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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레오파드> 겉표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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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물의 묘미 중 하나는 변해가는 (또는 변하지 않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이다. 범죄소설에서 주인공은 탐정 역할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이들은 시리즈 속에서 뛰어난 수사력으로 계속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사건 해결이 이들에게 꼭 좋은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범인 검거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봉급도 오르고 진급도 빨리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만큼 많은 범죄현장을 접하고 많은 사이코 살인마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피범벅이 된 살해현장과 난도질 당한 시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탐정이나 형사들은 누구보다도 많이 이런 현장을 접한다. 게다가 정상과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을 가진 살인범도 상대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사관의 내면도 조금씩 변해가게 될 것이다.

홍콩으로 떠난 강력반 형사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가 창조한 형사 해리 홀레도 작품 속에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2009년 작품 <레오파드>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8번째 편이다. 전편인 <스노우 맨>(관련 기사)에서 해리 홀레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해서 검거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심신 양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긴 셈이다.

수사에 지치고 절망한 해리는 오슬로 경찰청에 사표를 내고 혼자서 홍콩으로 잠적한다. 그곳에서 도박과 약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하루하루를 노숙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살인범을 마주해야하는 현실, 살인범을 추적해야하는 긴장에서 도피한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또다른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벌써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죽었다. 피해자의 입안에서 발견된 스물네 군데의 자상이 사망의 원인인데, 경찰은 어떤 무기나 기구가 살인에 사용되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연쇄살인범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오슬로 경찰청에서는 여형사 카야를 홍콩으로 파견한다. 그곳에 가서 해리를 데려오라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연쇄살인범을 상대할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해리이기 때문이다.

카야는 홍콩에서 형편없이 변한 해리를 찾아낸다. 아편과 도박으로 모든 돈을 날리고 여권까지 잃어버린 해리는 노르웨이로 돌아가자는 카야의 제안을 거절한다. 자기는 이곳이 좋고 그래서 여권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한때 강력반의 빛나는 스타였지만 이제는 약물중독에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해리 홀레. 카야는 연쇄살인범을 상대하기 위해서 해리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범과의 대결

무너져가는 주인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독자들은 얼마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범죄소설을 읽으면서 형사에게 (또는 살인범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독자들은 형사가 무사히 범인을 체포할 수 있기를,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의 희생만을 치르고 범인을 잡기를 원한다.

경찰청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싸움이나 주도권다툼에서도 주인공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금상첨화다. 해리 홀레도 이전에는 그런 형사였다. 그러다가 '스노우맨'과의 대결이 그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타락하는 사람들에게 이유가 있는 것처럼, 해리도 변명 비슷한 것을 늘어놓는다. 피로 흥건한 사진과 보고서를 보는 일은 이제 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것이 해리의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된다. 잔인한 살인현장과 시신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해리에게도 그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시리즈물을 읽다보면 사건 자체 또는 추리보다도 인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범죄소설은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니, 범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해리가 작품 속에서 뛰어난 형사로 복귀하지는 못하더라도 더이상 망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레오파드> 요 네스뵈 지음 / 노진선 옮김. 비채 펴냄.



레오파드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비채(2012)


태그:#레오파드, #해리 홀레, #요 네스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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