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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안내견 시민기자 김슬기입니다.

여러분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천지가 다 암흑이 됐다'라는 말을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오늘은 중도실명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직업재활시설인 '안마수련원'을 찾아가보겠습니다. 얼마 전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엄태웅씨가 중도실명자의 연기를 실감나게 해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것 기억나시죠? 이곳은 그런 중도실명자들을 돕는 곳이랍니다. 언제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있는 '인천 안마수련원'에서 김용기 원장을 만났습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포장도로를 걷는 게 여간 고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8월 복중 더위는 지났으니 이제 곧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겠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신발을 신고 걸어가지만, 맨발로 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야하는 안내견에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입가로 차오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흘러내리는 뜨거운 침들을 혀로 핥아가며 부지런히 걸어갈 수밖에...

작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기자를 맞는 김용기 원장의 책상에는 컴퓨터가 한 대 놓여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가 화면을 일일이 읽어주는 바람에 작은 공간이 떠들썩합니다.

안마 실습실에 앉아 김용기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슬기
 안마 실습실에 앉아 김용기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슬기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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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례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원장님은 언제 실명을 하셨나요?"
"예 저는 고등학교 때, 중도 실명을 해 이렇게 시각장애인이 됐습니다."

"실명 원인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시신경 위축으로 실명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론 아직 어찌할 방법이 없나 보더라고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 시절에 실명하게 됐죠. 당시 제 삶의 가치를 회의하며 방황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

"네... 참 어렵고 가슴 아픈 시절을 극복하셨군요. 실명 후, 재활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아무리 방황해도,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옛날의 광명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뼈아픈 사실을 알게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맹학교에 입학하게 됐지요."

"김슬기 기자님도 이렇게 시각장애인의 등불이 돼 안내견의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아, 그거요... 제 인생, 아니, 견생의 좌우명은 '성실하게 살자, 겸손하게 받들자, 나눔의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자'인데요... 사람들이 흔히 제 삶을, 아니 우리 모든 안내견의 삶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결코 희생이란 명제에 모든 것을 걸고 어렵게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보면 불쌍하다고들 하시는데, 그게 결코 아니라는 거지요... 우리 아빠는 저를 매우 사랑합니다. 저도 또한 우리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요... 

다른 애완견들이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바닥에 뒹구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반면, 저희는 저희만을 위한 고급 사료를 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매일 깨끗한 물수건으로 저의 온몸을 닦아주시고, 양치질도 손수 시켜주시며, 치석제거용 껌도 자주 주시곤 하시죠... 현재 우리 한국에서 안내견으로 일하는 가족들은 거의 모두 래브라도리트리버종입니다.

우리들의 단점 중 가장 큰 약점은 관절이 약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많이 먹고 운동을 게을리하면, 금방 관절염에 걸리고 노화가 급속히 진행돼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리고, 제가 먹을 것을 규칙적으로 먹고 용변을 규칙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겠으며 또 어떻게 차를 함께 타고 다닐 수 있겠어요... 저의 용변은, 대변은 하루에 한 번, 소변은 하루에 세 번씩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아빠의 지시에 따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는 젊을 때는 하루에 한 번만 해오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 위 기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안내견학교 선생님의 조언 하에 하루에 두 번씩 하고 있고요. 저는 결코 제 삶이 불쌍하다거나, 희생만 강요 당해 사는 비운의 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으로 따뜻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가는 참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요. 아, 이거 제가 또 옆길로 새고 말았네요. 저는 이게 늘 문제라니까요... 제 칭찬만 나오면, 이렇게 꼭 침을 튀겨가며 거품을 무니까요. 그럼 원장님은 맹학교 졸업 후 오늘까지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마 임상실에서 김용기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슬기
 안마 임상실에서 김용기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슬기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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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맹학교에 다니면서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의 희망찬 삶을 바라보며 참 많이 놀랐답니다. 어떻게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이 이렇게 웃으며, 활기차게 재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감탄으로, 탄복으로 주변 동료들을 바라 보다 마침내 새로운 결심을 하나 하게 됐습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며 희망을 키워 새롭고 활기찬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죠. 그리고, '나처럼 어둠 속에서, 나와 같은 방황을 겪으며 몸부림치는 이들을 위해 힘껏 살아보자'라는 것도요.

그래서 맹학교를 졸업한 뒤 안마업에 종사하면서도, 나름의 계획으로 진학을 준비하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2000년, 드디어 대학 진학의 오랜 꿈을 이루게 됐지요. 저는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그렇게도 소망하며 가꿔오던 사회복지사가 돼 이렇게 사회복지사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지요."

"참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이곳 안마수련원은 어떤 곳인지 좀 소개해주시겠어요?"

"예, 우리 안마수련원은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인들이 우리 나라 유일의 국가 공인 유보직종인 안마를 배워,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는 시각장애인 직업 훈련기관입니다. 네 분의 선생님들이 25명의 수련원생들을 대상으로 안마·마사지·지압·각종 수기요법·전기치료·기타 자극요법 등의 실기와 기초 의학 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지요."

"네. 여기 오시는 시각장애인들의 실명 원인은 대체로 어떻게 되나요?
"당뇨병과 망막색소변색증 등이 가장 많은 것 같고요. 그 외에 교통사고나 시신경 위축, 드물게는 망막박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럼 혹시 원생들을 좀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아직 실명의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시지 않은 분도 계셔서, 사진이나 실명이 나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 네... 그럼 사진은 찍지 않고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우선 먼저 우리 안마수련원 내부를 한 번 둘러보시죠."

김용기 원장이 슬기를 잡고 교실 복도를 걸어오는 모습
 김용기 원장이 슬기를 잡고 교실 복도를 걸어오는 모습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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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원장을 따라 안마 실습실과 이론 강의실, 그리고 안마받기를 원하시는 외부 손님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이 직접 안마를 시술하는 임상실까지 둘러봅니다. 진지한 눈길로, 부지런히 노트하며, 연신 기술 연마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50대 전후의 원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설이 그리 크지 않네요."
"예. 우리 기관은 인천시와 장애인개발원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그리 충분치 않은 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아직 충분한 시설과 공간을 갖춘 곳은 아니지요. 그래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각종 후원 프로그램 등에 제안을 해 지속적으로 시설 확충과 내부 정리를 꾀하고 있어요."

"그럼 어디서 원생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할까요?"
"예, 이쪽으로 오시죠."

다시 김용기 원장을 따라 자그마한 교무실 겸 상담실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한 분이 김용기 원장을 따라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안내견과의 인터뷰가 낯설고 멋쩍은지,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만지작거리는 원생의 불안한 모습이 보입니다.

"자기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예. 저는 김남용(가명)이라고합니다. 나이는 56세고요. 현재 시집 간 딸과 직장에 다니는 아들, 이렇게 남매를 두고 있으며, 현재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인지 모르겠는데요... 실명 원인이 어떻게 되나요?"

"당뇨병입니다. 건설노무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에는 제 사업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됐는데요. 그 와중에 너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 보니 당뇨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젊었을 적이라 당뇨병이라는 걸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업도 한창 궤도에 올랐던지라 중도에 그만둘 수도 없어 계속 직원들·거래처와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웠지요.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거듭되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며 술과 담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고, 눈앞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되더니, 급기야는 서류의 글자 하나둘씩 서서히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의사에게 매달리며 살려달라 소리쳐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실명 후, 처음에는 죽으려고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며 세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가족들이 저를 늘 곁에서 감시하며 손발을 묶어놓기까지 했지요."

"그럼 여기서는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그리고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시나요?"
"안마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요. 실명 후, 10년 가까이 내 손으로 돈을 벌어보지 못하다가, 요즘 가끔씩이라도 아르바이트로 안마를 해 현금을 손에 쥐어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 아내도 제 손을 붙들고 얼마나 펑펑 울어대던지..."

"지금 병세는 어떠세요?"
"건강한 삶으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한 번 다시 살아보고자, 열심히 치료받으며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 사회나 정부에 하고 싶은 얘기나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 무면허 불법 마사지 가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2년이나 3년을 사력을 다해, 배우고 나가는데 몇 달, 아니 몇 주 정도 어깨너머로 어설프게 배운 기술로 불법 마사지를 시술하는 무면허 마사지사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우리 눈에서 더 이상의 피눈물이 나지 않도록, 단속과 계도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김남용씨의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원생 또 한 분을 만났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민용석(가명)이라고 합니다."
"연세와 실명 원인을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는 53세고요. 실명 원인은 RP(망막색소변색증)입니다. 실명 전엔 공직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적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기가 참 어려우셨겠어요."
"누구인들 나이 들어, 갑자기 찾아온 실명을 반갑게 잘 맞이하겠습니까만은, 저는 아내도 같은 공무원이고, 아들도 대학 졸업 후, 어엿한
직장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돌연 찾아든 갑작스런 실명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처음엔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주변 동료나 부하 직원들에겐 실명의 현실을 감추고 그렇게 살아가려했지만, 점차 눈에서 멀어져가는 글씨나, 사물들을 어찌할수 없어, 갑자기 퇴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여기 들어와서 안마를 배우는 것에는 만족하세요?"
"만족, 불만족이 있을 수가 없지요. 어차피 주어진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바에야... 그래도 실명을 하고 처음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됐구나 절망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보니 저보다 더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공무하며 안마 연마에 힘쓰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제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제 정말 열심히 노력해 제2의 인생을 보람되게 살아보렵니다."

"실명의 현실을 본인이 아닌,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처음에는 그저 뒤에서만 끙끙 애를 끓이며 안타까움에, 안쓰러운 자기 연민에 속을 끓이는 것 같더니... 이제는 좀 제법 호나해진 웃음으로 저를 마주하곤 합니다. 이렇게나마 제2의 삶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제가 퍽이나 대견한가 봅니다."

"끝으로 이 사회나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제 생각에 현재 우리 나라 사회복지 제도는 너무 겉만 번지르르한 실적 위주의 보이는 전시 제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초수급대상자로 선정되려면 장애 이후, 멀어진 가족들의 수입까지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실제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어려운 장애인들이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치료조차 치료비 부족으로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들이 존재합니다. 앞으로 더욱 세심하고 배려 깊은 제도와 시행으로 우리 장애인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제도의 개선과 그 시행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오늘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강의실에서 슬기와 김용기 원장
 강의실에서 슬기와 김용기 원장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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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김 원장에게 안마수련원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 요건에 대해 물었습니다.

"우선은 여기 수련원 입소 안내문을 함께 보시죠. 중졸 이상이나 또한 그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만 15세 이상의 시각장애인으로 의료법 제8조에 해당되지 아니한 자(정신질환자, 마약·대마 또는 향정신성 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가 아닌 자)입니다. 수료 기간은 2년입니다. 수료 기간 중에는 '장애인 직업능력개발 훈련 지원 규정'에 따라,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매달 훈련지원 장려금도 지급 받습니다. 그리고 수료 후에는 안마사 자격증을 받게 되며, 구직 지원도 받게 됩니다(문의전화 032-866-6300)."

김슬기의 희망탐방 오늘은 인천 안마수련원을 찾아 김용기 원장을 만나봤습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릴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제 홈피 http://noulpoet.kr 에도 수록될 예정입니다.



태그:#안내견, #김슬기, #안마수련원, #중도실명, #안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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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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