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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해경이죠?"

"네, 그렇습니다."

 

"엔진고장으로 조난사고가 발생해 표류 중입니다."

"담당자 바꿔 드리겠습니다."

"예, 경장 아무개입니다. 그곳이 어디죠?"

 

"여기는 남면 안도 동고지 해상인데 엔진고장으로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실종사고가 발생해 출동할 수 없으니 사선(私船)을 이용 바랍니다."

 

지난 10일 오후 바다에서 배가 엔진고장으로 조난사고를 당해 여수해경에 구조요청했더니 돌아온 답변이다. 이날 아침까지 좋았던 날씨가 오후 되면서 점점 흐려지더니 온 바다에 안개가 자욱해졌다. 어느새 바다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운무로 뒤덮였다. 휴일을 맞아 출항신고를 마치고 우리가 찾은 곳은 여수시 남면 안도 일원이었다.

 

봄철을 맞아 볼락이 주종을 이루는 5월, 요즘 조사들의 입소문에는 볼락이 '물 반 고기 반' 이라 해서 급히 떠난 선상 낚시였다. 역시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루 내내 직접 만끽한 손맛으로 스릴이 넘쳤다. 이후 변덕스러운 기상 탓에 오후가 되자 여수항으로 귀항을 서둘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엔진이 꺼진 것이다. 기름이 떨어진 것 같아 100리터짜리 보조탱크로 기름을 전환했다. 이후 시동을 켜는데 이번에는 키 박스에 전혀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시동키가 전혀 먹지 않고 먹통이다.

 

난감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참 엔진과 씨름하는 사이 배는 바다로 떠내려갔다. 물 흐름이 없다는 조금인데도 조류와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는 속도가 무서웠다. 하는 수 없이 바다에 닻을 놓았다.

 

설상가상이다. 안개와 함께 저무는 날씨가 점점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엔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엔진을 샀던 ○○마린에 휴대전화로 전화하면서 점검했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선외기 엔진 덮개를 열고 점검에 나선 지 두어 시간이 흘렀다.

 

해경, '국민중심 안심바다' 구현 하겠다더니

 

후배가 일단 해경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해 보자고 했다. 해경에 도움을 구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해난사고 긴급전화인 122로 구조요청을 했다. 오후 5시 23분이었고 정확히 1분 49초 동안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해경에서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고 매몰찼다. 실종사고가 발생해 출동할 수 없으니 사선을 이용하란다. 어이가 없었다. 엔진고장으로 바다에 떠다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당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더 급한 사정으로 당시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이후 확인 전화조차 없는 여수해경의 처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실종자를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실종 보도 소식은 없다.

 

다행히도 엔진업체와 많은 통화 끝에 가까스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일정에도 없이 섬에서 하루 묵어야 했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해경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바다안전지킴이 '블루가드'로 '국민중심 안심바다' 구현을 하겠다던 해경 아니었던가? 또한, 올해 취임해 "세계일류 해양한국의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하는 그날까지 투명한 행정과 현장중심의 치안서비스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다"던 여수해경 김두석 서장의 말은 과연 구호뿐인가?

 

긴급구조는 말 그대로 위급할 때 절실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이 사선(私船)을 이용할지 몰라서 구조요청을 한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안개가 많이 끼는 날 해난사고를 당했는데 도움받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존재가치는 유명무실한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여수해경, #긴급구조, #조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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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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