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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23일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문화유산기금'의 2012년 하반기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참가해 전라도 전주와 나주에 다녀왔다.

이번 활동은 전주의 한옥마을과 나주의 역사와 문화, 근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간략한 강의와 답사를 통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으며 내셔널트러스트 회원 및 일반 시민들을 위해 기획됐다.

산에서 본 조망
▲ 전주한옥마을 산에서 본 조망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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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회원이 많지 않고 설립 역사도 길지 않아, 내셔널트러스트라고 하면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 하지만 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된 자연보호와 근대문화유산보존을 위해 설립된 전통 있는 시민단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역사 건축물과 환경을 기부금, 기증, 유언 등으로 취득해 이것을 보전·유지·관리·공개함으로써 차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인 재정은 회비와 기부금으로 조달한다. 발족 당시 몇 백 명이던 회원이 현재는 300만 명에 이른다. 또 영국토지의 1.5%, 해안지역의 17%를 소유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미국·일본·뉴질랜드·한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설립 직후 멸종위기 식물인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의 농지 912평을 매입했으며, 이후 서울 성북동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옛집을 매입했다.

또한 2004년 남한강 상류의 동강 보전을 위해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제장마을의 땅 5200평을 매입했다. 이후에도 '나주 도래마을 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연천 DMZ 일원 임야'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 '내성천 범람원' 등을 확보해 시민들의 유산으로 보전·관리하고 있다.

현재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최순우 고택을 매입한 이후인 지난 2004년부터 법률적인 외부문제로 조직을 둘로 갈라 자연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주력하는 원래의 조직과 근대문화유산보존에 매진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로 나뉘어져 활동하고 있다.

안내석
▲ 전주한옥마을 안내석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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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지난 22일 참가자들과 함께 서울 양재동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먼저 전북대학교를 방문해 건축공학과 남해경 선생으로부터 전주를 포함한 전북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들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현재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800채 정도의 한옥은 대부분 1920년에 지어진 것으로 주로 1940년~1970년대에 지어진 근현대식 서민개량한옥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현대에 지어진 한옥이 많았다. 그 가운데 시대와 기법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정말 전통한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은 100채 정도라고 한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이 되면서 한옥마을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이후 전주전통한옥마을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현재 1200세대 3900여 명이 거주하며 매년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지역 명소다.

맛이 좋다
▲ 전주 비빔밥 맛이 좋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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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은 일행은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완산구 서신동에 위치한 48년 전통의 전주전통비빔밥 명가인 '성미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육회 비빔밥으로 식사를 했다. 쇠고기 육회를 올린 비빔밥에는 고추장으로 미리 비벼진 밥이 깔려 있어 어렵지 않게 살살 비벼 국물과 함께 먹었다.

맛은 있었지만, 약간 매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남해경 교수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인 '이목대(梨木臺)'와'오목대(梧木臺)'가 있는 산언덕에 올라 한옥마을을 조망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으로, 고종이 직접 쓴 비문이 있다. 오목대는 이성계 장군이 고려 우왕 6년에 삼도순찰사로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군사를 이끌고 잠시 쉬어가던 장소다.

조선의 유적이다
▲ 오목대 이목대 조선의 유적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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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직접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문을 새겨 놓은 비는 광무 4년(1900년)에 세운 것이다. 이들 유적지는 조선왕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산에서 본 조망입니다
▲ 전주한옥마을 산에서 본 조망입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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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목대와 오목대가 있는 산언덕을 오른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한옥마을 조망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잠시 후 다시 '경기전' '전주사고' 등을 보면서 생각하기로 하고 길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한옥마을 입구
▲ 전주 태조로 한옥마을 입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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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입구에는 전주를 알리는 특색 있는 기마경찰대 사무실이 보인다. 실제로 말을 타고 순찰을 도는 경찰관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나도 신이 났다.

이제부터 태조로를 따라 상가와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등이 있다는 안내판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10월 중하순에 '전주비빔밥축제'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한국음식관광축제' 등이 열린다는 내용의 홍보물이 즐비하다.

홍보물이 많았다
▲ 전주에서 열리는 축제 홍보물이 많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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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한옥은 별로 없고, 이미 상업화된 현대식 한옥이 많이 보인다. 2층으로 된 한옥빵집과 편의점·상점·안내소 등이 있다. 산위에서 보던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래에서 보니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다. 어차피 인생도 가까운 곳에서 보면 비극의 연속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처럼 보이지 않는가.

상업건물이 많았다
▲ 한옥마을 2층 빵집 상업건물이 많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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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바로 '경기전(慶基殿)' 입구에 닿았다. 1410년(태종 10년) 완산구 풍남동에 건축된 조선의 묘사(廟祠)로 사적 제339호다. 당초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계림·평양에 창건해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현재의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됐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 본전 가운데에서 달아낸 헌(軒), 본전 양 옆 익랑(翼廊) 등으로 이뤄져 있고, 이를 두르고 있는 내삼문·외삼문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본전은 남향한 다포식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세 번째 기둥 렬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을 놓았다.

태조의 어진이 있다
▲ 경기전 태조의 어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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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 양 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에 내단 헌은 본전보다 한 단 낮게 쌓은 석축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이 이루는 구성은 왕릉에 제사를 지내려고 세운 정자각의 구성과 같다. 또한, 본전 양 옆에는 익랑(翼廊) 2칸, 무(廡) 4칸이 있다. 내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3문으로 그 양 옆에 익랑 2칸을 뒀다. 조선중기 건축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아산, 묘향산, 적상산 등으로 옮겨졌다가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면서 다시 돌아왔다가 동학혁명 때 위봉산성으로 잠시 옮겨졌다가 돌아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호통이라도 칠 것 같은 태조의 모습에 강인한 군주의 위엄을 보는 듯하다. 

힘있는 모습이 강렬하다
▲ 태조의 어진 힘있는 모습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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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세우면서 절반 정도가 잘려 나갔다가 1995년 학교를 이전하고 2004년 재실부속건물을 복원했다. 그래도 지금 남아 있는 모습은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과 내삼문을 연결하는 간결한 구조다.

경기전 본전을 살펴보고 태조의 어진까지 본 우리들은 바깥쪽에 있는 '전주사고'를 보러 갔다. 전주사고는 1439년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의 보관 장소다. 한양, 충주, 성주의 사고와 함께 한 권씩 보관했던 곳이다.

멋진 건물이다. 책이 상하지 않게 아래 가 텅빈 공간이다
▲ 전주사고 멋진 건물이다. 책이 상하지 않게 아래 가 텅빈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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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됐지만, 전주사고는 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옮겨 보관함으로써 지켜낼 수 있었다. 유일한 실록은 14개월 만에 조정에 전달돼 다시 한양·마니산·태백산·묘향산·오대산의 사고에 보관됐다.

전주사고의 원본은 강화 마니산에 보관됐으며 현재의 사고는 최근에 모양만을 복원한 것이다. 1층이 전부 비어있는 탁 트인 구조는 실록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습기를 날려버리는 환기 창의 개념으로 만든 비움의 공간으로 무척 마음에 들고 좋았다.

경기전에 있다
▲ 예종의 태실 경기전에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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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오는 길에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을 잠시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태실이 크고 웅장하여 조선왕실의 힘과 기상을 보는 듯했다.


태그:#전주한옥마을 , #내셔널트러스트, #경기전, #전주사고,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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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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