프로그램만 따라가게 되면 여행은 정말 '점찍기'가 되어 버린다. 가이드만 따라다니며 겉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 자기 얘기가 아니라 가이드의 얘기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역사와 지리, 문화와 예술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보다는 길거리에서 보는 느낌을 그냥 기록하는 인상기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행기가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알함브라 궁전의 나사리궁
 알함브라 궁전의 나사리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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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평면적인 여행기를 입체적인 여행기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입체를 구성하는 토대를 역사와 지리 그리고 문화에서 찾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정신적인 성취와 발전을 보여주는 문화와 문화유산이다. 문화가 정신적인 삶의 총체성이라면, 문화유산은 이들 정신의 총체성이 물질과 형태로 구체화된 유적과 건축물 그리고 장소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는 문학과 예술 그리고 대중문화이다. 문학은 요즘 대중들이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고고한 영역이 되었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문학에서 영감을 얻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예술에서는 음악과 미술이 중요하다. 음악에서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고전음악을 이야기하고, 전통음악에 토대를 둔 플라멩코 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미술에서는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가 있고, 대중문화에는 포르투갈의 파두와 같은 대중음악과 영화가 있다. 영화는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다룬 영화를 찾아볼 것이다.

또 가능하면 음식문화도 다뤄볼 예정이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포르투갈 대표음식 바깔라우, 에스파냐의 대표음식 빠에야, 모로코의 대표음식 따진을 먹어보았기 때문이다. 이 중 바깔라우와 빠에야는 우리의 볶음밥이나 비빔밥과 비슷하고, 따진은 갈비와 비슷하다. 사실 음식은 각 민족마다 고유하고, 그것에 대한 평가도 가지각색이어서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의 입장에서 생각을 적어나가려고 한다. 비록 주관적이라는 공격을 받을지라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세 나라 기행

하늘에서 내려다 본 리스본 근교 풍경
 하늘에서 내려다 본 리스본 근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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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첫 도착지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다. 그런데 포르투갈의 공식명칭은 포르투갈 공화국이고, 수도 이름은 리스보아(Lisboa)다. 나는 먼저 리스본과 그 주변의 문화유산을 본 다음, 안달루시아의 주도 세비야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 남쪽 끝 타리파로 갈 예정이다. 여기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로 들어갈 것이다. 이 두 항구도시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모로코에서는 수도인 라바트와 경제중심지인 카사블랑카, 문화유산 도시인 페스를 볼 예정이다.

그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도시가 페스(Fes)다. 아랍어로는 파스에 가깝다. 페스는 이드리스 1세에 의해 789년 페스강변에 세워졌다. 800년대 중반 야히야 이븐 무하마드 통치시기에는 아프리카 최고의 모스크와 대학이 세워졌다. 이후 페스는 북아프리카의 무역과 상업의 거점으로 발전했다. 한동안은 페스에서 메크네스를 거쳐 라바트와 카사블랑카로 이어지는 모로크 동서축의 동쪽 끝점이었으며, 팀북투로부터 남북으로 이어지는 황금교역로의 북쪽 끝점이었다. 페스는 타르부쉬(tarboosh)라는 모자의 원산지로 현재 가죽제품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타리파에서 바라 본 모로코
 타리파에서 바라 본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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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를 보고 나서 나는 배를 타고 타리파로 건너갈 예정이다. 이곳에서부터는 지중해변의 코스타 델 솔을 구경할 것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다. 이 도시를 보고난 다음 안달루시아 지방의 내륙으로 들어가 무어왕조의 고도 코르도바를 볼 예정이다. 과달키비르강 중류에 있는 코르도바는 766년부터 1031년까지 무슬림왕국인 알 안달루스의 수도였다.

이곳 안달루시아에는 세 개의 무슬림왕국 수도가 있다. 두 번째 수도가 된 곳이 세비야이고, 세 번째 수도가 된 곳이 그라나다이다. 세비야에는 대성당이 있고, 그라나다에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말 그대로 붉은색으로 만들어진 궁전 겸 요새로, 14세기 중반 무하마드 5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현재는 에스파냐에 있는 가장 매력적인 이슬람 건축이다.

마드리드가 에스파냐의 중심임을 알리는 거리 원표
 마드리드가 에스파냐의 중심임을 알리는 거리 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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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를 본 다음 나는 에스파냐의 내륙지방인 카스티야 라 만차로 이동할 것이다. 이곳에서 에스파냐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던 톨레도를 보고 현재 에스파냐의 수도인 마드리드로 들어갈 예정이다. 마드리드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1561년 펠리페 2세에 의해 수도가 되었다. 식민지 경영이 한창이던 17세기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며 18세기 현재의 왕궁 등 문화유산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여행지는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던 사라고사와 카탈루냐의 수도인 바르셀로나다. 사라고사는 로마시대, 이슬람시대, 기독교시대의 유적이 골고루 남아있는 내륙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다. 이에 비해 바르셀로나는 지중해변에 있는 항구도시로 고대와 현대,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곳에서 나는 가우디의 모더니즘 건축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가우디의 건축, 엘 그레코 미술에 대한 생각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의 서쪽 방면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의 서쪽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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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출신의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그는 독일의 발터 그로피우스,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의 새 장을 연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방가르드 또는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현대 건축이념을 대표하는 가우디 양식은, 전통적인 서구의 건축기술에 곡선과 원형을 강조하는 아라비아 형식을 결합시키고 있다. 가우디에 따르면 건축가는 막연히 장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하학을 통해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각각의 기능에 맞는 형태를 찾는 것 즉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 건축가의 과제이다.

가우디의 아방가르드 건축은 바르셀로나에만 12개가 남아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공공 건축이 성가족 성당과 귀엘공원이고, 사적 건축이 카사 미야, 카사 바트요 등이다. 일반적으로 가우디 건축은 전통적인 4각형 틀에 둥근 외형으로 마감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하학과 역학을 모르면 제대로 건축을 할 수가 없다. 또 건물 외부를 화려한 타일로 장식해 건축물이 밝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엘 그레코가 그린 톨레도
 엘 그레코가 그린 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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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1541-1614)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출신이다. 그는 베네치아와 로마에 살면서 르네상스 예술을 체험하게 되었고, 매너리즘의 예술창조 방식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엘 그레코의 매너리즘은 주지주의적이며 표현주의적이다. 여기서 주지주의적이란 정신과 교양을 중시한다는 개념이고, 표현주의적이란 내면의 의식을 강렬하게 표현한다는 개념이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매너리즘을 중세의 정신주의와 르네상스 사실주의를 결합시키려는 절망적인 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1577년 에스파냐의 톨레도로 이주해 종교적인 모티브의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그림은 내면적이고 신비하며 동시에 섬세하면서도 심도가 있다. 환상적이면서도 마적인 페인팅을 통해 사람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렬한 흡인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천재적인 화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피카소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고, 릴케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톨레도의 산토 토메교회에 있는 '오르가쓰 백작의 매장'이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12월 30일부터 2011년 1월 10일까지 에스파냐, 포르투갈, 모로코를 여행했다. 문화와 문화유산을 탐사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이들 외에 필자는 경제와 사회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재미라는 측면에서 스토리텔링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현재 계획으로는 24회 연재할 예정이다.



태그:#세 나라 기행, #에스파냐, #포르투갈, #모로코, #문화와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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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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