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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자모임 기금모금을 위해 산청에 모인 귀농자들
▲ 귀농자모임 기금모금을 위해 산청에 모인 귀농자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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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이상한파로 키우던 포도나무가 다 얼어죽었다. 귀농자한테는 사형선고 같은 상황이다. 그럴 때 '기금' 같은 게 있었다면 절망적이진 않았을 것 같다."

말을 이어가던 경남 거창의 귀농자 이춘일(44, 귀농 8년차)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야기를 듣는 다른 귀농자들의 표정도 덩달아 숙연해졌다. 이미 날이 어두워진 탓이기도 하겠지만 오늘 경남 산청의 한 귀농자 집에 모인 귀농자들의 얼굴은 더 어두워 보였다.

새삼 이 바쁜 일철에도 이렇게 모인 각지의 귀농자의 얼굴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멀리 경북 예천과 봉화에서부터 경남 사천, 밀양, 의령, 산청, 함양, 합천, 창녕, 거창의 귀농자들이 모였다. 회의 참관을 위해 부산귀농학교의 권인근 사무국장이 참석한 모습도 보인다. 2011년 9월 23일 저녁의 풍경이다.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꾸고자 전국귀농운동본부 서석태 공동대표가 제안의 말을 이어갔다.

"귀농자들이 좋은 뜻을 품고 농촌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만만치 않고 정착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귀농학교에서 배운대로 생태적이고 순환적인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이 차츰 약해지는 걸 많이 본다. 이럴 때 도움을 준다면 다시 중심을 바로잡고 건강한 농부로 일어서는데 큰 힘이 될수있으리라고 본다."

'귀농인을 위한 기금'을 최초로 제안한 거창의 우태영(41, 귀농 12년차)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12년 전 고향인 거창에서 친환경농사와 된장가공을 시작했을 때 무척 힘들었다. 생산과 판매에서 모두 고전했다. 그때 '한살림'과 같은 곳에서 나를 믿고 내가 일어서도록 도와줬다.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해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이런 도움을 다른 귀농자들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애초에 제안한 거다."

귀농기금 부산귀농학교 권인근 사무국장
▲ 귀농기금 부산귀농학교 권인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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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자에 대한 A/S가 없다, 자체 A/S라도 하자"

여기에 현장에서의 애로점을 호소하고 길을 모색하자는 여러 의견들이 보태졌다. 사천의 최해곤(58, 귀농 7년차)씨가 말했다.

"귀농학교는 교육생들을 교육시킨 후 A/S가 없다. 교육 후 귀농한 사람들이 겪는 모든 문제는 오롯이 귀농자들의 몫으로만 넘긴다. 물론 귀농학교가 교육 외에 귀농자를 책임질 역량이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귀농자들끼리라도 서로 돕는 길을 찾아야 하는 거다. '기금'은 그중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 우리 귀농자들은 귀농자를 돕는 기금에 조건 없이 기부하는 것까지만 하자. 그렇게 모인 기금은 아예 맡겨버리자. 비영리단체인 부산귀농학교에서 맡아서 관리하고 집행해줬으면 좋겠다."

이후 여러 귀농자들의 이야기는 몇 가지로 모아졌다. 일단 기금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목적성 기부형태로 모금된 기금은 귀농자들의 손을 떠나 비영리단체인 부산귀농학교에 관리를 위탁할것을 부탁키로 했다. 그 외 모금액과 시기에 대한 논의는 차차 의논해 가기로 하고 초가을 밤의 늦은 모임을 마쳤다.

모임이 공식적으로 끝난후 기금사업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진행방향을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전국귀농운동본부 서석태 공동대표와 질의응답식으로 진행되었다.

귀농기금 전국귀농운동본부 서석태 공동대표
▲ 귀농기금 전국귀농운동본부 서석태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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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의 귀농자를 위한 기금

- 귀농자를 위한 기금을 모으고 운영하는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나?
"처음이다. 전국 최초의 시도인 셈이다. 이 제안은 부산귀농학교 출신 귀농자들이 먼저 느끼고 제안했다. 주로 경남과 경북에 귀농해서 활동하고 있는 귀농자들이다. 이 시도가 성공하고 정착되면 전국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 기금은 얼마를 예상하고 있나?
"금액은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조정될 것으로 본다. 사견을 말하라면 1차로 1천만 원 정도를 목표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다른 회원들의 의견과 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기금으로서의 힘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후 차차 기금의 금액을 높여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일단은 모금이 중요한데 어떤 식으로 마련한다는 것인가?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있다. 귀농자들이 귀농학교나 단체에 친환경농산물을 팔았을 때 그중 일부를 기부받는 방식이 있다. 그 외 도농교류를 통해 거래되는 판매량의 일부를 기부받는 방식도 있다.  그리고 취지에 동감하는 귀농인이나 귀농예비자들로부터 금액 제한 없이 기부받는 방식도 있다. 세부적인 안은 마련 중이다."

- 이렇게 모인 기금은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가?
"기금 운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귀농자들이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단, 중심을 잡아갈 필요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바른 농사를 짓는 귀농자, 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귀농자, 힘들더라도 생태적이고 순환적인 농사를 지으려는 귀농자에게 우선 지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는 누가 키우지? 우리가 키워야"

- 어떤 식으로 운용된다는 것인지 자세히 말해달라.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농사를 지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화학비료 같은 것이 아닌 좋은 거름을 만들어 흙을 살려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소를 키우는 거다. 기금에서 그런 농부에게 송아지 1마리를 입식시켜 주는 거다.

3년이면 송아지는 소가 되고 송아지 두 마리가 태어난다. 3년 후 그 농가는 받았던 송아지 1마리(또는 그에 상응하는 송아지 값)를 반납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한 마리의 송아지는 다른 농가에게 입식할 수 있다. 이렇게 송아지는 순환하는 것이고 농가들의 거름 문제도 해결된다. 이렇게 하면 기금 재원도 줄어들지 않는다.

또 다른 방식도 있다. 토종 콩이나 종자를 희망농가에 보급하고 그 씨를 받은 사람은 2 ~3년뒤에 받은씨의 5배를 다른 귀농자나 귀농학교에 반납하는 방법도 있다."

- 취지는 좋은데 운영과 집행에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이 기금 사업을 제안한 귀농자들은 자신들이 그 혜택을 보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조건 없이 기부하고 그 기부처도 비영리단체인 부산귀농학교 같은 곳으로 창구를 단일화하려는 거다. 그럼 부산귀농학교의 공식적인 운영위원회 같은 곳에서 수혜대상자를 선정하고 기금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수혜받는 귀농자를 엄정하게 선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때 현장에 있는 여러 귀농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협의 절차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 끝으로 한 말씀 한다면.
"모금과 기금운영이 무난하게 잘 진행된다면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수혜대상자를 선정하고 발표하는 날은 하나의 축제와 같은 행사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초심을 지켜나가려는 귀농자들에게 분명 격려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귀농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예비 귀농자들에게도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 전달의 효과가 있을것이다. '아, 저렇게 귀농자에게 격려와 도움을 주는구나. 나도 힘들더라도 저런 마음을 잃지 말아야 겠다'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것이 더 큰 전파력을 가질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부산귀농학교 소식지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귀농#부산귀농학교#전국귀농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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