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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관료제가 계산이 불가능한 감정적인 요소, 즉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미움과 같은 감정들을 배제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여 탈인간화될수록 더욱 발전한다고 했다. 이러한 점은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도구적 이성의 극단이 관료제임을 생각하게 한다. 합리화의 역설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합리성을 구현할수록 비합리적이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이성이 실질적인 이성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인간을 해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베버가 관료제는 하나의 기계라고 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 부합한다. 기계는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일 뿐 그것 자체에는 인간이 고민하는 근원적인 가치 예컨대 사랑이라든지 포용, 배려와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인간도 그러한 기계구조 안에 있으면 부속품처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도구화된 이성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형국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들은 분업의 논리에  따라 명확하게 업무가 나뉘어져 있다. 또한 계층에 따라 지위와 권한이 할당되어 있다. 자신의 업무와 통제권이 명확하게 한계 지워져 있기 때문에 처리하거나 관장할 수 있는 점이 제한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기획, 집행, 처리되는지 총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부분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일이 어떤 의미를 지녔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즉 책임을 지지 않아야 할 것은 개의치 않아도 된다.

이러한 점은 관료제의 비인간적인 점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도출되는 것이다. 관료제가 내부 구성원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외부에 하는 일도 비안간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논지가 맞는 점이 있기는 한데 지나치게 내부 구성원들을 기계부속품으로 여긴 것은 오히려 편향일수 있다.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이다. 특히 자신의 지위 상승과 권한의 확보를 위해서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이며 누구보다 정보와 제도를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거나 역학을 활용한다. 즉 스스로 영혼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점은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료나 공무원들의 행태에서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업무와 부서의 자료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또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지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충성경쟁을 보이거나 자발적 복종을 통한 공적 세우기가 그렇다.

그러한 행태가 원하는 것은 승진과 영전이다. 예컨대, 사찰이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일정한 공적을 세워 그것을 통해 향후 출세가도를 달리려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불법뒷조사같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보다는 이에 적극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스스로 영혼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임에도 겉으로는 사회적 국가적 명분을 둘러대거나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는 대의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를 파괴한다. 사랑과 정의를 옹호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는 존재인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정말 단절되어야 하는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제도와 조직을 사유화하여 이용하는 이들의 반복 되는 행태이다.

그러한 사유화 활용자들은 기계나 부속품이 아니고 가장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소시오패스라고 부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항상 특정 정권의 탓이라고만 할수록 그러한 관료제들의 병폐는 썩어 들어가면서 승계되어 오늘에 이르고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한국인 특유의 출세주의 문화도 한몫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것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헌식 기자는 문화평론가입니다.



태그:#사찰, #관료제,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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