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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특별난 동물 애호가는 못 되지만, 어제 밤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우리 집 진돗개 '새벽이Jr.'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진돗개를 키우고 있다. 아니,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 '새벽이'와 '새벽이Jr.'가 그들이다.

새벽에 낳았다고 해서 쉽게 부른 이름이 지금은 가문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에 사는 한 교수님에게 선물한 것도, 구미의 한 목사님에게 분양한 것도 모두 새벽이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 지킴이 역활을 하는 두 마리의 개도 그러니까 어미와 새끼의 관계이다. 더 확연히 말한다면 모자지간(母子之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남녀평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두 마리의 개는 그런 점에서 좀 뒤져 있다. 암놈인 어미 개에 비해 수컷인 아들 개가 당하는 불이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컷의 홀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밥을 얻어 막는 순서도 늘 후순위이고, 운동을 데리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탓에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새벽이 Jr.'는 못 나갈 때도 있다.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남성 대우에 인색한 집안 분위기상 어쩔 수 없다.

다른 것은 다 괜찮다고 치자. 어미는 번듯한 자기 집이 있다. 춥거나 무척 더울 때 그리고 눈이나 비가 많이 내릴 때면 어미는 마련되어 있는 자기 집에 들어가서 기상으로 오는 피해를 피한다.

하지만 새끼 진돗개는 집이 없다. 그래서 수컷이니까 개의치 않고 자기 편한 대로 뒹굴다가 잔다. 그것이 정상이 아닌 줄 알면서 노숙자도 있는데 하물며 짐승인 네깟놈 쯤이야 어떨려고…. 솔직히 이럼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낮부터 인터넷을 오르내리는 뉴스가 있었다. 장마가 오늘(6월 17일) 새벽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지역(김천)이 포함되어 있는 중부 이남은 100 mm가 넘는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 진돗개 새끼 '새벽이 Jr.'가 걱정이 되었다. 장마는 지나가는 비가 아니고 짧게는 보름 길게는 달포가 넘게 계속해서 비가 내리게 되는데, 아무리 동물이라곤 하지만 '새벽이 Jr.'를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급조해서라도 비 피할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았다. 사람도 차별 받아서 안 되듯이 짐승도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또 동물 학대는 곧 사람 학대로 전이(轉移)된다는 얘기도 듣고 있던 차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 고물을 주어 팔며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낮 시간엔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해 주고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해서 종이 상자, 버린 가전제품, 철제 생활 도구 등을 수습 해다가 고물상에 가져다준다. 그는 고물 장사라는 말을 싫어해 재활용품 수거사(?)라는 말로 불러주기를 바라지만 입에 익지 않아 그렇게 불러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잘 안 되면 '투 잡 맨(two job man)'으로 불러 주기를 바라지만 그렇게도 잘 되지 않는다.

그의 집 마당에 가면 없는 게 없다. 나는 그래서 아쉬울 땐 그의 집을 찾아 간다. 장마에 대비해 개집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 늦은 밤 시각이지만 다행히 그 가정은 초저녁이라며 반겼다.

갈 때는 양철로 된 슬레이트 아니면 넓은 판넬 등을 생각하고 갔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없었다. 그것 대신에 무슨 대형 가전제품을 담았던 것인지 넓은 비닐이 두 개 있어서 가지고 왔다.

늦은 밤의 집짓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육체적 힘과 재능이 딸리는 나는 가급적 이런 일을 피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장마를 눈앞에 두고 개집을 짓는 일은 피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꼭 해 내야 할 일만 같았다.

빠른 시간 내에 개가 비를 파할 수 있게 거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못 쓰는 의자들을 갖다 놓고 가운데 기둥을 세운 다음, 지붕으로 비닐을 씌우면 될 것 같았다. 모처럼 하는 일이라 아내를 보조로 쓰고 싶었다. 일에는 문외한인 남편이 개집을 짓는다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아내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보조의 역을 감당해 주었다.

못을 찾아오라면 찾아오고, 십자 드라이버, 철사 등을 그런대로 신속하게 대령했다. 얼기설기 집을 짓는 데도 1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이것도 일이라고 몸은 온통 땀범벅이었다. 아내도 이런 나를 대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내 남편도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드디어 집을 완성해 놓고 들어왔다. 그 집 주인장이 될 '새벽이 Jr.'가 기뻐하고 꼬리를 흔들며 감사하면 좋으련만 별 관심이 없다. 그래도 장마 때 쓸 용도로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내심 생각했다.

새벽 기도를 위해서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미는 원래 자기 집에, 새끼 개는 새로 마련된 처소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집을 마련해 준 것 같아 내 마음이 후련했다.

오늘 오전 내내 나는 그 개집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를 피하고 있는 동물들이 내가 만들어 준 집에서 편안함을 취하다니. 두 마리의 진돗개에게서 본능적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싫어하고, 피하고 싶은 것은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바라는 대로 해 주면 동물들도 좋아한다.

간단한 진리이다. 장마 때문에 급조한 집을 한 채 얻은 '새벽이 Jr.' .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살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엔 잘 해 주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우리 집 개들도 좋아한다는 원칙을 늘 생각하면서 말이다.


태그:#새벽이, #진돗개, #장마, #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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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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