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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자 대통령> 겉표지
 <세계의 여자 대통령> 겉표지
ⓒ 프리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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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TV를 보는데, 인도를 방문한 호주 총리 줄리아 길러드가 잔디밭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간디 추모공원에서 하이힐이 잔디에 걸려 넘어졌던 것. 그녀는 몇 달 전에도 하이힐을 신고 넘어지는 굴욕을 겪었다고 한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로 영국 여왕이 최고 통치권자이다. 실질적인 권력자는 총리지만 말이다. 인도는 지난날 영국의 식민지였고, 간디는 인도 독립의 상징적 존재다. 그러니 호주 총리의 간디 추모공원에서의 하이힐 굴욕이 인도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는 우리나라와 호주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2011년 4월에 방한한 적이 있고, 마침 17인의 여자 대통령(총리 포함)을 소개하는 <세계의 여자 대통령>(박영만 씀, 프리윌 펴냄)이란 책을 읽던 중이라 더욱 솔깃하게 와 닿았던 호주 총리의 하이힐 굴욕이었다.

줄리아 길러드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미 임기를 다한 여성 지도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하필 간디 추모공원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그런지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사의 상징인 자와할랄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의 삶이 새삼스럽게 와 닿았다. 책의 두번째 주인공이라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만났던 인디라 간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이미 12살에 '몽키 브리게이트'라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어 독립 운동에 참여한 정치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인도 독립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인디라 간디 말이다.

네루가 감옥에서 쓴 <세계사 편력>의 첫 장은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인디라에게'라고 되어 있다. 네루는 그 책에서 '내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너에게 어떤 선물을 해 줄 수 있겠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네가 처음 잔 다르크를 읽고 얼마나 매혹되었었느냐? 그녀처럼 활약하고자 하는 너의 간절한 소망을 채 억누르지 못했던 것을 너는 기억하고 있니?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 그들은 평소에는 빵과 버터, 먹고 살 걱정, 그리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큰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확신을 갖기 시작하면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영웅이 되며, 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서 큰 전환기가 찾아온단다. 우리가 인도의 투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도의 명예를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여자 대통령>에서)

<세계사 편력>은 네루가 옥중에서 인디라 간디에게 쓴 편지 196편을 엮은 것이다. 네루는 독립운동을 하던 중 1921년 말에 투옥되는 것을 시작으로 28년간 8차례에 걸쳐 수감되었다. 네루가 <세계사 편력>을 쓴 것은 1930~1931년. 이때 인디라 간디의 할아버지와 어머니도 수감되었다. 때문에 13세의 인디라 간디는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딸이 새해나 생일 등도 혼자 보내야 하는 것이 안쓰러운 한편, 혼자인 딸에게 무언가든 주고 싶은 마음에 네루는 편지들을 썼을 것이다.

네루는 편지를 통해 역사와 세계사를, 지식인으로서 지키고 지녀야 할 양심과 진보적인 사고와 행동을, 힘없는 약자와 민중에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인도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민족주의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당시 인도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를 침략, 강탈한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또한 몽골과 칭기즈칸에 대해 언급하며 아시아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가하면, 조선의 유관순 열사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용감한 여성이라고, 3·1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디라 간디의 삶을 만나는 동안 새삼 부모가 자식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거울이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의 인도 독립 의지와 힘없는 약자나 민중에 대한 양심과 행동을 보고 자란 소녀는 훗날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어 인도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하게 된다.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낼 정도로 인도인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말이다.

인디라 간디는 아주 어려서부터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같이 했다. 그녀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는 북인도 카슈미르 지역에 기반을 둔 부유한 브라만 계급의 자손으로, 처음에는 지배국 영국에 유학하여 전형적인 식민지 엘리트로 교육을 받았으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런데 그가 민족주의자로 변모한 것은 '잘리안왈라 사건'을 겪으면서이다. '잘리안왈라 사건'은 1919년 봄, 인도의 잘리안왈라 공원에서 비폭력 시위를 벌이던 인도인들을 향해 영국군이 무차별 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영국군의 갑작스런 총격에 산책 나온 주민들은 우물로 뛰어 들었고, 인파에 휩쓸려 밟혀 죽은 사람까지 4천여 명이나 희생된 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네루는 분연히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하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세계의 여자대통령>에서).

<세계의 여자 대통령> 두 번째 인물 인디라 간디 편에는 인도의 독립과 인디라 간디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네루의 일생과 역할을 시작으로 인디라 간디의 인생 역정과 통치사가 파노라마처럼 소개되는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주인공의 이야기에 앞서 그 나라의 개요와 대략적인 역사부터 설명한다.

이어 주인공이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떻게 정치에 입문했는가. 어떤 시련과 좌절을 겪었으며 어떤 업적을 남겼으며 어떤 도전을 했고 어떤 영광을 얻었는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가 등을 잔잔하게 소개한다. 이런지라 주인공 인물에 대해서는 물론 그 국가의 역사와 세계사까지 함께 접할 수 있다.

<세계의 여자 대통령>은 총리를 두 번이나 지냈으며 아들을 총리로 키운 '인디라 간디' 외에 식료품점 딸에서 강력한 통치술로 위기의 영국을 구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일개 무용수에서 대통령까지 되지만 '무기력한 여자 대통령'이란 꼬리표와 함께 쿠데타로 쫒겨난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사벨 마르티네스 페론',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을 가난과 고통의 수렁으로 떨어뜨린 방글라데시의 총리 '베굼칼레다 지아', 남편이 암살당하는 비운을 극복하고 '필리핀 민주화의 기수'로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었던 '코라손 아키노', 죽음으로(결과적으로) 남편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파키스탄의 총리 '베나지르 부토' 등 17인의 세계 여자 지도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다.

사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강력한 대선 후보 3인 중에 여성 후보가 끼어 있는 터라, 이 책 <세계의 여자 대통령>을 읽어보라 권함이 혹자들에게 특정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도 들릴지도 몰라 상당히 조심스럽다. 아쉽게도 글을 쓴 의도와 전혀 달리 읽히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글을 쓰는 동안 수시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여자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와 같은 말에 결코 동감하지 않는다. 여자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선거철만 되면 단지 같은 여성이란 이유로 여성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여성들을 꼭 만나게 된다. 왜 그리 여성 대통령을 원하는가. 그 이유를 들어보면, 여러 이유 중에 여성들의 입장과 사정을 남자들보다 잘 아는 만큼 여성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그만큼 많이 나올 거라는, 여성들의 권위와 위상이 그만큼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것도 들어 있다.

그런데 글쎄? 그렇다면, 이런 논리와 이유대로라면 내가 바라는 대통령의 우선 조건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라는 결혼을 해 자식 낳고 그야말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본, 나처럼 수시로 돈에 찌들려 본 이력도 있는, 그래서 서민 가정들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몸으로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정치적 위치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에는 어떤 여성 지도자들이 있(었)을까? 그녀들은 어떻게 한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지도자의 역할과 자격은 무엇일까? 한 국가의 권력을 쥐었던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등을 알아가는 한편, 우리의 여성 대선 후보들의 자격이나 삶 등을 책 속 여성 지도자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디 이 책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어떤 역할과 도움이 되길 바라며.

덧붙이는 글 | <세계의 여자 대통령>ㅣ박영만 씀 ㅣ 프리윌 펴냄 ㅣ 2012.9ㅣ14000원



태그:#인디라 간디, #여자 대통령, #여자 총리, #네루, #잘리안왈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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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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