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단 14억 원이다. 그런데 국회 지경위 예산소위에서 의결하고 국회 지경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걸 다시 논의하자고 한다. 언제부터 민주당이 안철수에 접수됐는지 의심스럽다."

 

강용석 무소속 의원의 말마따나 "단 14억 원" 때문에 난 사단이었다. 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이하 지경위)는 안철수연구소의 정부 출연 예산 14억 원을 삭감하기로 한 전날 결정을 번복했다. '소프트웨어·컴퓨팅산업 원천기술개발' 예산 중 14억 원을 삭감한다고 재정리했다. 안철수연구소만을 콕 집은 예산 삭감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 예산을 깎겠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안철수 예산' 삭감, 전모는 이렇습니다 

 

애초, 8일 지경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안철수연구소가 컨소시엄을 이뤄 진행중인 '모바일 악성프로그램 탐지 및 방어 솔루션 개발 사업'에 대한 14억 원의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돌연 안철수연구소가 진행하는 사업의 모사업인 '소프트웨어·컴퓨팅 산업원천기술개발 사업'의 예산 1427억 원 중 일부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못 박은 것이다. 

 

지경위는 "어제(8일) 전체회의 속기록을 확인해 보니, 어떤 구절에도 14억 원 예산 삭감이 안철수연구소에 지급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원천기술개발 사업에서 14억 원을 삭감한다는 취지는 명백"하기에 모사업의 예산 중 일부를 삭감하는 걸로 정리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1427억 원 중 어느 분야에서 14억 원을 깎는 것일까. 이는 정부에 일임했다. 김영환 지경위 위원장은 "정부가 소프트 산업에서 진행하는 예산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평가해서 예산 삭감 문제를 결정해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로써, 논란이 된 안철수연구소 예산 삭감 건은 '재의결'할 필요도 없이 일사천리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속기록을 속속들이 파헤쳐 '꼼수'를 부릴 탈출구를 마련한 셈이다. 

 

시간을 하루 전으로 돌려보자. 강용석 의원이 안철수연구소에 배정된 예산 14억 원의 삭감을 요구했을 때, 지경위 예산소위에서는 물론 전체회의에서도 아무런 이견 없이 무사통과됐다.

 

강 의원은 "안철수연구소 최대 주주인 안 원장이 1년에 평균 14억8000만 원의 배당금을 받는 것을 감안할 때, 안 원장의 배당금을 사실상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경제부는 '외국 인지도 및 해외 진출 용이'를 이유로 안철수연구소를 사업자로 선정했는데, 안철수연구소는 내수 비중이 총 매출의 95%가 넘는다"며 "바이러스 백신은 탐지율과 방어율을 기준으로 삼는데 세계 기업들은 90% 이상을 기록하는 반면, 안철수연구소는 80%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1400여 억 원의 소프트웨어 사업 중 콕 집어 안철수연구소에 배당 된 예산만을 문제삼았다. 강 의원 측은 "'안철수 예산'을 찾으려 한 게 아니라, 예산 중 어떤 사업에 문제가 있나 보다가 눈에 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안철수연구소 측도 강 의원 측의 주장에 "정치적 악의를 가진 흠집잡기"라고 반박했었다. 안철수연구소 측은 민영뉴스통신사인 <뉴스1>과 한 인터뷰에서 "안철수연구소는 세계 보완 관련 업체 중 10위권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전멸한 상황에서 해외진출 경쟁력을 갖추고 고군분투하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또 안철수연구소는 "사업 기간 중에도 매년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거쳐 예산이 지원되고, 사업비용도 60%는 정부가 지원하지만 나머지는 3개의 협력 중소 업체와 함께 부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경위 위원 중 어느 누구도 강 의원의 주장을 문제 삼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연구소 예산 삭감안은 통과 됐다. 강 의원은 "삭감을 의결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경위원들 갑자기 "특정 인물 겨냥한 듯한 예산 삭감 부당"

 

그런데 갑자기 바뀌었다. 여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안철수연구소 예산 삭감'이 정치권의 '안철수 죽이기'로 몰렸다. 이를 통과시킨 지경위 예산소위 위원장 조경태 민주당 의원과 김영환 지경위 위원장에게도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의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조 의원은 8일 급히 전체회의 재소집을 요구했다. 그는 "특정 인물에 대해서만 탄압하듯 비춰지는 게 국민들 눈에 공정하다고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특정인을 겨냥하는 듯한 예산 삭감은 부당하니 위원회에서 재논의해서 다시 집행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도 "1400억 원 예산 가운데 특정인과 기업에 대한 예산 삭감을 결정하는 건 국회의원의 (권력) 남용"이라며 "우리 위원회가 마치 특정 회사를 탄압하는 인상을 준다"고 재논의를 요청했다.

 

강 의원은 펄쩍 뛰었다. 이때 그는 "굉장히 당혹스럽다, 국회 역사상 예산 소위에서 의결하고 국회 지경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걸... 단 14억 원이다"라 말했다.  

 

강용석 "국회의원이 트위터에 쫄다니..."

 

'스케일 큰' 의원들에게는 "단 14억 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의원들은 예산안 내용에 대해 "잘 몰랐다"며 견해를 바꾼 스스로를 방어했다.

 

김 위원장은 8일, 재소집한 지경위 전체회의에서 "일일이 검토해야 하지만 예산이 방대하고 항목이 많아서 의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봐야 할 예산이 너무 많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해 이런 사단이 났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의무'인 예산심의 책무를 방기한 셈이다.

 

조 의원도 이 자리에서 "면밀히 살펴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 (지경위 예산소위) 소위원장으로서 유감스럽다,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 14억 원"은 안철수연구소에는 연구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는 '큰돈'이었다. 조 의원은 "예산이 삭감돼도 안철수연구소 연구가 차질 없이 진행된다고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안철수연구소의 연구를 방해하는 예산이라고 생각을 안 해 미처 이의 제기를 못했다"고 말했다.

 

한차례 여론 폭풍이 지나간 후 '다시 꼼꼼히' 살펴본 여야 의원들은 9일 뜻을 모아 '안철수 예산'은 그대로 배정하기로 결론 내렸다. 이런 논의를 매듭짓기 위한 전체회의가 열리기 전 강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20조 원 사업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통과시키면서 14억 원 예산 가지고 다시 한다는 게..."라며 "국회의원이 트위터에 '쫄아' 가지고 창피하지도 않아, 자기 욕 안 먹으려고..."라고 소리쳤다.

 

트위터에 '쫄아서' 일지라도, 국민의 혈세가 담긴 예산을 꼼꼼히 살펴 논의하고 처리한 것만큼은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지경위를 거친 예산안은 이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또 다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태그:#지경위 , #안철수 , #강용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