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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해를 품은 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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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청률 40%를 넘으며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라선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마지막 2회분의 방영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결방이 결정됐다. 추악했던 음모의 진상을 알아차리고 단죄를 시작하려는 훤과 그런 훤을 막고자 양명군을 움직여 역모를 꾀하려는 영의정의 치열한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질 드라마의 대미를, 결국 이번 주엔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여느 드라마가 방영 중간에 이런 식으로 전파를 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출연배우의 사고다. 주연배우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촬영 도중 부상을 입는다거나 하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촬영을 하지 못하고, 여유 비축분이 없는 생방송 제작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드라마는 결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날씨다. 장마철이나 혹한기에도 드라마는 끊임없이 방영되고 따라서 촬영도 쉴 수 없다. 그런데 실내 세트촬영이 아닌 야외촬영에서 날씨는 굉장히 큰 변수로 작용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면 촬영은 중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야외촬영이 많은 사극의 경우 날씨에 더욱 민감하다.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의 결방은 주연배우의 사고 때문도, 날씨 때문도 아니다. 드라마의 불방 원인은 바로 파업. <해를 품은 달>의 연출을 맡은 김도훈 PD를 비롯한 촬영 현장 제작진들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제작이 '올스톱'된 것이다.

MBC 김재철 사장 때문에...<해품달> 등 드라마마저 결방

지난 1월 30일 시작된 MBC 노동조합의 파업은 방송의 공영성 회복과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목표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파업에 앞서 MBC 보도국 소속 기자들이 제작 거부를 선언하면서 뉴스 파행이 시작됐고, 그것이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MBC 방송 프로그램 대부분이 흔들렸다.

교양국 PD들의 파업 동참으로 당장 파업 다음날부터 <PD수첩>과 <남극의 눈물> 등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결방됐고, 일선 예능 PD들 또한 방송 제작에서 손을 놓으면서 MBC의 예능프로들이 뿌리째 흔들렸다. <무한도전>은 5주째 결방되고 있고, <위대한 탄생2>는 중요한 생방송 미션을 목전에 두고 결방되어야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3>를 비롯한 MBC의 간판 예능프로들은 대부분 결방되거나 대체 편성됐다.

다급한 사측이 대체 인력을 투입해 현재 <무한도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능프로들이 정상 방송되고 있지만 대체 인력이 단기간에 만들어내는 방송이 어디 제대로 된 것일 수 있을까. 그 수준이 전보다 훨씬 떨어지는 탓에 시청률은 거의 반토막이 났고, 시청자들의 원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무한도전>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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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MBC가 초토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드라마 왕국' MBC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만큼은 파행을 겪지 않고 꾸준히 전파를 타왔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드라마 PD들이 지금까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PD들은 왜 지금까지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꿋꿋하게 현장을 지켜왔던 것일까? 그들에겐 무너져가는 '공영방송' MBC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드라마라는 프로그램의 특수성에 있었다.

매일, 혹은 매회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방송되고 회 간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뉴스와 교양프로, 예능프로와는 달리 드라마는 첫 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어제 내용과 오늘 내용, 지난주 내용과 이번 주 내용이 긴밀한 연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파업으로 인해 중간에 공백기가 생기면 맥이 뚝 끊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끊어진 맥은 방송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긴 호흡을 갖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씩 이어지는 예능 프로와 달리 드라마는 주중 미니시리즈의 경우 8주면 끝이 날 정도로 방송 주기가 짧다. 다시 말해 한 해 방송될 드라마의 편성이 연초에 결정되면, 각각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자신들 드라마의 방영 시기에 맞춰 준비에 들어간다.

이런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매끄럽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하나의 톱니가 튀어버리면 그 여파는 다른 톱니들로 줄줄이 이어지게 된다. 드라마 하나가 파업으로 뭉개져 버리면 그 여파는 제작이 준비되어 있는 다른 드라마들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를 위해 스케쥴을 조율하고 비워놓은 수많은 연기자를 비롯해 손해와 피해를 입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게 되고, 무엇보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드라마PD들은 파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난 1월 30일, 공교롭게도 파업이 시작된 날 제작발표회를 가진 MBC 주말드라마 <무신>의 김진민 PD가 파업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래 전부터 해온 약속"이라며 "드라마는 나와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드라마 PD들이 결방을 불사하면서까지 파업에 동참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추측된다. 하나는 현재의 파업이 그 어느 때의 파업보다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무탈하게 방송이 되고 있으면서 시청률까지 고공행진하는 드라마를 자신들의 책임회피용으로 '언론플레이'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과 사측의 행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이 두 가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파업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사태는 조금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일선 PD들뿐만 아니라 보직을 맡고 있는 부국장, 부장 등의 간부들도 속속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예능국 보직 PD들까지 나서 김재철 사장에게 사태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아전인수' 김재철 사장, 시청자들의 분노는 안 보이나

그러나 김재철 사장과 MBC 경영진은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나날이 강경대응하며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박성호 기자회장에 이어 지난 5일에는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이 해고됐고,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한 최일구, 김세용 앵커는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여기에 노조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제기한 상황.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 대신 강경대응 일변도인 사측의 태도에 결국 드라마 PD들은 총회를 열어 장시간 논의했고, 파업 동참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배임 혐의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MBC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확인 결과 김 사장이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 목적을 위해 쓴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며 "김 사장은 지난 20120년 취임 이후 2년 동안 법인카드로 무려 6억9천만 원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배임 혐의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MBC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확인 결과 김 사장이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 목적을 위해 쓴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며 "김 사장은 지난 20120년 취임 이후 2년 동안 법인카드로 무려 6억9천만 원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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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김재철 사장과 사측이 <해를 품은 달>을 비롯해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들을 이용해 마치 MBC가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듯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도 한몫 거들었다.

김재철 사장은 파업이 시작된 1월 30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최근에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35.3%의 시청률로 방송사를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고, 이후 확대간부회의 등에서도 드라마들의 높은 시청률을 언급해왔다. 여기에 사측은 한술 더 떠 지난 2월 6일 13개 일간지 1면에 실린 광고에서 시청률 40%를 넘긴 <해를 품은 달>을 언급하며 MBC를 '국민들이 1위로 선택한 방송사'로 추켜세우며 노조의 김재철 사장 퇴진 요구를 비판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한 일을 뒤돌아보지 못하고 아전인수격 해석과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과 사측의 행태에 MBC의 공정성 회복을 바라며 끝까지 현장을 지켰던 드라마 PD들이 더는 참지 못한 것이다.

이제 모두가 나왔다. 지난 2010년 파업 때도 참가하지 않았던 드라마 PD들마저 현장에 나서게 할 만큼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힘차게 나아가던 드라마는 절정에서 멈췄다. 빗발치는 비난과 집중포화를 시청률 40%의 드라마 뒤에 숨어 그간 요리조리 잘 피해왔던 김재철 사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무한도전> 결방에 대한 시청자의 분노도 모자라 <해를 품은 달> 팬들의 원성까지 살 지경에 처했다.

김 사장님, 이젠 무엇으로 언론플레이 하시렵니까?


태그:#김재철, #해를품은달, #파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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