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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남국의 여인 크리스티나 라홈(여·42·Christina C. Lajom) 씨,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의 너른 들판에서 만난 그녀는 야구 모자를 눌러썼지만 이미 검게 탄 얼굴이었고 두 발에 신고 있는 목이 긴 장화는 진흙투성이였다. 그래도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열매 수확하는 기쁨 때문에 힘든지 몰라

"농사, 힘들죠. 하지만 정성들여 가꾸고 나면 열매가 맺혀 수확할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껴요."

그녀가 작업하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오이가 탐스럽게 열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닐하우스로 오이를 비롯해 토마토, 대파 등의 밭작물과 벼농사를 대규모 경작하는 대농이다. 그래서 요즘 농번기를 맞아 남편은 모내기로 바쁘고 그녀는 매일 오이 비닐하우스에서 하루종일 살고 있었다.

필리핀 출신의 크리스티나 씨는 어엿한 농장주 부인으로서 비닐 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다. 태국 출신의 근로자들과 함께 매일 출하할 오이를 따고 가꾼다.
▲ 부지런한 농장주 마님 필리핀 출신의 크리스티나 씨는 어엿한 농장주 부인으로서 비닐 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다. 태국 출신의 근로자들과 함께 매일 출하할 오이를 따고 가꾼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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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이가 제철을 맞아 매일 아침마다 상품이 될 만한 열매는 따서 출하해야만 한다. 농장일은 남편과 둘이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의 손을 빌려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국 출신으로 고용노동부에 고용신청을 해서 채용한 근로자들이었다.

"아침에 9시까지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비닐하우스에 나와요. 저분들은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저도 같이 일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일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엿한 농장주 마님으로서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태국 일꾼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녀가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일을 시킨다. 다행히 두 사람은 매우 성실하다고 대견해 했다.

6남매 중 3남매 한국과 인연

이제 한국생활 14년째, 그녀는 처녀시절 고국 필리핀에서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향은 수도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업도시였다. 그녀는 일찍부터 주경야독을 했다. 낮에는 공장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야간 중·고등학교를 차례로 다녔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투병하면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아버지가 20년간 드러누워 지내셨어요. 4년 전 나이 60에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병 수발 하신다고 오랫동안 고생 많이 하셨죠."

이제 홀로서기를 하며 한결 어깨가 가벼워진 친정어머니를 뒤늦게 초청했다. 다음 달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시는 것이다. 한국의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친정어머니는 모르신다며 크리스티나는 웃었다.

"제가 친정에 전화하면서 (비닐)하우스 일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어머니는 하우스가 뭔지 몰라요. 필리핀에는 사시사철 더운 날씨니까 하우스가 필요 없잖아요."

한국에는 여동생이 또 하나 와 있다. 가까운 오산에 살고 있는 동생은 한국생활 경력이 언니 크리스티나보다 6년 더 많은 20년이다. 사실 크리스티나가 한국과 인연이 된 것도 먼저 시집을 간 동생 때문이었다. 동생의 부추김을 받고 한국에 들어와 2년간 송탄공단에서 일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한때 막내 남동생도 한국에 고용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로 들어와 5년간 산업체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6남매 중 3남매가 이렇듯 한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몇 해 전 고용허가기간이 만료된 남동생은 요즘도 관광비자로 드나들며 누나들 집에서 신세를 지고 놀다가 필리핀으로 돌아가곤 한다고.

"필리핀에서는 일할 데가 없어요. 직장에 다녀도 임금이 싸죠. 보통 근로자 월급이 5천 페소 정도예요. 한국 돈으로 12만 원 정도 되는데, 여기서 일하면 100만 원 내지 120만 원 벌 수 있으니까 엄청난 돈이죠."

다문화 정책에 대해 기대하기도

크리스티나는 아직도 어렵기만 한 필리핀에 비해 한국의 경제적인 상황이 너무 좋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래서 한겨울 추위도 힘든 농사일도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다 좋아요! 괜찮아요!"라는 간단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자신보다 8살 연상의 남편은 뒤늦게 결혼한 후 너무 행복해 한다. 두 아들도 얻었는데 지금 초등학교 3학년과 2학년에 다니고 있다.

"평택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교사가 방문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저한테도 한글을 가르쳐줬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요리도 가르쳐주더군요."

농사일로 항상 바쁜 그녀로서는 집까지 찾아와주는 방문 교사들이 고맙기만 했다. 물론 평택시의 지원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무료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필리핀 동포 이자스민씨가 당선된 데 대해서 그녀는 무척 기뻐하며 큰 기대를 걸었다.

"앞으로 우리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제 한 번 국회에 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이자스민 의원을 꼭 만나고 싶어요."

필리핀의 정치에 대해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관심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로지 그녀는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평택시사신문 게재



태그:#다문화, #크리스티나,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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