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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씨에 맺힌 빗물방울 보다 더 많이 흘리는 게 농부들의 땀이다.
 인삼씨에 맺힌 빗물방울 보다 더 많이 흘리는 게 농부들의 땀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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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에서건 '최고, 최우수'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최고'가 된다는 건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이고, 아무에게라도 축하 받아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흙과 더불어 살다보니 이미 반쯤은 무위자연으로 살아가고 있는 농심은 그런 자랑과 축하조차도 쑥스러워합니다.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붙박이 친구,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를 대표하는 농부 이장이기도 한 노형렬(53)이 지난해 11월 20일, 충북인삼협동조합에서 시상하는 4년근 인삼 최다수확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충북인삼협동조합에 시상하는 최우수농민상은 충북에서 인삼 농사를 지으며 조합과 수매계약을 맺은 200여 인삼농가 중 수매결과가 최고로 우수한 농가를 선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단위 면적당 누가 얼마만큼을 생산했느냐가 선발 기준이었으니 최우수농민상을 받았다는 것은 같은 면적의 농토에서 최고로 많은 량의 농산물을 생산했다는 결과입니다.

최다수확부문 최우수상으로 받은 상패
 최다수확부문 최우수상으로 받은 상패
ⓒ 오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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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농사에도 최우수농민이 있을 거고, 다른 곡물 부분에도 최우수농민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농산물들은 봄에 씨를 뿌려서 가을에 수확을 하는 1년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인삼은 최소 4년쯤은 농사지어야만 수확을 할 수 있는 결실이니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100리 길이 넘는 거리를 머뭇거림 없이 완주해야만 자격이 되는 마라톤에서의 우승과도 같을 겁니다.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농부의 삶, 흙을 일굴 때는 흙이 되고, 물길을 터 줄때는 물이 되어야만 하는 농부의 삶에서 거둔 '최우수'였기에 더 없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했겠지만 수상사실조차도 겸연쩍어하며 감추고 있기에 친구를 대신해 자랑하고, 농심을 대신해 드러내고 싶어 글을 씁니다.

나이테가 있는 인삼, 짓는 걸 넘어선 키움

어떤 농작물도 다 농부의 손길과 땀으로 길러 낸 결실이지만 해가 묵어야만 생기는 나이테를 갖는 농산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너 번의 여름과 겨울을 지내야만 수확을 할 수 있는 인삼은 묵은 세월만큼의 나이테를 갖고 있습니다.

가리고 골라서 모은 인삼씨. 이 인삼씨가 앞으로 지을 4년 농사의 씨앗이다.
 가리고 골라서 모은 인삼씨. 이 인삼씨가 앞으로 지을 4년 농사의 씨앗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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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를 키우듯 1년을 티운 묘삼은 이렇듯 한 뿌리 한 뿌리씩 다시 이식된다.
 젖먹이를 키우듯 1년을 티운 묘삼은 이렇듯 한 뿌리 한 뿌리씩 다시 이식된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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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농사를 지으려면 제일먼저 인삼 농사에 적합한 땅을 잘 골라야 합니다. 버드나무가 도랑가처럼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고, 진달래가 돌투성이인 돌서덜에서 잘 자라지듯이 인삼 역시 지질과 환경에서 궁합이 잘 맞는 농토를 확보하는 것이 인삼농사의 토대가 됩니다.  

자가의 땅이건 임대건 간에 땅이 마련되면 모판을 만들고 씨를 뿌려서 묘삼을 키우는 것으로 4년 농사가 시작됩니다. 고르고 가려 놓았던 씨를 뿌려서 모를 틔우는 과정은 진자리 갈아 뉘고, 마른자리 골라 뉘는 어미의 마음입니다.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일조량과 거름기를 조절해가며 1년을 키워내면 도라지를 닮은 가느다란 묘삼이 됩니다. 이렇게 키운 묘삼을 삼밭으로 이식하는 건 젖 먹던 아이를 젖 떼는 이유기와 같습니다.

아가를 키우듯이 짓는 인삼농사

실뿌리 같은 묘삼을 밭으로 옮겨 심어서 키우는 나머지 농사 역시 갓난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때 맞춰 젖을 먹이듯 거름을 하고, 차낸 이불을 덮어 주듯 햇살을 가려주고, 예방주사를 맞추듯이 소독을 해가며 키워갑니다.

천막을 쳐주고 이불을 덥어주듯이 지붕을 씌운 인삼밭
 천막을 쳐주고 이불을 덥어주듯이 지붕을 씌운 인삼밭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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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빨갛게 영글어 가고 있는 인삼밭
 씨가 빨갛게 영글어 가고 있는 인삼밭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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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은 가려진 그늘에서 잘 자라고 있는 인삼
 반쯤은 가려진 그늘에서 잘 자라고 있는 인삼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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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씨가 빨갛게 영글어 가고 있는 인삼밭
 인삼씨가 빨갛게 영글어 가고 있는 인삼밭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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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면 인삼 대는 차츰 굵어지고, 잎사귀 또한 짙푸름으로 물들여 가니 인삼밭에서 자라나는 인삼은 포동포동하게 살쪄가며 쑥쑥 자라는 아가의 모습입니다. 아가가 잔기침을 하듯 콜록거리면 시럽을 먹이고, 소화불량이라도 걸린 듯 얼굴빛이 노래지면 아가의 배를 쓰다듬어 주듯이 인삼밭이 콜록거리고 노란해지면 시럽 같은 처방을 하고 배를 쓰다듬는 손길을 줍니다.     

아가가 하는 옹알이를 알아듣는 엄마처럼 귀 기울이고, 자라고 있는 인삼들이 이렇게 저렇게 드러내는 현상에 눈 떼지 않으며 일구월심이니 그렇게 키울 수 있을 겁니다. 대개의 농사는 짓는 것이라고 표현하지만 인삼 농사만큼은 짓는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니 여러 해를 키워야 하는 자식들처럼 키움의 결실입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하나도 없지만 인삼농사야 말로 4년이란 세월 동안 농부가 흘린 땀, 농부가 쏟아내는 관심의 바로미터입니다. 햇빛 짜랑짜랑한 여름엔 화상이라도 입을까 걱정하고, 얼음 꽁꽁 어는 한겨울이면 동상이라도 걸릴까를 걱정하며 지새우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키워내는 인고의 결실입니다.

농부의 땀과 정성을 먹고 자란 인삼
 농부의 땀과 정성을 먹고 자란 인삼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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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입김을 불어 주듯이 짓는 것이 농사입니다. 등 고랑이 흥건하도록 흘리는 땀, 온 몸이 뻐근해지는 고단함,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갈증은 농부가 자신을 짜내 농작물에 주는 자양분이며 사랑입니다.

그러고 보니 농작물이란 게 이렇듯 땀과 고단함 그리고 타오르는 갈증이 있어야만 제대로 영글어 가는 결실이니 참으로 잔인합니다. 어떤 생업 어느 직장인들 재미만 있고 녹록하기만한 곳이 있으련만 농사일은 노동강도 노동시간에서 더더욱 만만하지 않은 생업, 녹록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이미 주저리주저리 말했지만 인삼 농사는 땀과 시간만을 주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마음도 주고 정성도 주어야 합니다. 땅이 목말라 하면 같이 갈증을 느껴야 하고, 심어 놓은 인삼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해야 하는 마음, 신토불이 속 심물불이(心物不二, 농부의 마음과 농작물이 다르지 않음)를 전제로 하는 영험한 식물입니다.

최우수상 시상 장면
 최우수상 시상 장면
ⓒ 충북인삼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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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4년근 다수확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노형렬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이장이기도 하지만 붙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부다
 인삼 4년근 다수확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노형렬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이장이기도 하지만 붙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부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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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모양이 사람을 닮아있는 건 어쩜 4년이라는 세월 동안 농부가 그려 넣는 농심이며 농부들이 사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인삼 모양이 사람을 닮아 있는 건 4년 동안 흘린 농부의 땀방울에서 흡수한 농부의 모습입니다.    

생업으로 받은 상이라 더욱 자랑스러워

권모와 술수가 판치는 세상, 마을이장이라서 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뭔가를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인삼의 고장인 충북에서 생업이자 본분이라 할 인삼농사에서 4년을 농사지은 결과로 받은 다수확부문 최우수상이니 이것이야 말로 농부로서의 자긍심이자 농부 인생의 자랑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도 언땅과 밭에서 자라고 있는 인삼은 물론 또 다른 씨앗들이 재채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를 살피며 붙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은리 이장, 농부 노형렬은 4년 후가 아닌 40년 후에는 인생의 또 다른 결실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농부 노형렬이 짓는 싱싱한 농산물 중 일부는 직거래를 통해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숲이랑사오랑(http://saorang.invil.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태그:#노형렬, #충북인삼협동조합, #사오랑, #숲이랑사오랑,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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