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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분노를 삼가는 것을 예의이자 지혜로 여겨 왔다. 한번 노할 때마다 한 번 더 늙고 한번 웃을 때마다 한번씩 젊어진다(一怒一老 一笑一少)라며 화는 속으로 인내하고 꾹 참는 것이라고 말이다.

 

허나, 때로 분노는 필요한 법이다. 특히 불의한 사회적 구조와 정계·재계의 파렴치한 이들에 대하여 치솟는, 의로운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통탄, 그런 의분(義憤)과 공분(公憤)은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며 시민으로서 그것은 도리이자 권리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는 특히 성전 앞에서 희생제물을 파는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의 판을 엎어버리시며 크게 분노하셨는데, 그 분노는 그들뿐 아니라 그 판을 허락한 제사장들을 향한 분노였으며, 아울러, 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으로 희생제물을 사고 돈을 바꿔야 했던 가난한 신도들을 대변한 분노였다.

 

성전이 장사판으로 전락한 것에 분노하신 예수는 이 시대, 이 사회를, 곧, 하느님이 보시고는 감탄하셨던 이 세상이 어느새 장사판, 전쟁터, 경쟁과 도태의 아비규환, 떼죽음과 멸종의 생태계로 전락한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분노하실까. 자손대대로 숭엄하게 물려주어야 할 아름답고 존귀한 이 나라, 이 겨레, 이 강토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 내지 냉소주의에 빠진 것을 보시면 얼마나 더 분노하실까. 

 

요새는 '분노'가 대박이자 대세인 것 같다. 작년 2010년 10월 2일에 출간된 93세 노령의 레지스탕스 출신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의 작은 책 <분노하라(Indignez Vous!)>는 프랑스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 판매, 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지고 있는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감전시켰다고 평해진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을 뒤흔들었고 그 물결이 오늘까지도 이어져 현재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성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反)월가(Wall Street) 시위(Occupy Wall Street)의 불씨가 되었다고 한다.

 

급기야 여의도도 표적이 된다. "1%를 위해서 99%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 미국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IMF 이후 금융감독원에게 감독의 책임을 맡기고 탐욕스런 자본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주길 바랐지만 오히려 그들과 결탁하고 눈감아줘 피해가 커졌다. 사건이 발생이 됐을 때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았다"라며 2011년 10월 15일, 금융소비자협회, 참여연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의 시민단체 회원 300여 명이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여의도를 점령하라--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를 구호로 분노에 찬 국제연대 집회를 열었다.

 

이날 국제공동행동의 날 집회는 전 세계 80여 개국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고 이 물결은 계속 더 큰 파도로 더 많은 국가들에게로 퍼져가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 출생의 유대인으로 20대 젊음을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과 그로 인한 집단수용소 생활로 준열하게 보냈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을 초안하는 데도 참여하였으며 1981년 미테랑 정부 때는 외교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 94세인 그는 나치에게서 프랑스를 구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시작하여 그 후 프랑스 사회의 미덕이라 할 의료보험, 은행 국유화, 독립 언론 체제 구축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그는 술회한다,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왔다"라고.

 

이제 그가 현 시대를 통탄한다. 분노가 레지스탕스의 존재 이유였음을 상기시키며 오늘날이야말로 다시 그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환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분노하라, 시도하라, 행동하라!"라고 외친다. 노(老)투사는 사실상 그의 유언으로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맞서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일으키라고.

 

그러한 분노는 지난 2011년 7월 1일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기념 강연을 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에게서도 이어졌다. 그는 "20대여 냉소는 버려라, 희망의 끈을 놓지 마라!... 당신은 비겁자의 자식, 억울한가? 그러면 분노하라!"고 당부했다. 젊은이들의 아버지 세대가 뭘 못했는지 알아야 하고, 이어서 젊은이들은 더 나아가야 한다, 결코 냉소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그는 기력을 다해 호소했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인권개념 실종 종결자' 내지 '인권 문맹자'라 불릴 만한 이들이 통치엘리트들로 군림하여 기고만장하는 반면, 일반 대중들의 절망과 좌절은 극에 달하고 있지 않은가. 허나, 이에 대해 분노하는 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대부분은 참여하지 않으며 불행해 하고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스테판 에셀은 답을 준다. 100세를 몇 년 앞둔 94세 고령임에도 그러한 강건함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느냐는 번역자의 물음에 대해 "나의 비결, 그것은 물론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기쁨'입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분노와 기쁨이 강건함과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아주 일찍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1937년 스무 살 때 "장 폴 사르트르라는 스승 같은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내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곧, 행복의 비결은 분노와 참여이며, 그것을 통해서 내가 기뻐지고 강해지고 먼저 행복해져야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노래가사처럼, 분노를 감추려고 "웃고 있어도" 분노는 계속 치밀어 오르게 마련이다. 진정으로 웃으려면 먼저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그 분노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일수록 그 근원을 찾아 바꾸어야만 그 분노는 풀릴 것이다. 그러한 분노가 세상을 바꾸어 왔다. 사회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롭게 한번 노할 때마다 사회는 한 번씩 젊어지고, 냉소주의로 한번 웃을 때마다 사회는 한번 더 늙어간다(一怒一少 一笑一老)라고나 할까. 분노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녕 씨는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인권연대, #조세희, #여의도를 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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