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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카이스트학생 자살 사건에 대하여 이미 많은 분석적인 글이 나온 상태에서 필자가 한 마디 덧붙여야 하겠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의 원인 분석을 대충 보니 이미 '등록금 징벌제'에 대하여 가장 많은 진단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100% 영어강의제'까지 포함된 것을 보았다. 카이스트 학생들도, 많은 네티즌들도 100% 영어강의를 마녀로 몰기 시작하였다.

 

그래, 영어다. 저 마녀를 잡아서 불태우면 되지 않을까.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더 이상 세계적 강국이 아니며 영어도 따라서 더이상 강자의 언어가 아니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중국어에 몰입해야 한다. 중국어로 강의를 해야 한다면, 그때 가서는 중국어를 탓할 것인가?

 

어제는 한 카이스트 교수님이 '이제 한국어로 강의하겠다. 영어로 하니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며 영어 강의 반대를 선언하셨다. 이 점도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 분을 비롯한 카이스트 교수님들께 감히 묻고 싶다. 그러면 한국어로는 제대로 교육을 하셨고, 지도를 하셨는지. 학생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학생들과 이야기할 시간조차 없는, 똑같은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실정이 아니신지.

 

많은 이공계 학자들이 문 걸어 잠그고 연구만 해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알고 있다. 수주해야 하는 과제 및 기한 내에 생산해야 하는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경쟁에 대해서도 별 달리 해줄 말씀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공계 교수가 아닌 필자도 면죄 대상은 아닐 것이다.

 

이미 고려대학교 김예슬 학생은 '대학은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육이 죽었다고. 이 점에 대하여 많은 고려대학교 교수님들이 침묵하셨다. 그리고 카이스트도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다고 외치는 학생들에게 몇몇 교수님들을 제외하고는 침묵하시고 계신다. 오히려 서울대 등 타 대학의 교수님들이 한 마디씩 하실 뿐이다. 물론 그 대학의 교수님들만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학 학생들을 맡고 가르치는 분들께서 이 점을 더 깊이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영어'는 그저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지시적 정보만을 전달하는 수단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영어는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중 특히 '계층화'에 이용되는 수단이다. 우리는 영어를 잘하면 직장을 잘 구할 수 있다는 소위 '스펙'에 영어가 들어간다.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들은 물론 내가 재직하고 있는 유니스트 학생들도 소위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영어가 가지는 상징적 기능 때문이리라. 그 뿐이랴. 거리의 간판을 보면 여기가 한국인가 할 정도로 영어로 쓰인 것이 많다. 그런 것들이 소위 '글로벌 한국'을 재현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이것이 좋든 싫든 이미 한국 사회의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영어가 언젠가는 중국어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영어, 중국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한국사회, 한국 대학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지적하셨지만, '선택과 집중,'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라는 논리가 통용되며, 한 가지 길 외에 절대 대안이 없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스펙을 쌓아야 취직이 되며, 교수들은 국제저널에 논문을 실어야 승진이 된다.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하다.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치면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학생도 교수도 모두 앞으로 향하여 묵묵히 뛰어갈 뿐, 옆 사람을 볼 기회가 없다.

 

이제는 대학을 책임지고, 학문과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한번 나무만이 아닌 숲을 보고 같이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태그:#KAIST, #영어강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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