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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내정자 있나요? 원서비만 날릴 거 같아서요."
"내정자 있단 소문 있어요. 지원해봤자 들러리... 다 낚시에요."
"그럼 공고를 내질 말든가. 이따위 희망고문 그만 좀 하라고!"

사립학교의 정교사 채용 공고와 관련해 예비교사들은 이런 말들을 주고받곤 한다. 내정자, 들러리, 낚시, 그리고 희망고문. 교사 채용과 관련된 이 단어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내정자'란 정교사로 이미 내정된 이를 말한다.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법인 친인척·지인 등 인맥을 통한 낙하산 내정자도 있지만 해당 학교에서 현재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는 이가 내정자인 경우도 많다. 내정자의 존재를 모른 채 공고문을 보고 지원하는 응시자들은 '들러리'가 돼 원서비만 날리게 된다. 들러리인 줄도 모르고 자기소개서와 제반 서류들을 제출하고 필기시험·시강·면접 등의 절차를 거치며 오매불망 합격만 고대하는 것을 '낚였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희망고문'이라고 한다.

예비교사들의 세계에서 이 같은 '희망고문'은 공공연한 비밀과 같다.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낚인다. 10여 년간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다는 최아무개 교사는 "모든 것은 중등 정교사 2급 자격증 소지자의 수에 비해 임용고사 선발 인원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좁아도 너무 좁은 공립 정교사의 문

최 교사의 말처럼 공립학교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문은 너무나 좁다. 교사 자격증 소지자 수에 비해 선발 인원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최 교사의 말처럼 공립학교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문은 너무나 좁다. 교사 자격증 소지자 수에 비해 선발 인원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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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사의 말처럼 공립학교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그 문은 너무나 좁다. 교사 자격증 소지자 수에 비해 선발 인원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10월에 치러질 중등임용고사를 살펴봐도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지리 과목은 31명, 가정 과목은 19명, 한문 과목은 16명(이상 전국 선발 인원) 등에 불과하다. 어떤 지역은 아예 한 명도 선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등 임용고사 선발 인원이 적은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연세대 교육학과 황금중 교수는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감소해도 교실 내 학생 수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나라 중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 제한선인 35명은 OECD 평균인 25명보다 10명이나 많다. 지난해 8월, 교과부가 제출한 <전국 과밀·과대학교 현황> 자료를 보면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생 수 40명을 넘는 '과밀 학급'은 3600학급에 이른다.

때문에 교사 대비 학생의 비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2011년 교육정책 분야별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중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중학교 17.3명, 고등학교 14.8명으로 OECD 평균치인 중학교 13.2명, 고등학교 12.5명보다 높다. 하지만 실제 교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지표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 수업 담당 교사만 포함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교장·교감·보건교사 등을 모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황 교수는 "교사 대 학생 비율이 여전히 높음에도 교과부가 교실 내 학생 인원수 제한을 25명 등으로 바꾸지 않아 학급 수 감소에 따라 교사 수요 역시 감소한 것"이라며 "국가 재정을 투입하고, 임용고사 선발 인원을 늘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은 교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안정적 취업뿐 아니라 학생들이 질 높은 수업과 세심한 인성 지도를 받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지난해 임용고사 직후인 11월, 중등 예비교사들이 모여 임용고사 선발 인원에 대해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중등예비교사 연대모임은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해마다 3만5000명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발급받아 배출되고 있고, 누적 응시자는 5만6000명에 이른다"며 "그럼에도 신규교사 선발인원은 고작 2500명에 불과해 나머지는 모두 실업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법정수급률 100%였던 초등학교의 경우 이번 임용고사에서 오히려 수급률이 50% 증가한 반면, 중등학교의 경우 법정 교원수급률이 80%다, 나머지는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고 있다"며 "이는 단기 계약직 교사를 양산하고, 교육의 질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사립학교의 정교사 채용 공식, '희망고문'

중등 임용고사 선발 인원이 적은 이유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중등 사립학교 비중이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중학교의 13.75%, 고등학교의 41.5%가 사학이며, 중학교의 사립 재학 학생 비율이 20.6%로 OECD 평균 14.1%보다 높고 고등학교 비율은 51.8%로 OECD 평균 20.1%의 2.5배에 이른다.

그래서 중등 정교사가 되려는 이들은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혹은 아예 임용고사를 포기한 채 사립학교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때 상당수 사립학교들이 정교사 채용 과정에서 '내정자'를 정해 놓고 '들러리'를 세우기 때문에 예비교사들이 '희망고문'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각급 학교 현황(2011 교육과학기술부 교육통계연보 참고)
 각급 학교 현황(2011 교육과학기술부 교육통계연보 참고)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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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에 따르면 상당수 사립학교들이 교사 채용과 관련해 기간제교사 근무를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일정 기간 기간제교사로 근무한 뒤 정교사 발령'을 내세우며 희망고문을 하는 사립학교들이 상당수라는 설명이다. 이런 희망고문은 때로 공고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3년 전 신아무개씨는 경기도 B중고등학교의 교사 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 최종 합격했다. 공고문에는 '교사 채용'이라고 적혀 있었고, 신씨는 '교사'를 기간제교사가 아닌 정교사로 인식했다. 하지만 학교는 신씨와 함께 합격한 십여 명의 최종합격자들에게 '그 공고는 기간제교사 공고였으며 우리 학원은 선생님들의 자질을 봐야 하니 1년 후에 심사해 정교사로 발령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정교사 전형에서 최종 합격했다고 생각했던 신씨 등은 불쾌한 마음이 들었으나 학교를 믿고 1년간 성실하게 근무했다. 하지만 1년 뒤, 학교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교사로 채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공고문을 통해 '정교사 채용 공고'를 내지만, 막상 최종합격을 한 이(들)에게 '1년간 수습 후 (평가 결과에 따라) 정교사 임용'을 운운하며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하는 '희망고문'은 현재까지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수습기간(인턴기간)을 거친 후 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문구는 교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고문으로 작용한다. 한 사립 고등학교의 채용 공고.
 수습기간(인턴기간)을 거친 후 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문구는 교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고문으로 작용한다. 한 사립 고등학교의 채용 공고.
ⓒ OO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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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교사 채용'으로 공고문을 내면서도 희망고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고문 하단에 '최종 합격자는 1년간 인턴교사(계약제)로 근무한 뒤 본 학원 소정의 직무연수 및 평가결과에 따라 익년도 정규 교사로 임용'이란 문구를 넣은 서울 S고가 그 예다. 지난 2009년 S고의 '교사 0명'이라는 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해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박아무개씨는 당연히 자신이 정교사로 채용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자 소집 당시 학교 측은 박씨에게 "정교사는 다름 사람이 됐으며, 당신은 기간제 교사로 채용된 것"이라며 "공고문 하단 문구에 따라 1년 간 인턴 근무를 할 것"을 요구했다.

박씨의 과목에 정교사로 채용된 이는 필기시험과 시강에서 본 적이 없는, 그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를 하던 이른바 '내정자'였다. 박씨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1년 뒤 정교사 채용'이라는 약속을 믿고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연말이 되자 학교는 "1년 더 지켜봐야겠다"며 정교사 발령을 미뤘고, 이에 박씨는 다시 한 번 학교를 믿고 2년째의 근무를 해나갔다. 최선을 다한 박씨는 당시 교원평가에서 60여 명의 교사들 중 7등이란 성적도 얻었다. 하지만 박씨의 2년째 근무가 끝날 무렵 학교는 "학교법인 사정상 정교사 채용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서울 O고는 기간제 교사들 사이에서 '희망고문 학교'로 악명이 높다. 전국기간제교사모임 카페에 게재된 O고의 채용 공고에는 "올해도 역시! 반갑습니다!" "매년 이리 올리시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등의 뼈 있는 댓글이 즐비하다. 이 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 최아무개씨는 "O고는 매년 정교사 채용 공고를 내는데, 공고문 하단에는 '교사 초임자는 6개월~1년간 수습 후 평가로 임용 여부 결정'이라고 명시하곤 한다"며 "하지만 수습 기간 뒤 정교사로 임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매년 비슷한 공고로 기간제교사나 시간강사들을 다수 채용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0년 권영길 의원의 조사 자료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2010년 O고는 상문고·서울예술고·대일관광디자인고·서울디지텍고 등과 함께 정교사 채용 공고 뒤 지원자들로부터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전형료를 받았으나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채용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12월에는 '국어·영어·수학·과학(생물)·과학(물리)·사서 각 과목 약간 명 교사 채용'이라는 공고를 냈지만, 단 두 명의 교사만 정교사로 채용됐다.

이런 이유로 O고에는 매년 상당수의 기간제교사들이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서윤기 서울시 의원이 시행한 '학교 내 비정규직 실태 조사'에 따르면 O고에는 2012년 현재 총 29명의 기간제교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 학교는 서울시 관내 학교들 중 기간제교사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2일, O고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교사 채용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기자는 '교사 채용에 관련해 취재를 하고자 하니 연락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학교 측으로부터 회신을 받을 수 없었다.

B중고와 S고, 그리고 O고는 공고문을 통해 예비 교사들에게 '공식적인 희망고문'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보다 흔한 희망고문은 구두로만 이뤄진다. 매년 교사 채용 공고가 몰리는 12월 무렵이 되면 전국간제교사모임 카페에는 "학교 측에서 1년 뒤 정교사로 임용한단 말을 하는데 이 얘기 믿어도 되나요" 등과 같은 문의글이 자주 올라온다. 이에 대해 몇몇 예비교사들은 '도리에 맞게 발령을 내주는 곳도 있다'는 답을 내놓기도 하지만, '자네가 안 되면 누가 되느냐며 뭐 같이 부려 먹고 계속 기간제로 돌리며 진을 빼먹었다' '절대 믿지 말아라. 다 낚으려고 하는 소리다' '구두 계약했다 피 본 사람 많이 봤다' 등 비관적인 글이 답글이 주를 이룬다.

'1년 뒤 정교사 채용 가능'... 이것 자체가 위법

사실 지금까지 살펴본 희망고문 사례들은 모두 '불법'이다. 공고문에 의해서든 구두에 의해서든 '1년 뒤 정교사 발령 가능한 기간제교사 채용'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

사립학교법 제54조의4 1항에는 "정교사들의 휴직 등으로 인한 일시적 공백, 특정교과가 한시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 기간제교사를 임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전교조 강영구 변호사는 "이 규정은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경우가 아니면 기간제교사를 임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 해석된다"며 "따라서 한시적 필요가 아닌 장기적 필요가 요구되는 교원의 공백, 즉 정교사로 채용해야 할 자리를 기간제교사로 메우는 것은 이 법 조항을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진단한다.

사립학교법 제54조의4 (기간제교원)
①각급학교 교원의 임면권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교원자격증을 가진 자중에서 기간을 정하여 임용하는 교원(이하 "기간제교원"이라 한다)을 임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임면권자는 학교법인의 정관등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권한을 학교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개정 1997.8.22, 2005.1.27, 2008.3.14>

1. 교원이 제59조제1항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로 휴직하여 후임자의 보충이 불가피한 때
2. 교원이 파견·연수·정직·직위해제 또는 휴가등으로 1월 이상 직무에 종사할 수 없어 후임자의 보충이 불가피한 때
3. 파면·해임 또는 면직처분을 받은 교원이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9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여 후임자의 보충발령을 하지 못하게 된 때
4. 특정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할 교원이 필요한 때

따라서 학교 측이 '열심히 하면 1년 뒤 정교사로 임용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하는 순간 학교는 '정교사를 임용하는 자리에 기간제 교사를 임용했음'을 그러니 '사립학교법 제54조의4 1항을 위반하는 불법을 저질렀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된다.

물론 투명하고, 공정하게 교사를 채용하는 사립학교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사립학교들은 공고문을 통해 대놓고, 또는 구두로 '정교사 발령'을 언급하며 기간제교사들을 희망고문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간제교사들은 그런 희망고문이 불법이라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설령 안다고 해도 상대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학교 측에 항의할 수가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실낱같은 '정교사 발령 희망'에 매달려 학교법인과 관리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희망고문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희망고문, #사립학교, #기간제교사, #내정자, #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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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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