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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8월 4일 오후 3시]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을 둘러보고, '무섬골동반'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인근의 '문수역(文殊驛)'으로 갔다. 중앙선의 작은 기차역인 문수역을 찾은 이유는 최근 내성천을 막고 공사를 하고 있는 '영주댐'이 완공되면 문수역이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간이역이다
▲ 영주시 문수역 작은 간이역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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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수몰예정인 인근의 평은역은 이전되고, 이곳 문수역은 역은 그대로 두고 철로는 상당부분 이설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수몰 예정역이라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착오로 갑작스럽게 방문한 문수역이었지만, 1941년 7월 중앙선 개통과 함께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곳으로 70년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역 내 외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70년 된 간이역
▲ 영주시 문수역 70년 된 간이역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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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6월부터는 여객열차가 정차하지는 않지만, 화물열차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골 작은 간이역의 운치와 맛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역을 살펴본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영주시내로 향했다.

영주시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가흥동 암각화(可興洞 岩刻畵)'를 보기 위해서 인근에 차를 세웠다. 가흥동 암각화는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바위그림으로 영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유물로 경북유형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에 직접 바위에 쪼아 새긴 작품이다. 바위의 크기는 높이 1~1.5m, 너비 4.5m이다. 3~5개의 횡선으로 연결시킨 것으로 모양과 기본형이 같은 그림이다. 마치 상하가 넓어지고 가운데가 좁아지는 돌칼(石劒)의 손잡이 모양 같기도 하고, 사다리꼴을 연상하게도 한다. 어떻게 보면 꽃게처럼도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보물이다
▲ 영주시 선사시대 암각화 청동기시대의 보물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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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양은 긴 네모꼴의 바위 수직면을 따라 옆으로 단독 또는 연속하여 11개가 새겨져 있다. 새기는 방법은 선을 쪼아서 굵은 선으로 표현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와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암각화의 내용은 아직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난 개인적으로는 이곳을 보는 것으로 영주관광을 시작하는 것이 현존하는 영주 역사의 처음을 보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면 처음에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부석사, 소수서원도 중요하지만, 영주역사의 시작을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암각화 바로 10m 옆 상단의 바위에 있는 보물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는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可興洞 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도 주목해서 봐야할 유적이다.  

본존불은 상당히 큼직한 체구로 장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큼직한 코,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서 불상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가슴은 당당하고 양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옷은 장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긴 광배와 높게 돋을 새긴 연꽃무늬의 대좌(臺座)등은 장중한 불상의 특징과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가흥동 마애삼존불
▲ 영주시 마애삼존불 가흥동 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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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이다. 가슴이 넓으며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은 배에 대었는데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보살상은 왼쪽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 등이 다를 뿐이다.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원래 삼존상만 있던 이곳에는 지난 2003년 6월 폭우로 그동안 바위 속에 숨어 있던 여래좌상이 추가로 발견되어 현재는 삼존불 옆에 작은 여래좌상이 하나 더 있는 형태가 되었다.

사실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방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눈 부위의 돌을 갈아서 마시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치성을 드리는 사람보다는 돌가루를 얻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곳이다.

이후 인근에 공장과 아파트 공사 등으로 난개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어쩌면 지난 2003년 폭우로 새로운 여래좌상이 발견된 다음부터 현존하는 몇 안 되는 통일신라시대 마애불로 조명을 받았다. 이에 안내판과 외부에 펜스를 설치하여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정도로 유지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측면이 많다. 마애불도 문제지만, 특히 하단부에 위치한 선사시대 암각화의 경우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낮은 위치에 있어 훼손이 심하다. 이제는 그 내용과 모양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태로 별도의 보존방안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는 것이 지역민들과 학계의 의견이다.     

서천이 바라다 보이는 좋은 터에 자리 잡고 있는 영주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들을 둘러 본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인근 구학공원에 있는 삼판서 고택으로 갔다. 서천 건너편에 버스를 세운 관계로 차에서 내려 서천을 가로 지르는 폭포를 건너야 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 여름이면 친구들과 자주 수영(?), 아니 목욕을 했다. 바위산의 허리를 잘라 새롭게 물길을 돌린 곳이라 바위를 타고 흘러가는 폭포가 장관이었다.

이곳에서 자주 목욕을 했다
▲ 서천의 폭포 이곳에서 자주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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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개울에 바위가 많아 중간 중간의 소(沼)에서 물장난을 하기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매년 사망사고가 나기도 하여 늘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놀던 기억이 난다. 지난 10여 년 전 대대적으로 하천정비 공사를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물놀이를 하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 보니 약간 위험해 보이긴 하다.

정도전의 고향집이다.
▲ 삼판서 고택 정도전의 고향집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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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천을 건넌 우리들은 구학공원에 올라 '삼판서 고택'을 둘러보았다. 삼판서 고택은 지난 1961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총 사업비 13억 원을 투입하여 본채 157㎡의 입구(口)자형 와가형태의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전통한옥이다.

영주시 구학공원
▲ 삼판서 고택 영주시 구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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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고려 말 형부상서 정운경(정도전의 아버지), 고려 말 공조전서 황유정(정운경의 사위), 조선 초 이조판서 김담(황유정의 외손자) 3명의 판서를 배출한 영주지역 대표 선비가옥이다. 여기에 조선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 선생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내는 등 상당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3대를 이은 판서의 집
▲ 삼판서 고택 3대를 이은 판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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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서 고택은 아들이 아니라 연속하여 딸들에게 상속된 집으로 고려 말, 조선 초까지 상속이 남녀모두에게 평등하게 이루어졌던 사실과 삼봉 정도전이 살았던 집이라는 연유로 영주의 선비정신과도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고택이 복원되기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고택에 살던 '선성(예안)김씨 무송헌 김담(宣城金氏 撫松軒 金淡)'의 후손들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무섬마을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19대 종손 김광호(金光昊)씨를 종택에 모시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주의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 삼판서 고택 영주의 대표적인 명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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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야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관리인이 살거나 수시로 오가며 유지보수와 청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인의식이 있는 종손이 들어와 살면서 손님도 맞고, 종가의 모습을 외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조선시대 의료기관, 요즘의 보건소 같은 곳이다
▲ 제민루 조선시대 의료기관, 요즘의 보건소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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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원래 인근 구성산성 기슭에 있던 삼판서 고택은 고택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의료기관인 '제민루(濟民樓)'와 함께 지난 1961년 홍수로 붕괴되었다가 위치를 옮겨 구학공원에 복원된 것이다.


태그:#영주시 , #삼판서 고택, #가흥동 선사시대 암각화 ,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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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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