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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은 대단히 비상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생활철학, 권위주의

 

본질적으로 한나라당은 지역적으로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주의, 세대로는 노년층의 당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근본 정신은 권위주의입니다. 권위주의야말로 한나라당 내외에 흐르는 뿌리 깊은 생활철학입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양상이 서로 달랐습니다. 김 대통령에 대해선 깔보는 태도였고, 노 대통령에 대해선 증오하는 태도였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막강한 영남 헤게모니에 맞서 감히(?) 호남의 동등함을 주장했기 때문에 깔보았던 겁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자체를 인정은커녕, 타파하겠다고 하니 증오했던 겁니다. 그게 권위주의입니다. 도전하는 자는 짓밟고 아예 무시하는 자는 증오하는 게 권위주의입니다.

 

국가보안법의 개정·폐지를 주장하고 대북송금 특검에 홀로 반대했을 때, 한나라당은 이념적 이질성 때문에 저를 미워한 게 아닙니다. 감히 한나라당 주인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봐서 저를 비웃었습니다. 감히 중심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변, 지주에 대한 소작인, 가옥주에 대한 세입자 취급하는 권위주의가 비수처럼 제 뒷덜미에 박혔습니다. 그 권위주의에 복종하면 붙여주고, 거역하면 '기수열외'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전국정당 건설을 통해 저들의 권위주의를 영남에서부터 무너뜨리려 했던 몸부림이 2003년 '독수리 5형제'였습니다.

 

영남 헤게모니 세력의 귀환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결코 중심이 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홍준표 당 대표가 탄생했습니다. 흔히 홍 대표의 '한나라당스럽지 않음'과 친이-친박에 휩쓸리지 않았던 '독고다이성' 덕분이라는 분석을 내놓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영남 권위주의 세력이 홍준표 대표의 '모래시계' 검사라는 강직하고 서민적인 이미지 뒤에 숨어 있다 박근혜 대선 후보를 통해 다시 복권하겠다는 작전이 성공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이미 이회창 총재의 등 뒤에도 숨어 있어 봤습니다. 비록 두 번씩이나 대선에서 졌지만, 그래도 자신의 지역에서 만큼은 최고 권력을 구가하는 '봉건영주'였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딱 한 번,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가 떨어져나갈 때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영남 헤게모니의 복위(復位)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우스운 건 그 틈에 원래 영남 친이들까지도 묻어서 이제 거의 다 '월박'을 마쳤습니다. 그것이 원희룡 의원이 참패하고, 홍 대표가 2위와 1만여 표의 큰 격차로 압승했던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

 

이번 7.4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은 노선에서는 좌 선회,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중용, 연령에선 세대교체를 실현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변화에 마땅히 긴장해야 합니다. 새로운 한나라당 지도부가 좌향좌를 하면서 중도를 차지하려는 싸움을 벌이면 우리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젠 정책의 수준이 아니라 어떤 국가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총체적  비전의 차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이 내년 총선의 주요 전장이 될 것입니다. 계파 몫 챙기기로 공천해서는 못 이깁니다. 정치권에서 세대교체란 세대 간 갈등이 아니라 노장층이 소장층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번에 한나라당은 그걸 했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의 총선 승리를 위한 수도권 대표론과 출마 포기 선언이 평균 50.2세의 지도부를 가능케 했습니다. 비록 위장술이지만 대단한 정치력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영남·반공보수주의·노년층의 당이 수도권·좌 선회·50.2세의 젊은 지도부를 만들었으니 비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비상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당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한나라당의 박근혜당화'라는 본질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이번 전당대회의 핵심적 의미는 영남 헤게모니의 복권이며, 그 중심에 박근혜 의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을 막아줬듯이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방어해달라고 저격수 홍준표를 선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홍 대표에게 부여된 역할의 첫째는 영남 헤게모니 세력을 가리는 교묘한 위장막이며, 둘째는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강력한 방어막, 이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홍 대표로 하여금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시키기 위한 안전장치가 차점자 유승민 의원입니다. 유승민 의원이 정책적 좌 선회를 주도하고, 홍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를 옹위하는 구도, 그럼으로써 이명박과 수도권 친이계에 넘겨줬던 주도권을 다시 영남 권위주의 본류 세력에로 되찾아 오는 첫 단계 작업. 이것이 이번 7.4 전당대회의 숨은 의미입니다.

 

탈지역, 탈권위주의로 맞서야

 

우리 민주당은 노선과 지역, 세대에서의 변화를 한나라당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동시에 서서히 전면에 나설 영남 권위주의 세력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탈지역주의와 탈권위주의의 전선을 쳐야 합니다.

 

영남 지역주의에 맞선다고 또 다른 지역주의로 대응하는 건 안 됩니다. 권위주의에 맞선다고 또 다른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같은 프레임에 빠져서는 국민 눈에 똑 같은 자들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더욱이 민주당은 야권연합을 해야 하는데 지역주의와 권위주의 시대의 프레임으로 돌아가서야 어떻게 진보세력과 연합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진보개혁이 살려면 보수가 뼈를 깎을 때 우리는 환골탈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당의 정신입니다. 저부터 방심을 거두고, 긴장의 칼날을 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부겸 기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태그:#한나라당 전당대회, #권위주의, #영남, #박근혜,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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