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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남태령 전원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비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최대 피해를 입은 곳 중 한 곳입니다. 특히 한눈에도 고급스럽게 뵈는 주택가보다 마을 안쪽 무허가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남태령역(지하철 4호선 2번 출구)을 나와 전원마을로 들어서자 천막 아래서 더위와 허기를 달래고 있는 노원의용소방대원들이 보였다. 그 와중에 온몸에 진흙을 잔뜩 묻힌 중년 남성이 "예쁘게 찍어주세요" 하며 '브이'자를 그린다. 고단함 속에 여유가 느껴졌다.
 
 
이날 처음 수해복구작업을 위해 현장에 왔다는 도봉경찰서 대원들. 하지만 마을 안에서 만난 주민들은 "(산사태 발생)사흘 만에 오늘 처음 지원인력이 왔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두 가구가 살고 있던 한 지하주택 안이다. 반나절 넘는 복구작업에도 산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온 흙탕물이 가득하다. 지층에 살고 있는 집주인 이모(69)씨에 따르면 세입자 중 한 사람이 "(방에 갇힌) 어린 아이를 데리러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다 팔을 다쳤다"고 했다.
 
 
길모퉁이를 돌자 난데없는 흙길이 펼쳐졌다. 비교적 산과 거리가 있는 주택가 도로임에도 밀려온 흙의 양이 엄청나다. 산사태의 위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한다. 
 

 

이날 처음 시작된 복구작업은 주로 주택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잠시 후 만난 비닐하우스촌 주민 몇몇은 "여긴 이렇게 다 무너졌는데도 이제야 (복구작업을) 하는데 아래 (국회)의원집은 벌써 끝났다더라", "수해복구도 잘 사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ㅎ' 식물원의 원예 수강생이라는 백발의 남성이 흙탕물로 얼굴과 발을 씻고 있었다. 제일 시급한 게 무엇이냐 물었더니 "삽과 양동이"라고 했다. "사람이 많이 와도 장비가 없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노인을 만난 식물원 바로 뒤쪽. 흙더미에 깔린 비닐하우스 건물이 사막 한 가운데 공룡뼈 잔해처럼 보였다.

 

 

무너진 비닐하우스 내부. 점심 무렵부터 동원된 인력들이 부산하게 작업 중이었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듯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허가 비닐하우스 촌인 이유로 집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것. 이 경우 임의로 구조변경을 할 수 없어 기존 골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복구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이곳 비닐하우스에 살던 친구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는 김모(33·인테리어)씨는 "집안 기둥을 다 살린 상태에서 복구작업을 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이곳 사는 사람들도 다 세금 내고 주민등록도 돼 있는데 왜 이렇게 홀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덧붙여 "사람 힘으로 흙과 쓰레기를 옮기기 역부족"이라 "포클레인이 동원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비 피해로 목숨을 잃은 비닐하우스촌 주민 이순애(72·실제나이)씨가 살던 곳. 산사태가 발생한 나흘 전 아침(27일 8시 15분경), 갑작스레 집 안으로 들어온 물을 퍼내던 남편이 먼저 유수(流水)에 떠내려 갔고 곧바로 이씨도 변을 당했다.
 
하지만 떠밀려와 있던 자동차를 딛고 나무뿌리를 잡은 남편은 간신히 목숨을 구했고 아들 또한 큰 부상을 입었으나 구사일생했다. 이씨 시신은 어제 오후 4시경, 집에서는 한참 떨어진 아랫동네 어느집 지하실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촌주민연합의 권기현 마을회장에 따르면, 이번 비로 비닐하우스촌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명 부상, 세 집이 완파됐으며 반파된 집은 "거의 다"라고 했다. 사망한 이씨네 바로 아랫집에 살던 그 역시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 길 안내를 돕던 그가 휴대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바삐 갔다. 도착한 곳은 또다른 비닐하우스촌. 촌 옆 공터에서 포클레인 두 채가 열심히 흙을 다지고 한 여성 주민이 위험스레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원인인 즉 수해복구를 위해 나온 서초구청 측에서 쓰레기와 함께 수거된 흙더미를 비닐하우스촌 바로 옆에 쌓고 있었기 때문. 이 경우 다시 비가 오면 간신히 피해를 면한 비닐하우스촌마저 추가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이날 권 회장과 주민들은 서초구청 측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으나 작업은 계속됐다. 실제로 기상청은 31일 밤부터 서울, 경기, 충청 등에 다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으며 9호 태풍 '무이파'가 북상 중이다.

 


태그:#우면산, #우면산산사태, #남태령,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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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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