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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권 부정' 헌법 9조 개정해야"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9일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시키고 교전권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헌법 9조 개정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집단안전보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남기는 것이 좋다"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무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유엔 차원에서 안전보장을 실행하는 '집단 안전보장'에서 일본이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지 논란이 남는다"며 헌법9조 개정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거론한 집단 안전보장은 유엔 헌장 제7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7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특정 국가에 대해 경제 제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 집단안전보장의 일환으로 유엔군을 구성해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입니다.

현재 일본은 자위대를 가지고 있지만 '정식군대'가 아닙니다. 1947년 맥아더 점령군사령부때 만든 평화헌법 9조 때문입니다. 그해 11월 3일 공포한 평화헌법 9조 1항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와 2항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패전국 일본' 현대사, 헌법 9조 개정을 위한 역사

즉,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군대 없는 나라는 '보통국가'가 아닙니다. 일본 극우와 일본정부는 일본을 보통국가 즉, 군대를 보유하기 위해 긴 세월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헌법9조를 무력화시켜왔습니다.

"일본도 국제법상으론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 있지만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일본을 직접 침략하는 상대에 대해서만 대응할 수 있다." - 1968년 일본 정부 국회답변 '방어목적 교전권'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는 있지만 행사할 수는 없다." - 1981년 일본 정부 '교전권 보유'
무력공격사태법, 자위대법 개정안, 안정보장회의설치법 개정안 통과 - 2003.06 '유사법제'
'이라크파병-2004년 '이라크복구지원특별조치법'
'정보수집 전문 부대'창설 - 2004년
'무기수출 3원칙 대폭완화 - 2011.12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법 개정' - 2012.06
'원자력 이용의 안전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원자력기본법' 개정 - 2012.06

패전국 일본 현대사는 9조 개정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군대보유였습니다. 심지어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에서 "조금 더 젊은이들에게 인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자위대에 들어가도 좋고, 경찰에 들어가도 좋다. 무언가 무상(無償)의 행위를 하는 경험을 하는 편이 좋다. 실제로 (징병제를) 할지 안 할지는 동료와 상담한다"며 '징병제'까지 주장했었습니다.

군대 없는 일본, 극우 이시하라 "징병제"

자민당도 지난 총선 당시 "헌법(9조 포함)을 개정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도 제정할 것"이라는 공약을 제시했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과 그가 중심으로 만든 오사카유신회도 평화헌법 9조를 개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했었습니다.

특히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법'은 우주개발을 평화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삭제하고
"국가 안전 보장에 도움이 되도록 진행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규정한 것은 앞으로 '정찰위성', '미사일방어(MD)' 따위를 통해 일본 우주개발은 '평화'가 아닌 '군사용' 목적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원자력기본법' 개정 역시 마음만 먹으면 '핵개발'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로켓발사와 핵무기 실험은 맹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우주를 군사용으로, 핵무기는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일본의 '이중성'입니다.

법만 개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를 '국제평화협력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국외에 파견했습니다. ▲유엔캄보디아잠정기구(1992.09-1993.09)1216명 ▲유엔모잠비크활동(1993.05-1995.01)154명 ▲ 르완다난민구원활동(1994.09-1994.12) 378명 ▲유엔동티모르지원단(2002.05-2004.06) 2300명 따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골란공원(1996년~),아이티(2010년~),동티모르(2010년~), 남수단(2011년~)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상 자위대, 근해를 넘어 대양자위대로....

뿐만 아니라 미군과 인도·아세안·호주 등 아·태 각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꽂은 자위대 군함과 항공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와 일본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자위대 국외진출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5일 <동아일보>는 "일본 정부가 먼 공해상 미군 함선이 공격받는 경우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에 포함해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날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여러 관계자는 "자위대가 미국 본토에서 행동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괌 정도는 방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 자위대 근해를 넘어 대양자위대를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해상자위대 활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한반도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7년 9월 12일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전투함 2척 등 함정 3척이 훈련차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욱일승천기'를 당당히 단 채였습니다.

군국주의 상징 '욱일승천기'달고 당당히 대한민국 영토 입항...

2010년 12월과 2011년 1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견하는 방안을 한국 측과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와 방위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지만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고 강변했습니다. 19세기 말 청일전쟁과 20세기 초 러일전쟁 때 일본제국주의가 같은 방법으로 들어와 결국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패전국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120~30년 전 조선에 군대를 주둔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화하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6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했었습니다. 당시 협정 체결 추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과거 논문에서 한반도 유사 시 일본 자위대 개입을 당연시했던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었습니다.

< MBN >는 지난해 7월 4일 '"자위대 개입 인정"…청와대 김태효 논문 논란' 제목 기사에서 "지난 2001년 기고한 한 논문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2006년 논문에서는 일본 자위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를 편협한 사고로 규정하기도 했다"고 보도했었습니다. 120년 전 조선 역사를 안 다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극우  총리가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은  아베 가족사입니다. 아베는 '기시 노부스케'(きし のぶすけ, 1896년 11월 13일 ~ 1987년 8월 7일)-본명은 사토 노부스케(佐藤信介)' 외손자입니다. 기시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에서 최고위직인 국무원 총리을 지냈다가, 일본 패망 후 A급 전범 용의자였지만,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었습니다. 1955년 자유민주당 간사장, 1956년 외무상, 1957년 2월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A급 전범과 절친 박정희...그리고 외손자 아베

특히 기시는 박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자신의 회상록에서 "내가 박정희씨와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박정희씨의 얘기는 이런 거였어요. '우리 젊은 육군 군인들이 군사혁명에 나선 것은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인데, 그때 일본 메이지유신의 지사들을 떠올렸다'는 겁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글에서 "기시가 만주국을 사실상 설계했고,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으로 만주군에서 복무했으며, 김일성은 일제와 만주국 괴뢰정권을 상대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점을 들어 동아시아에 만주국 시절의 대립구도가 부활했다"고 말했습니다(2012.12.21 <한겨레> 신유신의 밤, 그대 곁엔 누가 있는가).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와 현무암 훗카이도 대학 교수가 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2012.09) 제목의 책에는 "박정희와 노부스케. 이 둘의 인연은 일본 제국주의가 낳은 기형아, 만주국에서 시작됐다"면서 "만주국의 통제경제 실험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기시 노부스케의 아이디어는 훗날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재현됐다"고 적혀 있어, 두 사람의 뿌리가 만주국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주국 인맥은 박정희의 독재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며 "박정희의 '친일행적'은  단순히 친일 군인이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쿠데타 이후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상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주국에서 실험했던 '통제경제, 통제 사회'였다는 게 본질"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이런 기시에게 박정희는 1970년 일등수교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뿌리를 만주국에 둔 두 사람은 칭찬하고, 훈장을 수여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아베 역시 지난 2월 22일(현지시각)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나의 할아버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친(best friend)이었습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극우 아베, 북한을 비난 것...아이러니

기시와 박정희는 절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시와 대한민국은 절친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A급 전범 외손자이면서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화하는 극우 일본 총리인 아베의 발언과 행보는 한반도 북녘 3대세습을 한 김정은 못지 않게 한반도 평화에 걸림돌입니다. 아베 외조부 기시는 전범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옥중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냉전(Cold War)은 조만간 열전(Hot War)으로 변할 것인데, 비록 일본이 이번 전쟁에서 고배를 마셨다고는 하나 동양에서 으뜸가는 소질을 지닌 민족으로서 우리는 모름지기 스스로가 맡아야 할 세계사적 임무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식견과 포부, 용기와 단행력을 겸비한 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출현이 기다려진다.'(1947년 9월20일)
'동아시아 전체의 적화를 몰고 올 중국 공산군의 제패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달러와 무기원조로만 장개석을 돕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미국은 미국 자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모택동을 제압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미국 자신의 군대라는 것은 일본의 의용군으로 편성하는 것이 타당하다.'(1948년 11월 4일)-2009.09.03 <한겨레> [길을찾아서] 'A급 전범' 기시, 미국 업고 화려한 재기 / 정경모

기시가 말한 용기와 단행력을 가진 지도자란 바로 그 자신이고, 미군을 일본 의용군으로 편성하라는 주장에 대해 외손자 아베는 헌법9조를 개정해 '국방군'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런 아베가 전쟁에 광분하는 북한 김정은을 비판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면서 비극입니다.


태그:#아베, #일본자위대, #평화헌법9조,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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