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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1월 18일에 있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두고 저는 <오마이뉴스>와 포털 사이트 영어동아리 카페를 통해 동료 교사와 만든 수능응원곡 UCC를 공개했습니다.(윤종신씨...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직감적으로'라는 수능응원곡을 소개한 것은, 재수생 제자들에게 모교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를 전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UCC 공개 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응에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직감적으로' 동영상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3위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KBS, MBC, SBS, CBS, MBN 등 여러 방송사의 TV와 라디오 취재 요청도 이어졌습니다. 그 중 몇 군데는 저녁 뉴스로, 다른 몇 군데는 라디오 생방송 인터뷰로 "고3 담임 교사가 만든 수능응원곡"을 보도하였습니다.

다양한 인터넷 언론과 종이신문들도 '직감적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한 UCC 누적 조회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이런 화제 덕분인지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는 제 글을 '특별 기사'로 선정해 과분한 상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모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한 분은 저와의 인터뷰 말미에 "내년에 수능응원곡 2탄을 만들 때는 (학교 옥상에서 불편하게 작업하지 말고) 우리 방송국 스튜디오를 이용하십시오"라는 고마운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졸업한 제자들의 문자 메시지가 쏟아지고, 연락이 뜸하던 친구, 지인, 친척들의 안부 전화가 걸려올 때만 해도 기쁨 반 어리둥절함 반이던 마음이 어느 순간 당황스러움과 부담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모 방송사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향기가 나는 인물 탐방' 코너 출연을 섭외하는 전화가 왔을 때는 결코 겸손하지 않은(!) 인격의
저로서는 영광스런 기회지만 사양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인터넷상의 무수한 댓글들 역시 우리의 마음을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응원 동영상을 접한 많은 누리꾼들이 지나치게 미화된 이미지로 저희를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저희 두 사람은 누리꾼들이 박수와 갈채를 보내면서 연상한 그런 멋진 교사들이 아닙니다. 그저 한 해 한 해 우리가 맡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이들에 불과합니다.('무한도전' 출연자가 내세우는 모토인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군요.)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저희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께 그 얘기를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레드카펫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 '특별한 졸업식' 준비한 이유

각종 영화제에 배우와 감독 등 귀빈들을 맞이 하기 위해 깔려 있는 레드카펫 (자료사진)
 각종 영화제에 배우와 감독 등 귀빈들을 맞이 하기 위해 깔려 있는 레드카펫 (자료사진)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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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를 보면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뒷풀이가 탈선과 비행으로 얼룩져 경찰이 특별 단속에 나선다고 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어느새 우리 소중한 학생들의 졸업식이 어떤 낭만이나 추억도 만들지 못하는 형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로 전락한 듯 합니다.

그래서, 저희 두 사람은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습니다. 성적이나 명문대학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청소년기에서 20대의 성인으로 자라나는 모든 졸업생들이 진심으로 축하받음을 느끼며 교정을 나설 수 있는 그런 졸업식 말입니다. 이제 이런 목적을 갖고 준비한 우리 학교 졸업식을 지면으로나마 간략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2월 11일에 행해지는 저희 부일외고 졸업식은, '영화제'를 콘셉트로 하였습니다.(저와 함께 수능응원곡을 만든 정봉주 선생님이 이 아이디어를 기획하였습니다.) 졸업식의 주요 특징 중 네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졸업식의 주인공인 졸업생들이 본관 중앙현관에서 부터 깔려있는 '레드카펫'을 밟고 우아하게 걸어 나와 강당 입구 '포토라인'에 서면,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게 됩니다.
영화제 스타마냥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 모델이 되고 나면, 그 중 가장 잘 찍힌 사진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포토라인의 배경 디자인을 미리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요.)

둘째, 일반적인 각 학교 졸업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차지하면서도 지루한 '기나긴 상장 수여'가 식순에 없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서는 특정 학생들과 단상 아래서 박수 치는 다수 학생들로 졸업생을 양분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촌스럽지요'. 현빈씨가 이 선택을 목격한다면 "이게 정말 최선입니다"라고 말하리라 믿습니다.

셋째,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졸업생 전원 모두, 교장 선생님에게서 직접 졸업장을 전달받습니다. 이 때 강당 정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는 그 학생과 관련된 영상이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함께 청중에게 소개됩니다.

넷째, '영화제'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사회자는 김제동씨를 능가하는 세련되고 재치있는 진행으로 참석한 졸업생, 학부모, 재학생 모두를 즐겁고 유쾌하게 해줄 것입니다. 졸업식 사회자인 저는 전체 프로듀서인 정봉주 선생이 만든 시나리오를 보며, 그의 세심함과 사려깊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수능응원곡을 만들 때처럼 의기투합하여 즐겁게 금요일에 있을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적, 명문대 입학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제자들의 행복을 소망합니다

<슈퍼스타K2>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윤종신
 <슈퍼스타K2>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윤종신
ⓒ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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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중간 중간에 소개될 특별 UCC들은 학생들에게 감동, 즐거움, 추억, 그리움 등 여러가지 감정을 안겨줄 것입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내부비밀이라 UCC를 미리 독자 여러분께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수능응원곡 '직감적으로'의 원저작자인 가수 윤종신씨가 저에게 보내주신 졸업축하 영상메시지도 졸업식 당일 상영될 예정입니다. 졸업식이 끝날 무렵 260명 졸업생들이 함께 학사모를 강당 높이 던질 순간을 상상하니 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고단하고 인내심을 요하는 긴 여정을 마친 그들이 훗날 고교 졸업식을 추억의 한 장면으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수능응원곡에 힘입어 제자들이 '수능 대박'을 경험했냐고.
이 질문이 소위 'SKY 대학'이라 불리는 곳에 제자 상당수가 진학했냐는 뜻이라면, 저는 제자들의 성공을 지켜보지 못한 담임입니다. 어찌 모두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모두가 목표 대학에 다 합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좀 교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한편으론 성공한 담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시련과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지 않는 의연함과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분별력을 키워주었다고 믿습니다. 교정을 나서는 제자들을 보며 그들의 앞날에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해 봅니다.


태그:#직감적으로, #수능응원곡, #졸업식, #부일외고, #윤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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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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