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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지난 20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에서 개최한 '블루터치 인권문화 콘서트'에 참여한 정신장애인들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정신장애'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이 행사의 한 꼭지인 연극에 작가 겸 조연출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처음 정신장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떠올렸다. 물론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다운증후군처럼 생김새가 조금 다른 사람이나, 최근 몇몇 드라마에서 등장했듯이 나이는 많은데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정신장애라는 것은 내가 떠올렸던, 그나마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정신지체 장애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정신장애는 오히려 '정신질환'과 가까운 말이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 환청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고 그 원인이나 정도의 차이 또한 다양하다. 이것은 유전 경향성이 있을 뿐 반드시 유전병이 아니며 약물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특별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 아닐뿐더러 보건복지부 산하 정신질환 전문 병원인 국립서울병원에 따르면 평생 10명 중 3명은 정신질환에 걸린다고 한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와 함께 정신 장애인 당사자들과의 사전 미팅에 참석하기로 한 날, 나는 솔직히 조금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미팅 전에 정신장애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했고, 어느 정도 편견을 없앴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정신장애 당사자를 만난다고 하니 약간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5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신 장애인'이라는 이름표 때문에 그들의 행동과, 심지어는 생각에 까지도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보다 그에 대한 주위의 편견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인권침해에 더욱 고통 받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들로는 심한 경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시설에 감금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 병 때문에 취업이나 연애·결혼 등의 개인적인 삶이 자유롭지 못한 것, 지능이 낮거나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 주위에서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증상이라 생각하며 자연스러운 연애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박탈시킨다는 점 등이 있었다. 미팅에서 만난 한 분은 실제로, 자신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교제 중이던 여자 분에게 말했다가, 주위의 반대로 헤어졌다고 한다. 취업과 관련해서도 다른 신체장애인들에 비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눈에 띄게 부족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9년에 캐나다 이민난민위원회에서, 한국인 정신질환 당사자 여성과 그녀의 딸에게 한국에서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한 것이 인정돼 난민 지위가 부여됐다는 것이었다. 벤쿠버 난민위에서는 "한국에선 정신질환자의 입원이 불법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거나 퇴원 거부와 의료기록 조작이 자행되고 있으며, 외부와의 서신이 차단되고 때때로 폭력마저 행사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의 딸은 어머니의 입원 중 "국가 보호 하에 있었으나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아무도 어머니 오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아 정신적인 고통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에 인권 침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받아 들였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에서 정신질환자의 실상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였다.(관련기사 2009년 6월 21일 치 <경향신문> 캐나다 정부 "한국, 정실질환자 박해하는 나라")

욕망을 드러내는 것... 주저하지 말자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개최한 블루터치 인권문화 콘서트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다룬 연극 <세친구>가 공연됐다.
▲ 블루터치 인권문화 콘서트 중 연극 <세친구>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개최한 블루터치 인권문화 콘서트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다룬 연극 <세친구>가 공연됐다.
ⓒ 박애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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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는 장애 당사자들이 우리 옆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반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의 흉내를 내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의 실제 모습을 왜곡할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구체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이러한 아픔과, 정신장애인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겪는 아픔에 중요한 접점이 있다.

'주변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장벽은 모든 사람들을 때때로 큰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국의 수많은 중졸자, 고졸자와 재수생 및 백수, 그리고 소위 '지잡대생'(지방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을 의미)들은 인생의 실패자라도 된 것인마냥 주위의 걱정을 사기 일쑤고, 나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미혼 여성들을 문제가 있는 여자 혹은 히스테릭한 여자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연출가와 나는 이런 포인트를 가지고 세 인물을 설정했다. 정신장애 당사자와 그 친구 둘이다. 그 들은 중학교 시절 친구였지만, 그 중 한 명(한나)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헤어졌고, 다른 한 명(명하)과 장애 당사자 친구(희선)는 고등학교를 함께 진학한다. 희선은 고등학교 시절 정신질환이 발병하여 학교를 그만 둔다.

연극에서는 옆에서 발병 이후의 모습을 지켜본 친구(명하)와 발병 이전의 기억만을 간직한 친구(한나) 그 둘만이 무대에 등장하여 희선이와 있었던 추억, 그리고 희선이의 병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정신장애인의 상황을 인정하고, 우리와 다른 점을 인정해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점(한나)과 세상의 벽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겪는 일이라는 관점(명하)이 대립한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 희선이가 그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에 공감하고, 다른 모든 친구들이 그러하듯, 다음에 만나면 함께 할 일들을 신나게 떠올리며 막이 내린다. 제목은 <세 친구>라 정했다.

그들의 의지... 꺾여서는 안 된다

연극에서도 그랬듯이 저 두 가지 관점의 대립은 나 역시 결론짓지 못했다. 굳이 매듭을 짓자면 두 가지 관점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세상의 속도는 일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지기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새로운 일을 하는 것,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도전 의지를 꺾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과 사회적 인식의 제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장애인의 인권문제를 매우 막연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여성 인권이나 노동자 인권 문제와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피부로 느끼는 것들이었지만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이들을 둘러싼 구체적인 인권 문제들에 접근하면서, 정신장애인의 인권, 나아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제2의 성>의 저자 시몬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장애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반사람들과 어느 부분이 다르다는 그 원천적인 의미의 '장애'는 그저 하나의 차이일 뿐이며, 오히려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일반인 중심의 세계들, 사물들, 관점들을 통해 '장애'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시 정신보건센터의 이러한 행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난민 판정까지 받게 한 비인권적 실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정신 장애인들의 삶이 더욱 나아지길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라는 이름표를 달아 고생스러운 모든 이들의 삶이 적어도 그 이름표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희망한다. 나 또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미팅 자리에서 만났던 정신장애 당사자 중에 또래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그 아이의 눈에서는 정말 총명한 빛이 났다. 우리의 대본에 대한 건설적인 피드백을 줬고, 자신의 생각과 어려움을 솔직하고 풍부한 언어를 통해 정확하게 전달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지금 그 발전 과정에 있고, 꼭 자신을 차별했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마치 하늘을 나는 새 같다고. 닭처럼 날지 못하게 되거나 날개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태그:#블루터치, #서울시정신보건센터, #인권문화콘서트, #BLU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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