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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는 '형아'가 있습니다. 저보다 두세 살 위죠. 오랜 지인이라 허물 없이 지내고 있는 사이 입니다. 그 형을 안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 형 이름은 '이영도'.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멀대같이 큰 키에 비쩍 마른 체형. "키 크고 안 싱거운 사람 없다"는 옛 속담이 틀림없는지 좀 싱거운 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솔직한 면도 저는 좋게 보입니다.

저는 1988년 1월경 울산 동구에 위치한 재벌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인 목재가공회사에 돈 벌러 들어갔습니다.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그곳에도 노조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하는 짓거리가 친기업 노조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어용노조였지요.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소리 질렀습니다.

"여러분. 지금 노조는 어용노조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민주노조를 세워냅시다!"

참 용기 있었습니다.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민주노조건설추진위원회(가칭)를 만든다고 같이 하자고도 했습니다. 그때는 살벌했던 공안정국이었습니다. 정부도 그랬지만 회사 차원에서도 민주노조를 세우지 못하게 훼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적색분자, 외부세력 운운하며 노조 활동가와 일반 조합원을 분열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앞장섰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영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추진하는 모임에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저도 생판 모르는 노조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다 식당에서 민주노조 만들자고 소리 지르던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와 함께 모인 노동자들은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감시와 탄압으로 모임을 해체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몰래 소식지를 만들어 경비에게 안 빼앗기려고 품 속에 숨겨 공장 안으로 들고 들어와 현장마다 배포하곤 했습니다. 친기업 노조가 하는 짓거리에 환멸을 느낀 조합원이 많이 동참하였고, 파업으로 공장은 멈췄습니다. 결국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도 <오마이뉴스>에 글 한번 올리고 싶은데..."

회사는 대화를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쪽에 붙은 대의원에게 지시했는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노조로 몰려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회사 입장에서 활동하던 노조 간부들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청업체 간부를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계열사의 하청업체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조합원을 위해 애쓰던 사람 이영도는 강성으로 낙인 찍혀 지금도 취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한때 변호사 사무실의 노동관련 실무자로도 있었고, 지금은 울산노동인권센터 소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퇴학한 상태여서 중년이 된 영도형은 다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받으려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고 있는 저에게 영도형이 작년부터 "나도 <오마이뉴스>에 글 한번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 하고 만날 때마다 묻곤 했는데, 서로 사는 게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영도형이 다시 올 들어 만나기만 하면 "<오마이뉴스>에 글 한 편 올려야 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우선 회원가입을 하고 '기사쓰기'에 들어가 글 올리면 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한 번도 해본 바 없는 영도형으로선 쉽지 않았나 봅니다.

"창기, 기자회원 등록하고 기사쓰기 가려는데 안 가지네?"

영도형은 며칠 전 다시 전화를 해서 그리 물었습니다. 저는 같이 컴퓨터를 보면서 기사 쓰는 방식을 알려주었습니다. "태그는 뭘 넣어야 해?"라든가 "'덧붙이는 글'은 뭘 써넣어?", 또 "'취재경위'엔 뭘 써넣어야 해?"라고 일일이 물었습니다.

"태그엔 형이 써올린 내용 중 대표 될 만한 단어 써넣으면 되고, '덧붙이는 글'은 다른 매체에도 글 올렸으면 그 내용 올리면 되는 거고, '취재경위'는 그냥 '경험'이라 쓰면 된다. 거기 흐리게 다 써 있잖아. 그거 읽어보고 그대로 하면 된다."

'노동문제 전문가' 영도형, 훌륭한 시민기자로 움터 오르기를

영도형은 저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는지 알았다면서 전화를 끊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창기, <오마이뉴스>에 글 올렸는데 연락해서 채택되게 힘 좀 써봐."
"영도형, <오마이뉴스>는 내가 힘쓴다고 채택해주는 언론사가 아냐. 거기 편집부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보고 형 글이 채택할 만하면 채택하는 것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생나무'로 두고 그래."

영도형은 "생나무가 뭐냐" 합니다. 다시 전화로 '생나무(정식 기사로 채택하지 않은 기사)'와 '잉걸(편집부가 채택한 정식 기사)', '버금', '으뜸', '오름'(<오마이뉴스> 지면 배치 등급. '오름'이 톱기사)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글을 올린 지 상당히 시간이 흐른 후 확인해보니 영도형 글이 <오마이뉴스> 지면 '높은 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빨간날'이 서러운 비정규직... 국회의원들 보고 있나?>)

대체휴일제 도입 논란을 지켜보다 든 문제의식을 정리하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등록하여 투고하였더니 고맙게도 주장 글을 실어주셨어요. 페북에 관련 댓글을 달아준 분들께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쏴야 할까봐요.

영도형은 <오마이뉴스>에 글이 채택된 후 매우 들뜬 기분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리고 여기저기 지인들에게도 알렸습니다. "난 처음에 올렸을 때 여러 개 생나무로 걸리고 나중에 잉걸로 데뷔했는데 형은 첫 작품부터 상당히 높은 곳에 배치되었네. 축하해 형"이라고 전화를 했더니 영도형이 말합니다.

"야, 말도 마라. 내 그거 한 편 쓴다고 이틀 꼬박 걸린 거다. 난 글 한번 쓰고 나면 몸이 많이 힘들더라고. 그래도 첫 작품 치고 좋은 곳에 배치되니 기분은 좋다야. 창기, 고마워."

영도형은 가방줄은 짧지만 노동문제와 노동법률에 대해 잘 압니다. 또 저와는 달리 분석하는 걸 잘 합니다. 저는 영도형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훌륭한 시민기자로 움터 오르기를 바랍니다.


태그:#이영도, #울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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