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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 식구가 생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지난해 말, 큰형님이 사위를 봤습니다. 제게는 조카 사위가 되는 셈입니다. 새로 생긴 식구라고 생각하니 기분 좋더라고요. 새로 교회에 나오는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학생이든 장년부나 노년부든 새 성도들에게는 더 마음이 갑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인 사람은 늘 새로운 관계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축(家畜)의 짐승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저희 집에는 진돗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10년을 공생했으니 이제 그만 처분하라고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새벽이가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새벽이가 있으므로 좀 든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마치 집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든든한 새벽이가 2월 6일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난해 11월 6일 날 짝을 지었으니까 꼭 90일 만에 출산의 수고를 한 것이 됩니다. 아침 먹이를 주기 위해 나간 아내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입술을 짓누르며 새벽이가 새끼를 낳고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집이 좀 좁은지 바깥에 흙을 다지고 새끼를 낳고 있는 새벽이가 과연 이번에는 몇 놈을 낳아줄까 기대되는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새벽이가 우리와 함께 살기는 새끼일 때부터니까 나이로 따지면 열 살이 조금 넘었을 것입니다. 그 연수가 되도록 새끼는 낳기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진돗개의 피를 많이 갖고 있어서 아무에게나 짝을 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저는 새벽이가 새벽이 그 자체로 좋은 것도 굳이 짝을 짓지 않은 이유가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새끼는 그가 낳을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홉 마리나 낳았으니까요.

바쁜 와중에도 새벽이 출산에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예배 끝나고 물어보니 세 마리를 낳았는데,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힘들 텐데 세 마리만 낳지, 그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면엔 솔직히 더 낳아 식구를 늘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예배 끝나고 할머니들과 학생들 수송까지 다 마친 뒤 상자 등으로 울타리를 쳐서 바람막이를 하는 등으로 추운 날씨를 이겨낼 조건을 어느 정도 마련해 주고 장거리 행차를 했습니다.

아산에서 목회하는 아는 목사님이 교회를 신축해서 헌당 예배를 드리는 날이어서 그곳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아산은 김천에서 왕복 다섯 시간은 족히 소요하는 먼 곳에 위해해 있습니다. 30여 명의 성도들이 15억 원이 소요된 예배당을 헌당하는 모습에 부러움과 경외의 마음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헌당 예배 참석 뒤, 보령에 있는 처제네 집을 들려 귀가하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집에 닿자마자 새벽이에게로 갔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온 아내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얼굴 표정을 지었습니다. 뽀얀 새끼 아홉 마리를 낳았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 한 마리가 태어마자 죽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그 새끼가 불쌍하다며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같은 동네 수민네 집 진돗개는 순종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씨를 주고 싶지 않다며 극도로 몸을 사립니다.

씨가 좋아 몇 번이나 애걸을 한 뒤 어렵게 짝짓기를 하게 된 것이 지난해 12월 6일이었습니다. 수민네 아빠는 짝짓기는 했지만 성공 여부는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새벽이를 넘겨줬습니다. 새벽이가 첫 번째 낳은 아홉 마리 새끼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고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데, 새벽이의 아홉 마리 새끼가 좋은 연결 고리가 된 것입니다.

아침 나절,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새벽이의 죽은 새끼를 좀 치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회용 비닐장갑까지 준비해주며 처리를 간청하는 것을 피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저도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다산의 터' 새벽이 집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아홉 마리의 새끼를 새벽이가 온 몸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죽은 새끼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어미의 배 한 복판, 가장 따뜻한 부위로 죽은 새끼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며시 그 새끼를 수습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반나절이 지난 시간임에도 죽은 새끼의 몸은 살아있는 새끼와 같이 따스했습니다. 새벽이의 새끼 사랑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물의 자식 사랑은 본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람을 생각합니다. 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다는 탄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어린 아이들과 동반 자살하는 어머니 뉴스가 귀청을 때립니다.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택한 길이겠지만 이런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죽은 새끼를 묻어주는 광경을 새벽이는 눈을 거두지 않고 쳐다봤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은 새벽이지만 남은 여덟 마리는 잘 길러 주기를 속으로 바랐습니다. 젖이 모자라 고생할 것 같습니다. 새벽이에게 특별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서 젖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새벽이의 새끼 사랑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태그:#진돗개 새벽이, #새끼 사랑,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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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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