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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드나드는 산 용문산에는 사나사라는 절이 있다. 용문사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 한층 한가한 맛이 있다. 절이 들어선 자리도 워낙 소박하여 한갓진 즐거움을 족히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조촐하고 오붓한 절이다.

함왕혈 비석
 함왕혈 비석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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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계곡을 따라 사나사로 가다 보면 길옆에 '함왕혈 咸王穴'이라고 적힌 작은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일까. 함왕은 대체 누구이고 '혈'이라고 했다면 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인가. 궁금하여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함왕혈
 함왕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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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왕혈
 함왕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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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가니 철제 보호책에 둘러싸인 바위가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주위의 다른 바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바위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커다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이 함왕혈이었다.

함왕혈은 삼한 초기 함왕 주악이 태어난 곳이라고 전해진다. 먼 옛날 이 인근에 살던 함씨 무리들이 그들을 이끌 지도자가 없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함왕혈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그들은 그 아이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성을 쌓고 번창일로를 걷던 함씨 일족들은 외부의 침입을 받아 성이 무너지고 왕이 죽자 결국 망하게 되었다. 후에 성을 쌓을 때 왕이 태어난 함왕혈을 밖에 두고 성을 쌓아서 나라가 망했음을 알게 된 후손들이 바위에 보호책을 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함왕혈
 함왕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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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왕혈
 함왕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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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지만, 실제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강력한 호족세력이었던 함규 장군이 함왕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혹은 함왕이 세웠다는 석성과 이 바위굴의 이야기는 주악이 맞는데, 주악 이후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아 함규 장군을 시조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근(양평) 함씨의 시조인 함규 장군은 이 일대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지만 결국 고려 태조에게 귀부하여 개국공신이 된 인물이다.

함왕혈
 함왕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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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야 어떠하던 간에 당시 그는 함씨 세력이 웅거했던 '함왕성'의 성주였다. 함왕성은 용문산 남서쪽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당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함씨 대왕성' 또는 '함공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함왕성은 길이가 2만 9,058척(약 8,800m)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는 석축의 일부만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함왕혈, #함규, #함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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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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