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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덕문 선생님은 죽곡 출신의 원로 교육자이다.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의 나이에 죽곡초등학교에 부임해서 7년을 근무하는데, 죽곡초등학교에 무수한 교사들이 부임했지만 아마 기덕문 선생님 정도의 열정을 가진 교사는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 기덕문 선생님(앞줄왼쪽 두번째)과 함게 기덕문 선생님은 죽곡 출신의 원로 교육자이다.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의 나이에 죽곡초등학교에 부임해서 7년을 근무하는데, 죽곡초등학교에 무수한 교사들이 부임했지만 아마 기덕문 선생님 정도의 열정을 가진 교사는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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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에서 좋은 기획 중 하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모시고 동문들이 함께 준비하는 강의다. 나이 50대의 동문들이 초등학교 은사 선생님을 모시고 같이 공부하는 건 그 자체로 어릴 적 기억으로 돌아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있다.

그러나, 이게 성공할 수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억이 지금의 모습을 지우고 행복한 기억만 있을 수 있을까?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오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

기덕문 선생님은 죽곡 출신의 원로 교육자다.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1살의 나이에 죽곡초등학교에 부임해서 7년을 근무했는데, 죽곡초등학교에 무수한 교사들이 부임했지만 아마 기덕문 선생님 정도의 열정을 가진 교사는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도시 학교든 농촌 학교든 거의 비슷한 체제 속으로 들어갔고, 그 속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에게 열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곡성의 농촌 초등학교는 대부분 교사 평점을 올리기 위해서 이거나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교사들이 선호하는 지역이어서 교사가 일하는 학교의 지역 사회에 대해 애정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기덕문 선생님이 교사로 일하셨던 60년대의 농촌 초등학교는 지금 대안학교 이상으로 삶과 교육이 살아있었다. 교사들은 마을에서 같이 살았고, 학교를 마치고 같이 걸으면서 동요를 부르고 농촌 지역의 유일한 문화 거점으로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고 기쁨과 쓸픔을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였다. 이런 교육공동체가 있었기에 열정도 있을 수 있다.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안학교 교사들 중에 열정적인 교사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다.

기덕문 선생님은 6학년 학생들과 함께 졸업음악회를 기획하고, 축구부를 만들어 대회에 출전하고, 창의적 발상으로 수학여행을 기획하는 등 무수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함께 했던 제자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교사로 기덕문 선생님을 기억하고, 죽곡초등학교에서 광주 서석초등학교로 전근 발령을 받았을 때, 이별하는 자리에 모든 학생들이 눈물을 흘려 눈물 바다를 이뤘다. 이후 학생들의 편지가 너무 많이 와서 우체국에서 기덕문 선생님을 위한 사서함을 따로 만들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아! 옛날이여... 순수함과 아름다움이여

21살에 부임한 학교의 첫 제자들이었던 최태석, 조국래 두 분과 함께.
▲ 40년전 제자들과 함께 21살에 부임한 학교의 첫 제자들이었던 최태석, 조국래 두 분과 함께.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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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꼭 꿈꾸는 것 같다. 한 사회가 발전하면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면서 잃은 것 중의 하나가 '마을과 교육'이다.

교육을 학교 안에서만 해야하고 할 수 있다는 건 오만에 가깝다. 지역에서 교육·문화 활동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학교와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할 경우가 많다. 그 때마다 부딪치는 지점이 '하는 건 좋은 데 학교 안에서 해야 합니다'이다.

학교를 벗어나서 하는 활동에는 참여할 수도 책임질 수도 지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하고 학교 안에서 하는 게 재미있는 게 뭐가 있겠나? 차라리 안하게 된다. 

진보 교육감의 정책을 통해 농촌의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이 만들어 지고 교육 예산이 작은 학교에 들어오지만 그 돈은 학교 안에서 맴돌고, 먼 곳에 가서 여행하면서 대부분 쓰게 된다. 마을과 함께 하는 접점이 없다. 그리고 교사들 대부분은 지역에 살지도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다. 서로 관계 맺어야 할 이유가 없다.

기덕문 선생님은 강의 제안을 받은 4월부터 이 강의를 준비하셨다면서 강의를 기록한 강의록을 들어 보인다. 그 동안 꼼꼼히 신문을 스크랩하고 자료를 모아서 원로 교육자로서 우리 시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60년대부터 농촌 학교 교사로 살면서 '교육 공동체'에 대한 기억을 가진 선생님은 '학생, 교사, 교장, 학부모, 설립자'가 서로 책임과 역할을 공유하는 것에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교육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면서 서로 견제하는 것에만 중심을 두는 현실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운영위원회를 해보면 학부모 운영위원들이 돈 쓴 것만 따질 때 자괴감이 든다. 공동체가 파괴된 위에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것이다.

학원과 학교가 비교 당하는 것도 불편하다. 학교는 학생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다 함께 갈려고 하는 데 비해 학원은 성취 동기를 가진 동질 학급에서 성적을 중심에 두고 가르치기 때문에 성과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데도 이런 평가로 인해 스승의 날 학생 설문을 해보면 학원 교사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학생이 더 많은 현실도 불편하다.

'쉬운 수능'도 중요한 논쟁 지점이다. 쉬운 수능을 반대하는 세력은 '학원, 부자, 일류대학'이다. 수능이 쉬워지면 학원은 당장 경영의 어려움에 부딪치고, 부자들은 고액 학원비를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일류대에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자신들에게 유리해 지기 때문이고, 일류대학으로서도 부자들이 들어와야 학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 정상화의 실천적 전략은 '쉬운 수능, 내신 중심, 특기 적성과 입학 사정관, 지역 균형 선발'을 기반으로, 궁극적으로는 대학을 가지 않고도 생활에서 큰 차등을 느끼지 않는 사회적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지혜롭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교사로서 평생을 바쳤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불편함으로 가득하다. 교육적 대안을 이야기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이 글의 시작에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죽곡에서 청년 시절 마을 학교의 교사였고, 죽곡이 고향이고 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거기다 제자들은 지역 사회의 중견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지역의 제자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공부하고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같이 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그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 도시와 농촌, 농민과 지식인. 이 사이에 무수한 단절이 생겼기 때문이다. 40년 전의 순수한 기억으로 돌아가기만 할 수 없는 이 단절을 극복하는 일이 지식인들이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태그:#농민인문학,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기덕문, #교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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