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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 당하중학교 교장입니다."
"아! 그러세요? 교장선생님!"
"세상에, 학교에 도착한 소포가 참 감동적입니다."
"애 아빠가 보낸 소포를 받아보셨군요!"

"필요한 친구에게 전달해 주세요"

교무실에 배달된 소포상자
 교무실에 배달된 소포상자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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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흔치 않은 일이라…. 감사하다는 말 전하려고 이렇게 전화 드렸어요."
"뭘요! 제 아이가 전학가고 바로 보냈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한 걸요."
"저희는 얼마나 고마운데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늦게라도 보내길 잘했네요."

"그럼요. 대한이, 거기서도 착하고 공부 열심히 잘 하죠?"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 성품 닮아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할 겁니다. 아무튼 꼭 필요한 친구에게 잘 전하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조대한 학생 어머니의 목소리가 맑다. 예전 당신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생각해서인지 반가움도 묻어있다. 조대한 학생 어머니는 졸지에 걸려온 내 전화에 당황했다며 말을 이어간다.

교복 물려주기 행사를 안내하는 인천당하중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교복 물려주기 행사를 안내하는 인천당하중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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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렇게 교장선생님께서 전화주실 줄 정말 몰랐어요. 쑥스럽기도 하네요. 어쩌다 우리 애가 다니던 당하중학교 누리집에 들어가 봤거든요. 공지사항에 교복 물려주기 행사를 벌인다는 글을 읽고서, 저도 우리 아이가 입었던 교복을 물려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물려주면 소중할 것 같아서요."

나도 대한이 어머니께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전화를 끊고서도 긴 여운이 남았다.

교무실에 날아든 뜬금없는 소포!

학교는 방학이다. 학기 중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아옹다옹 생활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요즈음은 너무 조용하다. 운동장에서 축구동아리 학생들이 공을 차며 떠드는 소리가 방학의 고요함을 깬다.

1월 16일, 출근하고 교무실에 들어서는데 두툼한 종이포장의 소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거, 무슨 소포죠?"
"글쎄요? 수신자가 우리 학교 교무실이네요! 교복이 들어있는 거 같은데요?"
"교복이라뇨?"
"교복업자가 신입생 교복 샘플을 보냈을까요?"

여러 선생님들이 수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보낸 사람과 주소, 전화번호가 분명하게 적혀있다. 아무리 봐도 교복을 납품하는 업자는 아닌 듯했다.

'받는 사람이 적혀있지 않은 소포에 교복이 들어있다?'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한 분이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포장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넣었다. 한참동안 통화한 선생님 표정이 환해졌다. 보낸 사람이 누구이며, 내용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소포가 우리 학교에 보내지게 됐는지 궁금증이 풀리며 소상하게 알게 됐단다.

소포를 보낸 주인공은 우리 학교에 다니다 갑작스레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학교로 전학 간 조대한 학생의 부모님이었다. 자녀가 재학 중에 입었던 옷가지를 보내온 것이다. 학교에서 꼭 필요한 학생에게 물려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냈단다. 한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학교를 옮긴지라 새옷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포장용지를 뜯어봤다. 무슨 보물이라도 들어 있는 것 같이 모두들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웬걸! 포장을 뜯고 내용물이 드러나자 저마다 한마디씩 하게 됐다.

"아니, 우리 학교 교표가 선명하게 새겨진 옷들이네요."
"정갈하게 세탁해 한 벌 한 벌 차곡차곡 갰어요."
"학생이 입고 생활했던 모든 옷가지가 들어 있어요."
"새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참 정갈해요."
"어머니 성품이 읽히네요!"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교복을 비롯한 여러 옷가지. 깨끗이 세탁이 되어 있었다.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교복을 비롯한 여러 옷가지. 깨끗이 세탁이 되어 있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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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상한 손길이 느껴졌다. 동복 저고리와 동복 바지, 하복 바지, 춘추복 셔츠, 하복 남방, 조끼 스웨터, 거기다 체육복까지! 체육복도 위아래, 여름 셔츠와 반바지가 들어 있었다. 바지와 셔츠, 남방은 모두 두 벌씩이었다. 자주 갈아입는 옷들을 넉넉히 보내주신 것 같다. 자녀가 우리 학교 재학 중에 입고 생활하던 옷가지들을 고스란히 보내주신 것이었다.

나는 조대한군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끝낸 뒤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대한군의 학교생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어머니도 자녀상담을 위해 몇 차례 학교를 방문했기 때문에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대한이는 정직하고, 매사 모범적이었다며 전학 간 학교에서도 잘 적응해 생활할 것이라고 했다.

나눔의 실천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흔히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져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나눔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연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선냄비에 작은 마음의 정성을 표한다. 또한 우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눔의 작은  실천을 느낄 수 있었다.
 나눔의 작은 실천을 느낄 수 있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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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네 가족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내게는 필요치 않지만 깨끗하고 성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것도 나눔의 좋은 실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좋은 본보기를 본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교복을 물려받은 주인공도 행복하겠지? 경제적인 것을 떠나, 보내준 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풀어놓은 옷가지를 다시 차곡차곡 개면서 선생님 한 분께서 내게 듣기 좋은 말씀을 건넸다.

"생각만 있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나눔, 그것을 실천하는 아름다움을 봤네요. 요즘 같이 학교가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데, 대한이네 가족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줬어요. 새 학기에는 우리 학교에 만날 이런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교장선생님, 그렇죠?"


태그:#인천당하중학교, #교복물려주기,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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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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