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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은 외롭고 쓸쓸하게 시작했다. 간호사인 아내가 설 전날부터 3일 연속 밤 근무를 했고, 서울에서 생활하는 딸은 일이 밀려 내려오지 못해 가족이 모여 화기가 넘쳐야 할 섣달 그믐날에도 독수공방하면서 지냈기 때문이었다.  

설날(3일) 아침 6시 조금 넘어 눈을 떴다. 밀려오는 외로움을 힘겹게 밀어내면서 밖을 보니까 캄캄했다. 게으름 피우면 하루를 망칠 것 같아 샤워하고 형님댁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7시가 넘어서야 길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야, 개정 방향으로 돌아가는 노선이어서 35분 걸리는 구 군산역 정류장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손님이라야 달랑 나 혼자. 내릴 때까지 혼자였다. 이른 아침이라고 하지만, 성묘도 가고 차례도 지내러 갈 터인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

버스에서 내리니까 삭막할 정도로 거리가 한산했다. 옛날에는 백열등을 켜놓고 밤새도록 장사하는 점포가 많았는데 시내 상가는 모두 문이 내려져 있었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거리는 어쩌다 승용차가 지나갈 뿐 무서울 정도로 고요가 흘렀다.

설날 새벽에 안개 자욱한 골목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나이를 먹어서인지 힘겹게 지내는 노인들 생활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설날 새벽에 안개 자욱한 골목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나이를 먹어서인지 힘겹게 지내는 노인들 생활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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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들어서니까 휠체어를 밀고 가는 할머니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세배도 받고 손자·손녀들에게 세뱃돈을 주러 가는 할머니 같지는 않았다. 굽은 허리에 무거운 발걸음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힘겹게 밀고 가는 휠체어에는 빈병 두 개와 폐지 한 뭉치가 실려 있었다. 설날 아침 일찍부터 빈병을 수집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자식들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에 빈병을 모으러 가다니, 설을 잃어버리고 사는 할머니 생활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할머니의 무거운 발걸음은 죽음의 세계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옮겨놓는 듯했다. 어려서는 네 발로 걷다가 성장해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지면 세 발(지팡이 포함)로 걷는다는 인생 행보의 이치(理致)를 할머니가 보여주고 있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환갑을 넘기고 진갑의 나이가 되어서일까? 힘겨워하는 할머니 걸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가서 차례를 지내야 함에도 할머니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뒤따라 걸었다.

'명절 증후군'이 따로 없어

 설날 아침 형님댁에서 차례상에 절하는 조카 손녀들. 천진스러운 아이들도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설날 아침 형님댁에서 차례상에 절하는 조카 손녀들. 천진스러운 아이들도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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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댁에 도착해서도 '내가 30대였어도 할머니가 애처롭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설날 차례상에 절을 하면서 즐거워했을 할머니의 소녀 시절이 그려졌다.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드는 게 순리라고 하지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례상을 거두고 빙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은 수저를 놓기 무섭게 세배를 하겠다고 야단이었다. 세뱃돈을 받아든 아이들은 책도 사고 저축도 하겠다며 기뻐했다. 50년 전 나를 보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면서 세월의 빠름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세배를 올리면서 아이들이 재잘거릴 때는 풍성하더니 조카들이 모두 돌아가니까 허전했다. 그래도 점심때는 셋째 누님도 오고 아내가 퇴근해서 함께 떡국을 끓여 먹고 형수가 싸주는 설음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밤 근무를 해야 하는 아내는 잠깐 눈을 붙이고 출근했다. 다시 혼자가 되니까, 새벽에 만났던 할머니 잔영이 그려졌다. 세뱃돈 때문에 괴로웠던 일도 떠올랐다. 설인데 전화 한 번 없는 딸에게도 섭섭함이 묻어났다.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명절 증후군'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니까,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져

이튿날(4일) 아침을 먹고 안부 전화를 걸 곳을 찾다가 항암치료를 받고 섣달 그믐날 퇴원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평택 누님이 생각났다. 방문해도 되는지 확인전화를 하니까 상태가 좋다면서 오라고 했다.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어 안심되었다. 

혹시나 해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있으면 함께 갈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약속 때문에 곤란하다며 12일(토)에 가자고 했다. 할 수 없이 혼자 오후에 출발해서 밤늦게 돌아오기로 했다. 마음이 스산할 때는 여행을 떠나거나, 잠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맑아질 것 같아서였다. 

귀경차량 때문에 버스는 복잡할 것 같아 기차 시간을 알아보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을 뒤로 미루었다며 셋째 누님과 형수도 모시고 가겠다고 해서 반가웠다. 혹시 늦을지 몰라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평택에 다녀오겠다고 말해주었다.

예상대로 도로가 막혀 두 시간 거리를 세 시간 30분 만에 도착하니까 누님이 생각보다 건강한 몸으로 반갑게 맞이했다.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덕담이 섞인 안부를 묻다 보니까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삼선자장' 한 그릇으로 설날 증후군 풀어 

평택 누님이 냉면을 잘하는 식당이 있으니 가자고 해서 갔더니 문을 닫았고, 옆에 있는 중국 음식점은 영업하고 있었다. 누님이 이왕 나왔으니까 자장면이라도 먹자고 하기에 들어갔더니 최근에 개업한 집이어서 깔끔했고, 명절 끝이어서 손님이 많았다.

그릇도 예쁘지만, 맛도 그만이었던 삼선자장.
 그릇도 예쁘지만, 맛도 그만이었던 삼선자장.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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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는데 나는 '삼선자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웃기는 생활 이야기와 추억담이 오가면서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서인지 삼선자장면도 더욱 맛있게 먹었다. 우동과 자장면을 주문했던 형수와 누님들, 동생도 그릇을 모두 비웠다.

다섯 명 식대는 모두 3만 4천 원. 생각잖게 형수가 치르겠다고 했다. 평택 누님이 "내가 가자고 해서 왔는데 그러면 안 되죠!"라고 하니까, 형수가 웃으면서 "설날 아이들에게 받은 봉투도 있고, 식대가 조금 나왔으니까 내가 쏠게요!"라며 밖으로 나갔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다음에 또 들르기로 의견을 모으고 식당에서 나왔다. 평택 누님과 함께했던 시간은 불과 두 시간여. 그러나 설을 전후해 괴롭혔던 온갖 잡념들을 삼선자장 한 그릇으로 털어 내버린 것 같아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고,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명절증후군, #설날, #삼선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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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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