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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점포. 정전훈련 중인데도 장식등이 환하케 켜져 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점포. 정전훈련 중인데도 장식등이 환하케 켜져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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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훈련이요? 불 꺼진 가게를 아직 못 봤는데…."

10일 오전 10시께 기자와 만난 일본인 관광객인 혼마씨가 이같이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가게들이 조명을 켜서 번쩍번쩍 했다, 정전훈련을 하는지 전혀 못 느꼈다"며 "정전훈련을 하지 않는 일본의 거리보다 밝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20분 동안 전 국민을 상대로 정전대비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2012년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예비 전력이 200만㎾ 미만이 돼 '경계' 이상의 전력 경보가 발령됐을 때를 가정해 가정·기업·공공기관 등에서 대응 요령을 익히는 게 목표다.

정전훈련이 실시되면 가정·상가·사무실에서는 모든 전기 사용을 중단하는 '자율정전'에 들어간다. 상가는 불필요한 조명을 끈 뒤 난방기기 및 전기제품의 사용을 중지하면 된다. 자동문과 에어커튼도 가동을 멈춰야 한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한 서울 중구 명동 상가들의 경우 자율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40여 개 점포 중 서너 곳만 부분 정전... 관리직원 "기자 다니니 조명 내려라"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명동역 지하상가는 훈련 20분 전부터 정전훈련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영업 중인 점포를 돌아다니며 협조를 부탁했다. 스피커에서는 "난방장치와 장식등을 차단해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오전 10시가 되자 경보가 울렸다. 상인들은 점포 조명을 아예 끄거나 일부 조명만 켠 채 영업을 이어갔지만, 일부 가게는 조명을 전부 켠 채 평소처럼 손님을 받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조명이 켜진 가게마다 들려 "소등해라, 간판 불만이라도 꺼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가 다니니 얼른 조명을 내려라"고도 재촉했다.

명동거리 점포들의 참여율은 더욱 낮았다. 두 차례 경보가 울렸는데도 대부분 평소처럼 전력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명동역 6번 출구부터 명동예술극장 사이의 거리 1층에 위치한 점포 중 영업 중인 40여 곳은 전부 조명을 환하게 켜고 있었다. 서너 곳만 일부 조명을 내렸다.

특히 화장품 가게들은 간판과 바깥 장식등까지 켜 놓았다. 명동에서 제일 큰 화장품 가게인 ㄱ사는 자동문 가동만 중단했다. 가게 직원은 "정부 사람들이 방금 들러 정전훈련 협조를 부탁했다"고 귀띔했다.      

명동예술극장 인근 은행 두 곳의 참여율도 다르진 않았다. ㄱ은행은 조명과 난방을 전부 켜두고 있었고, ㄴ은행은 창구 한 곳의 조명만 꺼두었다. ㄴ은행 관계자는 "(정전훈련과 관련해) 딱히 통보받은 바 없다"며 "그래도 일부 조명을 끄고 참여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명동예술극장부터 눈스퀘어 사이 거리에 입점한 몇몇 점포들은 정전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위치한 화장품 가게 12곳 중 세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게 안 조명을 내린 채 손님을 받았다.

시민 대부분 정전훈련 눈치 못 채... 상인들 "불 꺼두면 손님 안 온다"

10일 오전 10시 10분 서울 중구 명동거리. 정전훈련 중인데도 간판 조명이 켜져 있다.
 10일 오전 10시 10분 서울 중구 명동거리. 정전훈련 중인데도 간판 조명이 켜져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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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율이 저조하다보니 명동을 찾은 시민들도 정전훈련 중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김장윤(35)씨는 "오늘 정전훈련이 있는지도 몰랐다, 거리를 걸어오면서 불 꺼진 가게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명동의 경우 지난 2012년 여름 정전훈련 때도 참여가 제대로 안 이뤄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상인들은 영업을 해야 하므로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상인(음식점 운영)은 "정전훈련을 하라면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불을 꺼놓고 있으면 손님이 안 올 수도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상업지구의 경우 대대적인 정전훈련 보다는 평소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는 대응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호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무턱대고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전시행정'"이라며 "'새는 전기' 사용을 제한하도록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절약정책연구실장은 "상업 하시는 분들은 생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강남·명동 등 전력 사용량이 몰리는 상업지구의 경우 낮에 간판을 켜는 등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정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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