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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붕괴가능성과 관련해서 여러 다른 견해가 있다. 각각의 견해에 따라 이들이 접하는 정보나 자료에도 차이가 있는 것인가?

북한체제의 지구력이나 붕괴가능성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접할 수 있는 정보나 자료는 대북 매파에게나 비둘기파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같은 정보자료를 보고도 다른 뉘앙스의 해석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잔의 물컵'을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2. 거의 같은 정보자료인 북한의 현실("반잔의 물"에서, 반"밖에"와 반"이나"를 제외한, 공통부분인 "반"이라는 Fact)은 어떠한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제한된 정보나 자료만 가지고도 북한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미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한지 오래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내부동원이 한계에 처한 북한은 정치군사 등 비경제적 요소들을 총동원하여 체제를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현 상태로는 북한경제의 회생이나 발전가능성이 없다는데 매파와 비둘기파의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매파나 비둘기파나간에 북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만 매파는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고 채찍을 강조하고, 비둘기파는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라고 보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3. 북한의 미래와 관련하여 특히 경제회생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북한이 변화에 소극적인 이유나 장애물은 무엇인가?

각 경제단위의 자율과 창의를 활성화하는 개혁과 개방이 요구됩니다. 북한의 고민은 이런 경제적 과제가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라는 또 다른 요구와 충돌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으로 안보우려를 해소하는 우호적 환경의 조성과 함께, 내부적으로 변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현재 외부환경은 매우 적대적입니다.

북한이 당장 자본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북한 내 사회적 공감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결정입니다. 경제단위에 자율성을 확대하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 나가는 작은 문제에도 아직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북한내 주목할 부문은 시장입니다. 시장은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기인 고대 중국도 중세 유럽도 경제번영기에 시장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현대 사회주의체제 아래서도 얼마든지 시장이 기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의 통제의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요구도 만만치 않게 퍼져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가능한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위한 내부 공감대를 유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외부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4. 현 상태로는 북한에 미래가 없다는 말은 앞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미래가 없다고 해서 붕괴하는 길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가난과 불안과 고통 속에서 질긴 생명을 상당기간 유지해 나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국가사회나 문명도 유기체로서 흥망성쇠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북한도 언젠가는 망합니다. 신라도 망했고 로마도 망했습니다. 북한의 붕괴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이라는 조건이 질문에 부가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상당기간이 5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대부분의 질문도 답변도 "상당기간"에 대해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전망과 대답(어떤 경우는 질문도 포함해서)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더구나 붕괴의 양상이나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각각 이야기 하는 사람마다 머릿속 그림이 달라서, 붕괴에 대한 합의된 개념없이 이루어지는 토론은 동문서답의 장이 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어느 의견도 "신년운세"식 예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상황에 입각한 전망이라기보다 각자의 기대나 의지가 많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영험한 점쟁이의 의견이 과학적 견해보다 훨씬 잘 들어맞을 수도 있습니다.

5. 어쨌든 북한이 변화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하지 않는가?

당연히 대비해야 합니다. 정부라면 한반도와 관련해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한가지 가능성, 그것도 발생여부와 시기와 양상을 알 수 없는, 북한 붕괴사태에 대비하는 일에 몰두하여 다른 모든 가능성과 시급한 현실의 현안을 돌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이를 위한 남북간 화해는 시급한 현안입니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시급합니다. 어차피 북한이 붕괴할 터이니 이러한 현안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태도는 우리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로서는 성실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북한에 극심한 식량난이 발생하고 김일성이 사망한 전후로 북한 붕괴론이 부쩍 유행했었습니다. 최근 우리가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국제적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특히 김정일 건강문제로 다시 북한붕괴론이 재유행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김일성 때와 달리 진짜 북한의 붕괴가 시작될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말고) 김일성 사망이후 에도 북한체제가 17년을 지탱해 왔듯이 또 17년을 김정은 체제아래 지탱해 갈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말고) 그러면 김정은 사망을 또 기다리고.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의 붕괴론은 이단 종교의 시한부종말론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종말에 모든 것을 걸고 현실을 팽개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10여 년 전 언론계 출신 통일부장관이 외국인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조만간 붕괴해도 놀랄 것이 없고, 또 상당기간 지속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북한의 장래에 대해서 어떤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하기보다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장기과제와 단기현안을 치밀하게 돌보는 자세가 요구될 뿐입니다.

 6. 과거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붕괴론을 금기시 했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정부가 하고 있는 북한붕괴 대비 노력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햇볕정책을 왕성하게 추진하던 때도 매년 전공무원들이 을지연습을 통해 전쟁상황에 대비하였고, 동구 공산권 붕괴이후에는 한반도 유사상황에 대비하는 연구가 추가되어 전부처가 참여하여 정기 점검해오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북한의 붕괴상황은 여러 가지 비상상황 중 하나입니다. 북한의 붕괴는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로 오기 전에 안보 위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안보와 관련해서 어떠한 가능상황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책무입니다. 우리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미국은 물론 북한도 한반도 비상상황(Contingencies)에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북한붕괴 대비업무는 역대정부가 몰랐던 새로운 과제가 아닙니다. 과거 20년 이상 역대정부의 정책 담당자와 연구자들보다 현 정부의 정책 담당자와 연구진이 예언 통찰력이나 지혜가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는 한, 현 정부의 성과물이 역대정부가 연구하고 검토했던 결과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훨씬 유용한 성과물이 나오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7. 과거에도 북한붕괴에 대비한 연구를 했다면 정부가 이를 강화한다고 문제가 되나?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여러 예측 가능한 상황에 대비하는 비상대비와 정부정책의 전략목표로서 준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상대비 차원의 준비는 사태발전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당면한 현안들도 치밀하게 관리합니다. 당연히 당면한 현안이 우선이고 장기적 과제도 융통성 있게 돌봅니다. 그러나 전략목표로서 북한의 붕괴를 다룬다는 것은 그 것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고 장기적인 여타의 가능성과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시한부 종말론적 자세입니다. 물론 정부가 전략목표로 실제로 북한의 붕괴를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붕괴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졌으니 좀 더 치밀하게 대비한다는 자세이겠지요. 그렇다면 시급한 현안문제에 대해서 방기하고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화해라는 시급한 현안에 보다 적극성을 가지고 임할 것을 기대합니다.

둘째, 안보측면에서 비상대비 차원 업무는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하기도 하지만 부정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만큼, 정부가 비상상황에 어떻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대비계획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북한과 불필요한 마찰의 추가적인 빌미를 주게 될 것입니다. 국방백서 발간 시 "주적" 표현 논란과 같은 차원입니다. 주적 표현을 공개적으로 쓰지 않아도 남북한은 적대관계인 것은 현실이고 이를 만천하가 알고 있습니다. 주적이라는 표현은 적이 여럿이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고 주적이 아닌 적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냐 하는 질문에도 대답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일이고 부적절한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적대적 행위 주체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그런 정부를 믿고 따르면 됩니다. 주적이 누구냐를 불필요하게 공개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반도 유사상황에 대비하는 업무도 이와 같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규명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8. 햇볕정책은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은밀히 북한붕괴에 대비해 온 것은 북한의 불신을 초래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비상상황으로서 북한붕괴에 대비하는 것은 모순되지도 않으며 도덕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해도 북한이 붕괴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안보문제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데 유독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서만 배제할 이유가 없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과 화해를 추구하면서도 정부는 북한과의 전쟁이나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비해 온 것처럼 한반도 유사상황에 대한 대비와 남북화해협력정책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핵무기와 백만대군을 보유한 북한이 붕괴한다면, 북한지역은 물론이고 한반도, 더 넓게는 동북아 지역안보와 세계정세에 지금으로서는 예기치 못할 타격과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동서독의 경우처럼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남한에 흡수될 것이라는 기대는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현 정부도 이러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을 겁니다. 한반도에 어떤 유사사태가 벌어져도 남북한간 적대감과 보복심리가 팽배해 있다면 독일이 아니라 예멘과 같은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화해협력 정책은 여러 가능성에 폭넓게 유용한 전략적 고려를 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9. 남북화해협력이 "사실상의 통일"을 만들면서 남북통합에 대비하는 노력이라면 햇볕정책 자체가 언제든지 흡수통일의 수단으로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정부가 북한의 붕괴 상황이라는 비상상황에는 대비해야 하지만 햇볕정책은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햇볕정책 초기에는 북한도 이 점을 의심하고 비난하고 반발했었습니다. 햇볕정책은 "사실상의 통일 상태"이후의 문제는 그 당시 세대들이 결정하도록 미루어 놓았습니다. 물론 "사실상의 통일 상태"가 우리 세대에 이루어
진다면 우리 세대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1989년 여야가 만장일치로 지지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골격과 원칙을 충실히 견지한 것입니다. 현 정부도 이 방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수교한지 20년이 됩니다. 중국은 우리에게는 적성국이었고 교전상대이기도 했습니다. 또 현재에도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한중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선린관계로 바뀐 것은 유능한 양국 지도자와 외교관들의 공도 있겠지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양국간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고 심화된 데 기인한다고 봅니다. 말과 문화가 다른 중국과도 적대관계를 선린관계로 만든 교류협력(Trade & Travel)이 남북간에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남북화해협력 정책의 기대이자 목표입니다. 금강산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서도 주저하던 북한이 오히려 지금은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된 것도 남북교류협력이 흡수통일의 수단이 된다는 오해를 경험을 통해 해소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상의 통일"은 현 상황에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방법 외에는 이룰 길이 없습니다.

10.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 독재체제를 용인하겠다는 말인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붕괴가 우리 안보와 경제에 끼칠 혼란과 타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북한지역 내에만 유혈사태나 혼란이 통제될 수 있다하더라도 주민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줄 수 있으며,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인접국간 갈등과 마찰이 다른 차원의 한반도 긴장을 초래할 수 때문입니다.

한반도 유사상황이 발생할 때 북한의 체제를 어떻게 바꾸어 볼까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하고 일차적인 것은 우리에게 미칠 파장에 대비하는 일일 것입니다.

11. 실제로 과거와 달리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는가?

이미 북한붕괴론은 거의 20년 동안 이야기 되어 왔습니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비상대비 차원에서 많은 연구와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우리 안보와 경제에도 타격이 되기 때문에 북한의 연착륙(Soft Landing)을 돕거나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한반도 현안에 대해 부단히 개입해서 우리가 한반도 상황전개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급변상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수록 현안 문제와 관련해 개입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한반도 상황관리 수단을 모두 잃어버린 채, 붕괴 이후에 대비하자는 것은 시한부 종말론적 태도입니다. 북한의 미래가 없다고 바로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붕괴론에 대한 기대가 언제나 새로워지는 것도 시한부 종말론적 끈기와 같습니다.

북한의 급격한 붕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비상대비 차원에서 준비하지 않았던 정부는 없었습니다. 현 정부도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다만 현실과 현안을 우선 돌보아야 합니다.

12.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또는 교류협력 등으로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오히려 북한붕괴를 촉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우리 사회 일각에 전쟁불사론의 극단적 주장도 존재합니다. 이에 비교하면 붕괴촉진론은 과격한 주장도 못됩니다. 이들은 뿌리 깊은 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에 기인한 정서입니다. 우리사회 일부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오히려 북한붕괴 촉진론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반도 장래와 관련하여 적대감과 복수심이 팽배한 상태에서 갑자기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북한 붕괴를 촉진시킬 유효한 수단이 없다는 점, 북한의 붕괴가 반드시 통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는 점,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타격 등을 고려하면 붕괴촉진론은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13.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일세 문제처럼 구체적인 대비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나, 상황에 닥쳐서 추진하면 늦지 않나?

통일준비는 시급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장래의 어느 시점에서 조건이 갖추어지면 착수하는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불확정한 상황에 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일은 어렵기도 하지만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예측가능한 상황과 조건을 다 고려하자면 구체성이 떨어지고, 구체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정과 조건을 제한하면 대비계획으로서 실효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정부도 지금 당장 통일세를 걷자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장래에 닥칠 일을 미리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그러나 통일준비를 장래에 어떤 조건이 마련되었을 때 그때 가서 착수하는 그런 문제로 인식하면 오히려 늦습니다.

통일재원 문제만 하더라도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통일세를 확정하기에 앞서 재정부채 비율을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은 선행 연구들의 주된 결론입니다.

재정 조달의 기본적 원천은 세금과 국채 발행일 것입니다. 수익자 부담이라는 세입원칙을 감안하면 당장 국민들이 혜택을 받는 사업은 세금으로, 혜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사업의 재원은 국채로 하여 세대간 부담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통일재원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후자입니다. 또한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 때 시간이 소요되는 징세의 방법보다 빚을 내는 것이 훨씬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재정이 과도한 부채속에 있으면 추가적 채권발행 능력이 없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당장 쓰지도 않을 세금을 모아둔다는 것은 경제발전의 기회비용만 부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재원 연구의 당연하고도 현실적인 귀결은 통일세 재원이나 세율을 미리 검토해 두는 것이 아니라, 비상상황에 정부 재정이 신속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정부재정의 건전성을 지금부터 높여 나가는 일입니다. 이 문제는 통일대비 차원이 아니라도 필요한 당면 현안입니다.  
같은 취지에서 북한붕괴 이후에 분야별 남북통합 사업을 추진하면 늦습니다. 남북간 화해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미리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당장 필요합니다.

14. 통일문제에 무관심층이 늘어나는 마당에 통일이라는 민족적 시대적 과제를 재인식하게 하는 정부의 통일준비공론화 사업은 필요하지 않은가?

국민의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와 의지를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노력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다만, 통일준비 공론화는 지금 당장 실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며 시한부 종말론적 기대나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어서는 안된다는 점과 어떠한 통일준비에도 남북간 적대감을 완화하고 화해와 평화통일의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준비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정부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일, 지방 균형성장을 도모하는 일, 복지와 의료제도의 개혁에 있어서 한반도 미래상황을 고려하여 설계하는 일, 부동산 투기를 막는 일 등 모든 현안이 통일준비와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다 할 것입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통일준비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화해 협력하는 일부터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거쳐 평화롭게 진행되도록 인내를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준비 공론화도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으면 합니다.

15.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남북관계의 시급한 현안들을 풀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전략적 인내도 북한을 다루는 한 방법입니다. 과거에도 북핵문제 등 현안과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양자간의 문제를 선행조건론(적략적 인내, 선의의 무시 포함), 연계론, 병행론 등으로 다양한 전술에 입각해 검토하고 추진해 왔습니다. 어떤 전술이든 나름대로 유효한 측면이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융통성 있게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략적 인내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특별한 근거가 없는 한, 현재까지의 성과는 실망 수준입니다. 전략적 인내로 얻은 것은 북한의 핵무기 Stockfile의 증강이고 연평 포격도발입니다. 한반도 상황관리의 주도권도 약화되었고 대북 레버리지도 소진되어 버렸습니다. 사실상 통일상태를 만들려던 남북교류협력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두 접었습니다.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공고한 평화 상태로 만들려는 노력도 중단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현안 돌파의 전망이 안보입니다.

전략적 인내의 또 다른 우려할 점은 이것이 북한붕괴론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입니다. 앞서 수차례 언급한 대로 북한의 붕괴에 매달려 현실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라면  우리 운명을 주도해야 할 정부의 태도로는 적절하지 못합니다. 아니길 바랍니다.

16. 핵합의 파기나 대남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등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없이 적당히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당면 현안을 돌파해야 한다고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는 노력과 의지를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북한의 사과 등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는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핵합의를 미국이 파기했다고 하고, 남측의 도발을 먼저 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명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전 물밑접촉을 할 수도 있고 미국 등 제3국의 중재를 통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1996년 강릉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는 미국과 북한이 3개월 동안 대남사과 문안을 놓고 협상 한 끝에 나온 것입니다. 자칫하면 북한은 물론이지만 남북대화를 요구하는 주변국들로 인해 우리가 사면초가의 위치로 몰릴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상황입니다.

1996년 사례에서 보듯이 북한이 사과한다고 해서 북한의 대남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북한의 대남태도가 바뀔 겁니다. 북한의 사과만 있으면 다른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처럼 남북관계를 인식한다면 매우 천진난만한 생각입니다. 북한의 버릇을 잡아보겠다는 허세보다 남북관계에 대한 지극히 냉정한 태도가 국익차원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17. 그동안 수없이 합의를 파기하고 도발을 반복해온 북한과 또 다시 대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우리가 그동안 북한을 신뢰했기 때문에 대화를 하고 화해협력을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불신하기 때문에 화해협력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고 신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대화를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대화는 믿는 친구끼리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믿지 못하는 두 당사자간에 이루어지는 치열한 협상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담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구들로 타협이 쉽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신뢰는 쌍방의 선의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북한의 반복적인 합의파기나 대남도발은 우리가 북한을 개과천선시키는데 실패했다기보다 남북 모두 한반도의 근본적 적대구도를 평화공존구도로 바꾸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내와 집념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북한의 언행이 마음에 안든다고 접을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여러 면에서 형편이 나은 우리가 주도해야 합니다.

18.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북한이 대남적화의 꿈을 버리지 않고 남북화해협력 공간을 적화통일 공간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천진난만한 생각이 아닌가?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불순한 기도도 막아내는 노력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순한 기도 가능성 때문에 남북화해협력 자체를 막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국익을 현명하게 교량하지 못하면 빈대잡자고 초가집 태우는 격이 됩니다.

어떠한 정부와 정책도 국민을 믿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은 선진국 문턱에 이미 와 있습니다. 우리 국력은 모든 면에서 북한과 비교하기도 민망합니다. 남북이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상대방 현실을 대하면 우리 국민이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은 70년대의 상황 인식입니다. 남북화해협력정책은 우리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입니다.

19. 화해협력정책이 북한주민의 고통과 독재정권만 연장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질문 자체가 도덕적으로는 몰라도 정책적으로 유의미한 질문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적나라한 목적은 북한주민의 이익과 북한의 장래보다는 우선남한의 국익을 앞에 두고 추진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주민의 이익도 북한의 장래도 고려합니다만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북한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 운명이며 한반도 장래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과거 대북지원도, 정부가 세금거둔 돈이 남아서도 특별히 동정심이 많아서도 아니며, 철저한 국익 계산의 토대에서 추진된 것입니다. 국제관계는 물론이지만 남북관계도 근본은 힘과 국익이 우선이 됩니다.

화해협력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에 기초한 정책입니다. 다행히 양측이 서로 이익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실천되었고 앞으로 화해협력 단계가 높아질수록 양측의 이익이 일치하는 공통부분이 점차 넓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결론적으로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현 단계에서 어떻게 평가하나?

물 잔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고 봅니다. // 끝


태그:#고경빈, #북한붕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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