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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김종배의 이슈털어주는 남자'에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정길이 출연했다. 1978년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가 35년만에 정치인생을 완전히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파뿌리와 같은 흰머리와 흰 수염인 채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한 것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정도(正道)를 걸어온 이런 정도 거물 정치인이라면 시대의 어른으로 공중파 3사에서 시사 스페셜로 다룰만하다. "저는 35년 정치인생에서 당적을 바꾸거나 당선을 위해 편법을 부려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는 김정길의 자기 소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서게 된 배경설명으로 시작한 방송에서 그의 소신과 원칙에 대한 철저함을 배운다.

그는 1990년 오로지 대통령이 되고자 한 김영삼의 정치적 야심으로 비롯된 이른 바 '3당 야합'의 최대 피해자다. 바보 노무현과 함께. 삼당야합 직전 김영삼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 수는 59명이었고, 이 중 57명이 정치적 명분과는 상관 없이 우르르 김영삼 뒤를 따랐다. 당시 통일민주당의 구호는 '군사독재 견제, 군정종식'이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군사정권을 견제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외려 그들과 합당을 해버린 것이다.

김정길과 노무현은 '꼬마 민주당'에 남기로 사전 상의한 게 아니었다. 각자 소신대로 남은 후에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알고 반가워 했다고 한다. "만약 혼자였다면 20년이 넘는 세월을 정치인으로서 잘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라는 그는 노무현과의 인연을 상기한다.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이나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시대정신과 고매한 도덕성을 이들 둘에게서 발견한다. 당시 한 인터뷰에서 카톨릭 신자라고 밝힌 김정길은 '촛불을 훔쳐서 성경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국민을 배신한 변절자들을 생각하면 너무 유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39세의 나이로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이 된 김정길은 13대 총선에서도 국회의원 뺏지를 유지하면서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러나 1990년 '삼당야합' 이후 김정길은 부산에서만 14, 15, 16, 17, 19대 총선과 1993년 한번의 보궐선거, 또 2010년 부산시장선거까지 총 7번의 선거에서 낙선한다. 방송 서두에 "어쨌든 저는 실패한 정치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또한 '바보 김정길'이다.

이어서 김정길과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재미와 교훈을 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한 추진력 결단력이 돋보였지만, 대권에 대한 욕심이 그분을 망쳤다"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정권에서 세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굳은 의지와 깨알 같은 메모, 그리고 때론 답답할 정도였던 극도의 섬세함'을 존경할 만한 특징으로 꼽았다. 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야권 내에서 조차도 '영원한 비주류'였다는 평가에 가슴이 먹먹하다. 오로지 국민의 지지로만 되었던 대통령이었다는 게다. 지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직을 버렸어야 했다'고, 지역구민과의 약속보다 전국적인 판도를 보는 눈이 아쉬웠다는 얘기다. 또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경선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그래도 최종 후보로 남았을 것'이라는 일침이 날카롭다. 현재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의도 정치에서 현실 현장 정치로 거듭나야'한다고 역설한다.

1990년 '3당 야합' 이후 선거 때마다 후보로서 김정길이 부산시민들에게 들은 얘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김영삼이 대통령 할라 하는데 좀 도와줘야 안되겠나?"가 당시 부산 민심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홀대 속에서도 옳고 그름의 기준을 흐리지 않고 살아온 정치인 김정길은 박수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고래는 거물 정치인인 자신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돋보이는 디자인 감각을 보면 시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 2010년 부산시장 선거 당시 김정길 후보의 포스터 고래는 거물 정치인인 자신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돋보이는 디자인 감각을 보면 시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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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의 노력은 '3당 야합'이후 1992년 14대 총선에서 25.1%의 지지율에서 2010년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44.6%로 비록 낙선이었지만 두배 가까운 지지율로 보답받는다. 그는 경남 거제출신이고 부산대를 졸업했으며 부산을 지역기반으로 정치를 해온 뼛속까지 경상도 사나이다.

"지역주의에 맞서 수없이 도전하고 좌절했지만 후회는 없다"는 그의 한 마디는 부산이 야도(野道)였다가 여도(與道)가 되었어도 시민들의 삶 속에 함께 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보인다. 정치인 김정길의 삶의 궤적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을 전 현직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태그:#김정길, #노무현, #삼당야합, #바보, #부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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