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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식당의 주메뉴인 장어구이가 먹음직스럽다.
 이기자 식당의 주메뉴인 장어구이가 먹음직스럽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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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형님 이번에 오랜만에 고향 내려가는데 식당예약 좀 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알았네, 네 알아보고 바로 전화 줌세."

얼마 전 명절을 앞두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화는 바로 지난해 술자리에서 만난 후배의 전화였습니다.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던 후배는 지난번에 먹었던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며 예약을 부탁차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서울에서 귀금속 업종에 종사하는 후배부부는 뉴스와 블러그에 실린 맛집기사를 보고 이곳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우리 일행과 술잔이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같은 학교출신 후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기자 식당'이 또 한 사람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준 셈입니다.

이곳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본의 아니게 필자의 역할이 컸습니다. 동료로부터 알게 된 후 나의 소개로 지난 12월초 글쟁이들의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지인들은 오마이뉴스(정력에 좋은 피조개와 푸짐한 해산물이 다 꽁짜?)와 다음블러그(장어 먹으러 갔다 공짜 해산물에 반한 맛집)/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를 통해 전국에 알렸습니다. 맛에 대해 내놓으라는 맛객들 역시 이곳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곳입니다.

이것을 본 서울, 부산 등 타지 사람들의 예약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그 파급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짧은 시간인데도 예약하지 않고는 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니까요. 4~5평 남짓한 6개의 테이블에는 매일 예약손님이 꽉 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후배의 부탁을 받고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1월말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황당하더군요.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참 저렴한 가격에 대접받고 온 기분이 들어 여러 번 이용했거든요. 아주머니는 이미 가게를 정리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산 물품들을 마땅히 놔둘 데가 없어 헐값에 매각을 해버렸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장사가 너무 잘되어 주인에게 쫓겨나 장사를 접은 이** 아주머니의 모습
 장사가 너무 잘되어 주인에게 쫓겨나 장사를 접은 이** 아주머니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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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식당 주인인 이씨(51세) 아주머니가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작년 7월초입니다. 그러니까 약 6개월 정도 장사를 한 셈입니다. 허름한 시장골목에 계약금 500만원과 월세 40만원으로 2년간 계약을 했습니다. 없는 사람들에게 100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다시 1000만원을 들여 가계를 새롭게 꾸몄답니다.

작년 초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은 6년간의 병마 끝에 결국 아주머니와 자식 셋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듯 아주머니가 식당을 하게 된 이유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 이기자 식당의 메뉴는 단순합니다. 일단 예약이 이루어지면 싱싱한 해물이 기본으로 깔리고 이후 등장하는 장어구이는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더욱이 공단 내 구내식당에서 6년간 주방과 조리사일로 다져진 아주머니. 장사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그녀만의 특별한 음식철학은 정성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없지만 음식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만들어 팔면서 대접받고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아주머니는 꼭두새벽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섭니다. 물통과 대야(다라이)를 이고 여수교동 상회에서 장을 본 그날 그날의 싱싱한 해물을 식탁에 올립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하루 평균 40~50만원에 육박하는 매출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많은 매출이 오히려 화근이 될 줄이야?

"손님들이 자꾸 전화가 온 거야.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가면 다음날 회사에서 전화로 거기 식당 맞냐고 묻더라고, 왜 그런가 했지? 영수증이 자꾸 **얼음으로 찍힌다는 거야, 알고 보니 식당이 얼음가게로만 된 무허가였더라고, 그 전 사람이 아구찜 장사를 해서 당연히 허가가 난 줄 알았제. 공단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세상물정을 너무 모른 내 잘못입니다."

12월 들어 **얼음으로 1000만원 넘게 매출이 찍히니 그 돈을 다 번 줄 알고 주인은 무척 놀랬나 봅니다. 이후 돈 내줄 테니 빨리 나가라고 해서 못 나간다 하니까 이제는 카드기를 떼어 가 버렸습니다. 세금 역시 문제였다고 합니다. 식당이 무허가다 보니 주류로 세금계산서를 끊을 수가 없게 된 거죠.

정력에 좋다는 피조개인데 이곳은 장어구이를 시키면 해산물이 기본으로 깔린다.
 정력에 좋다는 피조개인데 이곳은 장어구이를 시키면 해산물이 기본으로 깔린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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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꽤 잘 되다 보니 아주머니에게 세금문제 등 주인과 자꾸 부딪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주인은 화장실로 가는 통로도 막고 술에 취해 가게에 찾아와 외지에게 온 손님들 앞에서 악을 쓰면서 아주머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주인에게 식당업으로 허가를 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서류에 필요한 주인의 인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아주머니는 허가를 내기 위해 시청에 알아본 지 2주일쯤 뒤에 주인이 허가를 내 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고 허망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주인 황씨의 항변은 달랐습니다.

"카드기를 떼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말일까지 하라고 도로 내주었다. 식당 허가는 이미 나 있는 상태다. 과표가 많다 보니까 사업자 번호 내서 하라고 한 것뿐인데 아줌마가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으니까 스스로 나간 거여."

주인 황씨는 아주머니의 개인적인 약점을 들먹였습니다.

이제 아주머니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게를 비워 주었습니다. 전세 세입자 보호법에 의해 일정 기간 보호을 받을 수 있지만 주인의 횡포에 손들어 버린 아주머니의 결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 역시도 나름의 말못할 애로사항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설 전날 남편의 첫 제사를 쓸쓸히 맞이하는 아주머니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돕니다.

"아이고 이럴 때 영감이라도 있었으면 힘이 덜 들었을 텐데....
설 이후에 가게를 하려고 자리를 알아보고 다녔는데 권리금을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간 벌어 논 돈도 없고 또다시 가게를 하려면 많은 목돈이 들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실의에 빠진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사연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이기자식당, #맛집, #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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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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