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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라서 '교사의 전문성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수업을 잘 한다'는 개념만 놓고 보더라도 좋은 수업의 기준을 정할 수 없거나, 기준을 정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수업과 더불어 교사전문성의 또 다른 주요 영역으로 언급되는 생활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생활지도의 효과는 종종 아주 늦게 나타난다.

수업이든 생활지도이든, 이미 교사인 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보다 아이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터이니 당장의 수업지도의 어떤 지표, 생활지도의 무슨 지표를 놓고 교사의 전문성을 따진다는 일 자체가 교육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좋은 수업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동료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에게 판단하도록 하고 있는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기보다 그들을 탈전문화로 이끌 가능성이 많은 제도이다.

한편, 교사의 연수이수 시간을 따져 성과급이나 학교평가에 반영하는 일 따위는 참으로 한심하다. 더 나아가 개별 교사들의 연수이수 시간을 학교평가에 반영한답시고 모든 교사가 일정 시간 이상의 연수를 이수하도록 유도 내지는 강요하는 행위는 상식을 벗어난 잘못된 일이다. 일정 시간 이상의 연수에 참여하면 교사의 전문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래서 잘못되었다. 교사의 전문성은 연수 몇 번으로 획기적으로 향상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교사들의 연수이수 시간이 증가하고 있다. 정말로 연수이수 시간과 교사의 전문성이 비례하는지 과학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교사의 연수를 성과급이나 학교평가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눈에 보이는 성과만 인정한다는 '투입-산출 개념'의 연장이다. 그것에 발밪추어 민간 교육연수원에서도 이런저런 홍보문구로 교사들의 전문성을 책임진다고 광고한다. 아침마다 메일함을 열면 이러저러한 화려한 카피로 교사들의 자질을 한껏 높여주겠노라는 광고메일이 쏟아진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 그것을 둘러싼 교사와 학생의 교감이 이렇게 기계적으로 치환되고 산술적으로 결과되어도 좋은 것인가? 교직원연수, 자격연수, 직무연수, 원격연수, 자율연수, 역량강화 워크샵, NTTP, 연구년, 연구회활동, 수업컨설팅 등.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들 속에서 교사들은 갈피를 못 잡는다. 오히려 이런 형식적 연수 프로그램들의 난무는 교사들에게서 사유할 시간을 빼앗아 간다. 

나는 주장한다. 전문성 향상을 구실로 업무와 수업, 생활지도에 지친 교사들을 내몰라 소진시키지 말고 그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어서 좋은 책과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게 하라. 좋은 책과 좋은 경험, 풍부한 사유로 교사의 안목과 통찰력을 높이게 하는 것, 그래서 높아진 안목과 통찰력으로 아이들과 만남이 이루어지게 돕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요구되는 교사전문성의 핵심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전문성이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원능력개발평가와 같은 자질의 계량화, 무질서하게 막개발되는 연수 프로그램의 홍수가 마치도 교사들에게 더욱 많은 연수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 차리고 볼 일이다. 이 착시를 걷어내야 비로소 교사가 읽어야 할 책, 만나야 할 사람, 교실에서 교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태그:#교사, #교사전문성, #교사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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