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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세대 전쟁'.

이번 대선을 앞두고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40년 넘게 이어온 뿌리 깊은 지역주의도 아니고 부의 양극화가 낳은 계층 갈등도 아니다. 그저 나이에 따라 투표를 달리 할 것이란다. 지역, 이념, 계층에 이제 나이까지 더해졌으니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나라가 갈기갈기 찢겨질 판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큰 짐으로 남을 일이고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우리 사회의 스산한 풍경이다.

늘 그래오지 않았냐고, 새삼스럽게 이제와 무슨 '세대' 타령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번엔 몇 가지 점에서 분명 다르다.

지역주의를 능가하는 '세대전쟁'

우선, 여론 조사 결과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세대별(2040과 5060) 성향이 크게 갈린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동안 선거 때마다 맥을 못 추던 20대의 투표율(또는 투표 의지)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더불어 이번 선거에 즈음해 2030세대와 5060세대(60대 이상 포함)의 인구수가 처음으로 뒤집어졌다는 점도 이른바 '세대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글로벌리서치>가 실시한 '차기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한국경제, 2012.9.23)
 <한국경제신문>과 <글로벌리서치>가 실시한 '차기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한국경제, 2012.9.23)
ⓒ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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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벌인 여론 조사 결과(한국경제신문/글로벌리서치), 20대(만19세 포함)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 가운데 박근혜를 지지하는 비율이 27.7%에 그친 데 비해,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하는 비율은 65.3%(각각 18.0%와 47.3%)에 달했다. 60대로 눈을 돌려 보면, 거꾸로 박근혜의 지지율은 61.8%에 달했지만, 문재인-안철수의 지지율은 28.6%(각각 11.7%와 16.9%)에 그쳤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 문재인-안철수의 지지율이 20대에서 60대로 넘어오자 대략 3:6에서 6:3으로 그대로 뒤집어진 것이다.

최근 인구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번 대선에서 5060세대의 유권자 수는 10년 전인 2002년 대선 때보다 약 579만 명이 늘어 전체 유권자의 39.6%를 차지하게 됐고, 반대로 2030세대(만 19세 포함)는 약 126만 명이 줄어 38.6%로 내려앉았다. 2002년 대선 때는 2030세대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8.3%를 차지할 만큼 덩치가 컸고, 5년 전인 2007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50대 이상보다 약 394만 명이나 많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는 엄청난 변화다.

또한 40대가 약 887만 명(21.9%)으로 30대(20.4%)를 제치고 처음으로 최다 유권자 세대로 떠오르고, 20대가 1987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최저 유권자 세대로 내려앉은 점도 눈여겨 볼만한 변화다.

바야흐로 지역을 경계로 다투던 대한민국 선거전에 어느새 '세대'라는 성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높고 견고한 담을 쌓아올렸다. 이 성들이 무너지지 않는 한 앞으로 '세대'를 빼놓고서 대한민국 선거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대'를 읽어야 한다. 

왜 '30대'에서 시작하는가

<30대 정치학 -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문화, SNS가 만들어낸 리모델링 세대>(김종배 지음, 반비)
 <30대 정치학 -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문화, SNS가 만들어낸 리모델링 세대>(김종배 지음, 반비)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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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30대 정치학>이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혹시 한물 간 '세대 논쟁'이나 인상 비평에 머문 '세대론'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장담하건대 마지막에 붙은 '학(學)'이란 글자가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88만원 세대'와 '386세대'의 틈새시장을 노린 기획 상품이란 의심도 접기 바란다. 저자 김종배에게 30대는 '문제'가 아니라 '답'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얄팍한 기획 상품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자.

이 책에서 말하는 30대란,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엄밀히 따지면 이미 30대를 벗어난 이들도 있겠으나, 세대론의 경계가 생물학적 나이보다는 공통의 정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30대'라는 호명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내가 보기에도 2012년 현재 30대와 40대 초반의 정서는 여전히 그 앞 세대에 가깝다.

아무튼 만약 당신이 그런 의미에서 '30대'에 속한다면, 이 책에서 당신과 당신 친구들이 걸어온 삶의 자취와 의식의 흐름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그 동안 이 세대를 원망해온 20대이거나, 또는 우습게 여긴 40대 이상이라면 이 책을 읽은 뒤 '그들'(책에서 쓴 표현)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흥미롭다. 정치 분석을 업으로 하는 그는 우리나라 선거 때, 특히 대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판을 뒤흔들고 사라져버리는 무당파층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고 한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었다가, 2007년 대선 때는 다시 이명박에게로 넘어갔던 그 무당파층의 존재 말이다.

알다시피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2030세대가 노풍의 진원지였으나, 그 다음 대선인 2007년에는 이제 40대에 들어선 5년 전 30대의 '배반'이 있었다. 게다가 20대의 투표율은 최근까지도 다른 세대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당파층의 행로를 분석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1970년대생, '그들'이다.

"그 숫자 행렬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진보성이었다. 1970년대생이 2002년 대선 이후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여 왔다고 웅변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찾은 답이었다. 하지만 과연 책을 써야 할 만큼 엄청난 발견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만 더 들어보기 바란다.

저자는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새 정치'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유권자의 주권이 발양되는 새로운 정치 참여", 이것이 바로 '새 정치'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이 현상에는 '안철수'라는 이름이 붙지만 사실 이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서있는 안철수라는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현실과 의식의 변화를 살피는 작업이 더 의미가 있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는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그를 불러낸 유권자들이며 그런 유권자들의 의식이 모여 '시대 정신'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의식과 판단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대통령 상을 정립"해내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들', 즉 30대에게서 이러한 새로운 유권자와 그 새로운 유권자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의 단초를 찾아냈다.

"지금의 정치, 특히 범진보 진영의 정치는 지도자가 끌고 가는 정치가 아니라 유권자가 추동하는 정치다. 따라서 정치를 읽으려면, 나아가 대선의 판세를 읽으려면 반드시 유권자의 의식과 주권 행사의 양태를 읽어야 한다."

무당파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된 저자의 연구가 '30대'라는 답을 찾아낸 뒤, 다시 '새 정치'라는 새로운 화두로 뻗어나간 셈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번에도 '그들'에게서 새로운 화두의 답을 얻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낸다. 즉, 어떤 유권자가 무슨 이유로 진보 성향을 보이며,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는지에 대한 답, 혹은 그 실마리를 찾아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과 '개방화된 정치 구조'가 그것이다.

물론 이를 일반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으나 다른 세대, 다른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가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유이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40세대를 이끄는 가장 진보적 세대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일인 4. 11일 서울시내의 한 투표소에 아이와 함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일인 4. 11일 서울시내의 한 투표소에 아이와 함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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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들'이 2040세대는 물론,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진보성'이 강한 세대라고 단언한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고 한때 정치 개혁의 상징이기도 했던 386세대가 아니라, 빚과 취업난에 허덕이면서 폭발 직전에 놓인 88만 원 세대가 아니라, 그 중간에 끼어 아무런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한, 그래서 뭐라 불러야할지조차 모르는 '그들'이 말이다.

"20대, 30대, 40대가 삼각편대를 이루어 범진보 진영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삼각편대의 꼭짓점은 30대다. 30대가 앞에서 끌고 20대와 40대가 뒤에서 민다. 이게 2040세대의 대형이다."

저자는 2002년 대선부터 올해 있은 총선까지, 지난 10년 동안 치른 모든 총·대선 때마다 실시한 여론 조사 추이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를 입증해내는 데 성공한다. 책의 자료를 옮기는 일은 무의미 할 테니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그들'이 진보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진보의 주도권을 거머쥐기 시작한 시기는 2002년 대선 때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386세대와 주도권 경쟁을 벌인 이 때를 고비로 확실하게 삼각편대의 꼭짓점에 올라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문화적 배경이라는 두 가지 틀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 가운데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낮다고 여기는 비율이 2040세대에서 가장 높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고 여기는 비율은 가장 낮다. 실제로 필요한 소득(국민복지 기본선)과 실제 소득간의 차이도 가장 크다. 또한 부모의 지위가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며, 이러한 구조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가장 높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 세대 사이의 경제적 양극화가 가장 심하다. 

저자는 이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그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IMF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취업 대란, 이어진 벤처와 카드 그리고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몰락 과정 등. '그들'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1975년생의 눈으로 보자면, 이 모든 일들은 20대 중반, 그러니까 사회에 갓 진출을 했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벌어지기 시작해 마치 파도처럼 꼬리를 물고 밀려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그들'의 삶 주변에 넓고도 깊게 퍼져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그들'의 족적을 살피니 선연해졌다. '그들'은 참으로 재수 없는 세대다. 신자유주의 광풍을 가장 먼저 맞은 세대다.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세대 내 양극화의 쓴맛을 가장 먼저 맛본 세대다."

'그들'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의식이 '진보성'으로 모아진 데는, 개인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들의 답을 '구조 개혁'과 '복지' 그리고 이를 실현해 줄 범진보 정치 세력에게서 찾게 된 자연스런 과정이 놓여 있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움트고,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벼려진" 진보성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저자가 찾아낸 '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다. 아마도 당신이 '그들'에 속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이 책의 절반에 담긴 내용들이다.

이어 저자는 '그들'의 정치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도 짚고 있는데, 이는 앞서 꼽았던 '개방화된 정치 구조'와 관련이 있다. 어쩌면 이 정치문화적 배경이 '그들'을 이해하고, 또 '그들'의 정치 역량을 널리 퍼뜨리는 데 더 중요할지 모른다. 또한 최근 소셜네트워크라는 공간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지를 '그들'의 사회문화적 경험을 토대로 분석해내고 있는데, 이 역시 '소통'이란 과제를 풀어가기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리모델링 세대'에게 거는 희망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들'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다. '리모델링 세대'. 스스로 거듭난 세대이자, 우리 사회를 거듭나게 할 세대라는 뜻이다. 젊은이들에게 덕담이나 건네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지금껏 '그들'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는 이유가 있다.

"'리모델링 세대'가 열어제친 새로운 정치문화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정치집단과 엘리트 운동권 집단이 대중을 동원대상으로 삼는 3김시대의 정치문화가 아니라, 개방화된 정치집단과 능동적인 유권자가 공동으로 정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정치문화에 착목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최근 결성된 '경제민주화 2030연대'가 떠올랐다. 이들은 2030세대가 살아갈 사회를 직접 선택하고, 또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지닌 새로운 사회 개혁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들은 2030세대의 노동권과 주거권, 그리고 교육권과 생활안전망 확보 등을 위해 SNS를 통해 '청년권리선언 응답하라 2030'에 함께 할 선언자들을 모으고 있으며(19대 국회에 '청년경제민주화법' 제정을 제안할 계획), 최근에는 2030세대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새누리당사 앞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나가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대선 후보들만을 쳐다보는 가운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당당하고 신명나게 우리 사회의 리모델링에 나선 이들에게서 나는 저자가 말한 '그들'을 발견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기대와 끝 모를 냉소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에게 다시 희망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어떻게 해야 그 희망을 현실의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책, <30대 정치학>. 혹시 당신도 우리 정치의 '리모델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권한다. 나이 따윈 상관 없다. 당신도 얼마든지 '그들'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30대 정치학 -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문화, SNS가 만들어낸 리모델링 세대> (김종배 씀, 반비 펴냄, 2012.09, 1만3000원)



태그:#30대 정치학, #김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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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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