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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대형마트는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우선 참 풍요롭고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국적을 초월하여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 혹시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있다면 고객만족 센터를 찾아가 문제제기를 하면 된다. 그러면 매우 빠르고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런 풍요로움과 편리함, 철저한 서비스는 대형마트가 가진 강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면에 많은 어두운 모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형마트는 결과적으로 중소상권을 위협하는 존재다. 또한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근로자들의 처우는 매우 낮은 편이다. 저임금에 비정규직 문제에, 대형마트 근로자들의 많은 수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 지나친 상업주의와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점도 대형마트의 어두운 면이다. 이렇듯 우리는 대형마트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화려함과 편리함, 좋은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마트를 외면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어떻게 본다면 대형마트는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문명의 이기와 풍요로움, 그 속에 감추어진 소외와 여러 가지 문제점들, 이것이 '현재', '이곳'에 있는 대형마트의 씁쓸하고 어딘지 불편한 속성이다.  

장사할 의지가 전혀 없는 대형마트, '천리마마트'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형마트와는 조금 다른 대형마트도 있다.

경기도 봉황시에는 장사할 의지가 전혀 없는 대형마트인 천리마마트가 있다.

장사할 의지가 전혀 없는 마트, 천리마마트
 장사할 의지가 전혀 없는 마트, 천리마마트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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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삼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고 있는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2010년 8월 13일~, 매주 금요일 연재). '경기도 봉황시'라는 있을 법할 공간에, 있을 법한 대형마트인 '천리마마트'는 결과적으로 '장사할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어딘지 수상한 냄새를 풍긴다. 천리마마트는 '대마그룹'이라는 재벌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형마트이다. 하지만 적자투성이에 회계도 엉망진창이며, 상당히 많은 수의 상품이 증발하고 있다.

체인점을 표방하고 있지만 본점 하나만 있다. 대마그룹 직원들에게 천리마마트로의 발령은 '유배'나 '권고사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화 속 직원들의 수군거림을 통해서 이곳은 오너일가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명목뿐인 대형마트란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정복동과 문석구
 정복동과 문석구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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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남들 하라는 대로 공부'하여, '서울에 있는 그럴듯한 대학'을 나왔으나 몇 년 간이나 취직을 하지 못했던 '문석구'가 입사한다. 취직의 기쁨도 잠시, 그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그만두려 했으나 위로 정직원 세 명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입사 석 달 만에 점장으로 눌러앉게 된다.

여기에 대마그룹의 중역이었으나 '적절치 못한(?)' 직언으로 좌천된 '정복동'이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문석구는 그룹의 중역이었던 정복동에게 많은 기대를 걸지만, 정복동은 어떻게든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해서 대마그룹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이를 위해 정복동은 '아마존 원주민들', '명예퇴직자', '불량배', '무능한 로커' 등을 가리지 않고 신입사원으로 뽑고 온갖 기상천외한 경영을 일삼지만, 그의 온갖 시도는 항상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상황적 아이러니와 뒤집기, '천리마마트'의 웃음 유발 요소들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웃음 유발 요소는 굉장히 다양하며 복합적이다. 우선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상황적 아이러니이다. 원래 아이러니란 표면상의 진술된 말과 실제의 의미 사이에 대조가 성립된 결과를 뜻한다. 아이러니의 일종인 상황적 아이러니는 일상 속에서 인물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펼쳐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설정은 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정복동의 책동이 계속 이어지지만 결과적으로 천리마마트의 매출은 눈부시게 성장한다는 상황적 아이러니에 있다.

정복동의 의도와는 달리 천리마마트의 매출은 급성장한다.
 정복동의 의도와는 달리 천리마마트의 매출은 급성장한다.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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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웃음의 요소는 풍자와 해학이다. 풍자란 웃음의 대상이 주로 사회적 결함이나 악덕, 부조리를 가지고 있어 이면에 날카롭게 비꼬는 공격의 웃음을 유발하는 기법을 말한다. 표면적인 풍자의 대상은 부조리한 인물들이다. 정복동을 좌천시킨 '대마그룹 회장', 그 회장의 아들 '갑', 정복동을 확실히 망하게 하려는 '권영구'에 대한 시각과 이야기 전개는 풍자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면적인 풍자는 만화의 기본 공간인 '마트'가 가진 부정적인 속성을 공박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밖에도 이 만화의 웃음에선 해학을 찾아볼 수 있다. 해학이란 대상에 대한 호감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익살의 웃음을 유발하는 기법으로, 채용된 사원들의 면면이라든가 회차 간간이 등장하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만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뒤집기는 주된 웃음 유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보통 대형마트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고객을 왕처럼 모시는 서비스'를 들 수 있는데, 천리마마트에서는 이것을 거부하는 뒤집기를 시도한다.

모든 점원들이 '상감마마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고 있으며, 고객 불만 센터 담당자는 왕좌에 앉아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고 '선정'을 베푼다. 혹시라도 점원을 괴롭히려는 캐릭터가 나타날라치면 박해받기 일쑤이다. 이러한 뒤집기는 소비자와 서비스 직 종사자와의 관계를 전복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한다.

천리마마트의 고객만족센터
 천리마마트의 고객만족센터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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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구들장 계산대'는 황당함과 함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점원들을 생각하게 하는 뒤집기이고, 옆 마트가 더 싸다고 솔직히 밝힌다는 설정은 자기 마트가 10원이라도 더 싸다고 경쟁하는 실제 마트들에 대한 뒤집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털이 나는 차 왁스', '이어도 지사', '현금 선물세트', '10만 알바 양성설' 등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로 역시 웃음을 유발하는 데 힘을 보탠다.

현찰 선물세트
 현찰 선물세트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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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구단', 소외된 자들의 반란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캐릭터들은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밀려난 이들로 볼 수 있다. 주인공 정복동은 좌천된 기업 중역이고, 문석구는 수 년간 취업난을 겪다가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하지만 그 이후로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걷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대표한다. 아마존에서 온 '빠야족'은 설정이 아마존 원주민이지 실상은 다문화 사회에서 소외된 비선진국 출신의 외국인들을 연상하는 캐릭터이다.

이밖에도 '동네 깡패'나 '명퇴자', '무능력한 로커' 역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주류를 뜻한다. 이들이 함께 모여 천리마마트에서 사람 대접을 받으며,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나 천리마마트를 키워나가는 모습은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리게 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좌충우돌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간다는 설정은 또 하나의 뒤집기 전략으로 이들을 소외시킨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야유이며 반항이다.

천리마마트의 직원들
 천리마마트의 직원들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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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것에 반해 사실은 일차원적이다. 캐릭터들의 성격은 시종일관 처음에 소개된 것 그대로이다. 조금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그나마 정복동과 문석구 둘 정도이며, 이조차 캐릭터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변화일 뿐이다. 캐릭터들의 단순한 성격은 한계로 볼 수 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낙관주의나 웃음을 유발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일차원적인 캐릭터를 보완하며 이야기가 안정적으로 전개되는 데 기여한다.

정복동과 권영구
 정복동과 권영구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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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 웃음, 사회의식을 드러낸 수작

2010년 8월 시작한 웹툰인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현재 '시즌2'에 돌입했으며 120회를 넘어가고 있다. 최근의 내용은 다소 초기의 비판의식보다는 소동극에 웃음의 무게중심이 향해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활발하고 흥미로운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웃음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면에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식이 드러난 것도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과 관련해 작가인 김규삼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 비판을 목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며 사회비판적 시선으로 작품이 읽히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원래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는가와 관계없이 이 작품이 읽히고 있는 '현재', '이곳'이라는 사회적 맥락과 작품의 주 무대인 '마트'가 가진 속성은 충분히 작품에 '사회고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풍자와 뒤집기 전략을 통해 굉장히 날카로운 속성을 띠고 있다. 

이밖에도 생각할 수 있는 이 작품의 강점은 역시 풍부한 콘텐츠성에 있을 것이다. 일차원적이기는 하지만 친근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는 상품화하기에 적합하고, 상황적 아이러니와 여러 복합적인 웃음 유발 요소를 가진 드라마는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과, 다른 매체(만화영화 혹은 드라마)로 변형되어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실제로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 중이며, 시트콤으로도 제작된다고 한다).
최근 시즌2에 돌입한 천리마마트
 최근 시즌2에 돌입한 천리마마트
ⓒ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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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상황적 아이러니', '풍자'와 '해학'의 개념은 <국어교육학 사전>을 참고하였습니다



태그:#웹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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