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의 경제관련 핵심 주제는 '경제 민주화'이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를 누가 선점하느냐를 놓고 말이 많다. 이것은 우리 헌법 제119조 2항에 있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내용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경제 민주화의 이유와 논거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경제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으면, 정치의 민주주의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정치와 더불어 우리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궁극적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상 거의 모든 사회 변혁은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늘날 벌어지는 수많은 정치적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의 수사(修辭)로서 경제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경제 민주주의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필연적 일부인 셈이다. 결국 경제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더 완전하게 만들려면 갖추어야 할 하나의 필요조건이다.

저명한 미국 예일(Yale)대의 정치,경제학자 로버드 달(Robert Dahl)은 그의 저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결국 직,간접적으로 정치권력의 불평등을 야기하며, 그 결과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민주주의론이 가지는 훌륭함은 그것이 현실에 대한 파악이라는 사회과학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평등이라는 정치적 이상을 추구하며 현실을 새롭게 성찰하는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기업권력과 경제적 평등의 문제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시민적 의식만을 강조하는 분파와, 자유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결여된 채 자본주의 반대라는 급진적 주장을 외치는 분파 모두 달(Dahl)의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즉 궁극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극복하려는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이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로버트 달의 발언에서 보듯이,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가져오는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이다. 그러나 단순히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해결책은 복지국가"라는 결론으로 빠져들기 쉽다. 복지 정책 강화에 반대할 필요는 없지만, 경제 민주주의의 문제를 복지로 환원할 수는 없다. 복지는 단순히 분배의 정의를 조정하자는 것으로 경제 민주주의는 복지를 통해 분배 불평등을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조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논의의 대부분이 재벌 및 대기업의 시장 장악 과 중소기업과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등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익이 특정 경제 주체로 과도하게 구조적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온당한 것일까? 순환출자나 계열 금융사를 통해 재벌 총수 일가가 직접 소유한 지분의 몫보다 훨씬 큰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인가도 논의될 수 있다.

기업이익에 대한 이해집단의 바람직한 성과배분도 중요 논의 대상이다. 재벌이 거대 집단의 힘이나 금권을 휘둘러 시장 경쟁의 자연스런 작동을 방해한다면, 공정 경쟁의 논리의 적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청,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 불법 세습 또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은 기존의 법규만 철저히 적용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로버드 달은 "제한된 엘리트가 시민의 동의 없이 운영하는 현재의 국제 시스템은 독재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값하지 않으며, 그 상태에 적합한 말도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직한 민주주의로 다음의 조건을 제안한 바 있다. 1) 평등한 투표권 2) 효과적 참여 3) 계몽된 이해(elightened understanding) 4) 인민에 의한 의안의 최종적 통제 5) 포괄성(inclusiveness) : 인민에는 떠돌이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판명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성인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중요 담론인 경제민주화는 향후 우리 나라의 방향을 결정할 주요 과제다. 바른 이해와 정책제시가 필요하며, 선거의 주요 이슈로 국민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있다. 달Dahl)의 이상과 현실이 조화된 진보적 민주주의론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