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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and에서 펀 파크까지

청남대의 정크아트 박물관
 청남대의 정크아트 박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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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가 정크아트를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그리고 그의 정크아트가 대중에게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춘천과 서울이다. 그 후 그는 전국 축제의 단골 초대작가가 되었다. 작품제작 10년만인 2009년 그는 자신이 축제조형물 제작자로 전락해 가는 것을 발견하고, 정크아트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정크아트에서 중요한 것은 전시가 아니고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09년 이처럼 생각의 전환을 가능케 한 것은 청남대 정크아트 예술체험학교다. 당시 정크아트 예술체험학교는 박물관, 체험학습관, 작품공원, 동화나라, 영상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게 그는 운명적으로 충북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충청북도의 적극적인 지원, ㈜정크아트의 의욕적인 기획활동, 오대호 작가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열정이 합쳐져 정크아트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J-Land 조감도
 J-Land 조감도
ⓒ (주)정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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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2009년 보은군의 소도읍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정크아트 박물관 J-Land다. 소도읍인 보은에 문화예술의 명소를 만든다는 게 핵심의제다. 그를 통해 속리산 지역을 찾는 관광객을 늘리고, 그들에게 예술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보은군에서는 보은읍 길상리 일원 57,542㎡ 부지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설을 지원한다. ㈜정크아트는 이것을 운영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지역에 환원한다.

사업은 2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공사를 통해 정크아트 갤러리를 만든다. 1단계에서는 엔터테인먼트와 오감만족이 중시된다. 현재 1단계 사업은 마무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름도 STEAM(정열, 증기)을 강조하는 펀 파크(Fun Park)로 바뀌었다. Junk(쓰레기, 고물)와 Joy(기쁨, 환희)를 뜻하는 J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뜻하는 Fun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STEAM이란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제조), Art(예술), Math(수학)을 말한다.

펭귄타워 조감도
 펭귄타워 조감도
ⓒ (주)정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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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사업이 진행되는 2012년부터는 Education(교육)과 Eco(환경)가 중시된다. 이 사업의 핵심은 펭귄타워에 만들어지는 수학 및 환경체험관이다. 수학에서는 수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을 전시하고 체험을 통해 수학의 기본원리를 터득하도록 할 예정이다. 환경에서는 지구와 자연의 문제를 다룬다. 재생과 재활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자연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정크아트 자체가 쓰레기와 고물을 이용하여 예술을 만드는 것이니, 바로 재생(Recycling)의 모범을 보여주는 셈이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 작업방식은 만들기다.

오대호의 정크아트에서는 위에 언급한 STEAM의 다섯 가지 분야 중 TEA가 핵심이다. 만들어내는 기술, 제작에 들이는 공력,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예술성. 그는 대학에서 기계와 조소 두 가지를 전공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술과 예술을 결합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술이고 예술이고 만들기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업실의 오대호
 작업실의 오대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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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달로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세상. 그 속에 버려진 무수한 산업폐기물들. 주체하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각종 생활용 폐품들. 멀쩡한 물건들이 아깝다는 생각에 눈에 띄는 대로 주어다 무엇이든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토바이 기름통이 동화 속 걸리버가 되고 고기 굽는 석쇠가 거북이 등짝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물들이 토끼와 자라, 개미와 베짱이, 신데렐라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버려져 나뒹굴던 폐품들이 나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 조각가, 화가 모두 수작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오대호는 말한다. 손작업의 중요성은 이미 모더니즘 시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언급한 사실이다. 1919년에 독일 바이마르에서 문을 연 종합예술학교 바우하우스는 조형과 기능, 예술과 기술 양면의 재능을 키워주는 교육기관으로 만들어졌다. 바우하우스는 공방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생산업체로서의 기능도 수행했다.

오대호는 바우하우스 정신을 통해 예술과 기술 그리고 엔지니어링의 결합을 배웠다. 오대호는 현재도 이런 바우하우스 정신에 충실하다. 정크에서 출발, 엔지니어링 기술을 가미, 예술로 승화시킨다. 이것이 그의 생산과정이라면, 펀 파크에서는 소비과정을 겪는다. 오대호의 정크아트를 보고 듣고 느낀 사람이 즐거움과 가르침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크가 30이라면 기술과 예술이 70이다.

오대호의 작업실
 오대호의 작업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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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는 삼십과 칠십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작품에서 재료인 정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라면, 만드는 기술과 그를 통해 나타나는 예술성이 70%라고. 보통사람들 같으면 소재인 정크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정크아트가 있어 소재구입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소재의 특성과 성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업에도 어려움이 없다.

정크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땜질이다. 재질이 같은 소재를 연결하고 붙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다른 소재를 연결하는 일은 보통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대호는 이러한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다. 옛날에는 돌을 떡 주무르듯 한다고 했는데, 오대호는 쇠, 돌, 플라스틱, 고무를 떡 주무르듯 한다. 한 마디로 그의 작품에는 틈이 없다. 그리고 흔들거림이 없다. 하중과 균형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자에게서 어쩜 저런 상상력과 철학이... 

<걸리버여행기>의 소인국 이야기
 <걸리버여행기>의 소인국 이야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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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대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의 풍부한 상상력 때문이다. 기술자인 그에게는 인문학적 소양 또한 풍부하다. 그의 정크아트에는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현재와 미래가 표현되어 있다. 문학에서 그가 가장 선호하는 분야는 동화의 세계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들어 있고,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오며, <걸리버 여행기>의 내용이 다뤄진다. 인당수의 제물로 팔려가는<심청이>가 있고, 오줌싸개 이야기가 나온다.

오대호는 자신의 상상력과 철학을, 작품을 통해 한껏 외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면, '내 안에 있는 너, 세상을 향하여 나팔을 불어라'다. 그래서인지 그는 또 E.T. 같은 영화 캐릭터를 통해 어린이의 환상과 꿈을 키워준다. 그의 상상력은 이 세상을 넘어 우주를 향한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천당, 천국, 아니면 극락일까?

키네틱 아트 작품 '돌고래'
 키네틱 아트 작품 '돌고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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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호의 상상력은 현재 키네틱 아트에까지 가 있다. 정크를 이용해 움직이는 예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돌고래이다. 돌고래를 6등분하고 그것을 동력장치와 연결,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전원을 넣으면 돌고래의 몸뚱이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키네틱 아트의 변형이다. 작가는 이 돌고래에 스피커를 달아 소리까지 내는 예술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오디오 키네틱 아트가 된다. 오대호 작가의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다.

그럼 그의 철학은? 그는 말한다. 모든 종교는 처음에 사이비였고, 모든 예술은 처음에 이단이고 반역이었다고. 백남준도 처음에는 언더그라운드였음을 강조한다. 자신도 아직 음지에 있지만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고, 예술계의 한 축을 형성할 것이라고. 비디오아트처럼 정크아트도 예술계의 주류가 될 날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직 보물을 몰라보는 이유는?

봉황과 흑룡
 봉황과 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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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 파크의 기반시설 구축, 갤러리와 체험관 건축을 주도한 정상혁 보은군수를 6월 27일 저녁 만났다. 내가 대뜸 '보은 사람들이 보물을 몰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 보물을 알리는데 우리가 주력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잘 알지만, 정크 아티스트 오대호는 모른다. 그 점이 안타깝다. 나는 오대호를 늘 백남준에 견준다. 그것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 뛰어나고, 훌륭한 예술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점에서 오대호와 백남준이 유사한가? 첫째 백남준이나 오대호 모두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땜장이다. 둘째 그들의 작업이 3D업종이라는 점에서 같다. 해체하고 자르고 붙이고 만들고 하는 작업이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dangerous)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의 예술 활동이 일종의 미친 짓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업실에 앉아 작업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넷째 그들이 펼치는 상상력과 비전도 대단하다.

로봇합창단
 로봇합창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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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직 정크아트를 낮게 평가하고 있다. 그 바람에 작품의 값도 노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정크아트와 비디오아트 작품이 아직까지는 회화나 공예 작품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예술을 작품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본다. 경매에서 높은 값을 받는 사람이 더 훌륭한 예술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크아트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예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크아트는 숨겨진 보물이다. 우리 후세대가 그 가치를 인정할 것이고, 그들에 의해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앞서 가는 예술과 예술가는 항상 백 년 또는 이백 년,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이다. 음성 가섭산 산자락에 살고 있는 정크 아티스트 오대호, 그가 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아직 그를 몰라보고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보은군 보은읍 길상리에 있는 펀 파크의 누리집은 http://funpark.kr 이다.



태그:#정크아트, #오대호, #TEA, #상상력과 비전,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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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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